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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인 May 07. 2022

은사(恩師)

조혜인 에세이 메일링서비스 <2월>: 서프라이즈 쪽글

*본 글은 2022년 2월동안 발송된 조혜인 에세이 메일링서비스 <2월>의 한 조각입니다.


[은사(恩師)] 


2월은 언제부턴가 활발하게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는 나날이 되었다.

누군가에겐 새학기를 맞이하는 월(月)이라설까,

어떤이에겐 졸업을 맞이하는 월이여설까,

또 아무개에겐 무언가 새롭게 자리잡기를 시도하는 월이여설까,


2월은 좀처럼 사람들에게 연락을 먼저 하지 않는 내가 사람들을 찾고, 연락을 하는 때가 되었다.


삶을 살다보면,

늘상 눈 앞에 아른거리는 도시의 불빛과 같이

그리운 얼굴들이 그렇게 내 마음속에 불꽃을 지핀다.


오늘은 내가 고2쯤 부터 다니기 시작해서 수능까지 마무리한 학원의 수H 선생님과 영K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종종 마음속으로 궁금했던 분들이었지만

대학을 다니고, 대학원을 다니고, 인간관계에서 무수한 만남과 헤어짐을 해보고,

가족의 죽음도 두 차례 겪었던 그 10여년의 세월동안

좀처럼 연락을 먼저 하기 어려웠던 분들이었다.

딱히 분명한 이유는 없다.

학원 친구들과 관계가 소원해져서일까,

아닌 것 같다. 그건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어쨌든, 내겐 잊을 수 없는 분들이란건 확실하다.


오늘은 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수H 선생님은 수포자였던 나에게 수학을 풀 수 있는 수준으로 고등수학을 이끌어주셨던 분이고,

영K 선생님은 오랜기간 나를 담임해주시면서 개인적으로 잔소리 한 번 안하셨던 분으로 기억한다.

두 분 다 학생들이 대학에 가기를 진심으로 바라시면서

인생 선배로써, 선생님으로써 수업시간에 쓴소리를 잘 해주셨던 분으로 기억된다.

나는 그분들의 쓴소리가 좋았다.

그 학원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정신을 바짝차린채 공부만이 내가 내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무언가라는걸 깨닫지 못했을것이다.

나는 단 한번도 살면서 부(富)라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또한 형제가 없으니 가족에게 의존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리가 없었고,

회계 자격증도 있으시고, 명문고를 나오실정도로 공부를 꽤나 잘하셨지만 성인이 되어 학업을 외면한채 나쁜 길로 접어드셨던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그래서 공부가 더욱 간절했던걸지도...

그래서 나를 잡아줄 누군가가 더욱 간절했던걸지도 모른다.

공부가 곧 부의 약속은 아니지만,

공부라도 안한다면 내 인생은 망하겠다라는 강렬한 느낌을 어렸을 때부터 받았다.

내 인생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미래도 처참할거라는

그런 아무도 찍을 엄두가 나지 않는 영화를 

무일푼의 외로운 감독이 되어 혼자 수차례 찍고,

보고,

또 보고,

되돌려보고 ... 그랬다.


여전히 공부에 대한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즉, 공부가 나에겐 일말의 '평등'에 대한 기회였다.


10년정도가 흘러 수H, 영K선생님께 전화를 해보니

나를 당연히 기억하신다는 말씀과

벌써 서른이냐며 자신의 나이를 가늠하시는 푸념과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게 중요하다는 인정

공부의 길이 쉽지 않은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고있어서 대견하다는 칭찬 

웃음과 함께 좋은 말들을 들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도 내가 누군가에게 연락 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구실을 하며 살고 있으니

연락을 할 용기가 생기고 딱딱한 스마트폰 너머로 전달되는 따스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게 아닐까.


'혜인, 그래도 아직 '사람'이 될려면 좀 더 멀었지?'


대학원 재학시절, 언젠가는 동네의 한 교회 앞을 지나가는데

고등학교 선생님 한 분을 우연히 뵈었다.

내 옆을 지나가시는데

무스로 쌈박하게 정돈된 머리스타일과 조폭같이 험악한 인상이

옛날 고교 재학시절의 선생님 모습과 똑같았다.

선생님께서 교회를 지나 편의점 정도까지 발걸음을 옮기셨는데

나는 뒤를 돌아 외쳤다.


'선생님!'


선생님은 뒤를 돌아보셨다.

길거리에서 '선생님'이란 직업을 갖고계신 분,

단 한분,

그 선생님만이 뒤를 돌아보셨다.

나는 선생님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조만간 모교를 찾아가리라 결심을 했었다.


찰나의 순간동안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지만,

그 경험은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만약 내가, 내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인생을 살고있었다면, 선생님께 아는 척을 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스스로를 인정 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게 중요한건가보다.

누가 보던, 보지 않던간에

꽤나 부족함도 많지만, 그럼에도 스스로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런 삶을 사는 것.

그래서 은사(恩師)님과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는 것.


'사람 구실 할 때 찾아뵙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말을 할 때면

'힘들 때 찾아와도 된다.' 라고 대답해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


'내가 그래도... 허튼 인생을 살진 않았구나...'


은사님과의 연락 그리고 만남은

나에게 내 인생에 대한 뒤돌아봄을 언제나 남긴다.

그런 영화는, 볼만 하다.


이 영화가 주는 향기는 무척이나 진하고, 은은하다.

마치 오랜시간 전에 뿌려도 남는 향수의 잔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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