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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ecialA Nov 27. 2023

04 출장 다녀오겠습니다

비행기에서 스친 작은 인연

요즘 오랜만에 출장의 연속인 나날들이 이어지면서 하루하루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오랜만에 가는 공항, 그리고 비행기 탑승이 새삼 생소하게 느껴진다. 코로나 이후 처음가는 해외이니 근 3년만인듯 하다. 동기 한 명과 3명의 어르신을 모시고 가는 출장이 조금은 부담으로, 조금은 설렘으로 다가온다.


방문할 기업들에 드릴 자그마한 마음의 선물을 사고 과일주스를 마시며 긴장을 달래 본다. 입사하고 처음으로 가는 출장이고, 내가 맡아 준비한 출장이기에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도 비행기 탑승까지는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진행됐다.


현지에서는 현지 파견 직원이 준비한 일정대로 움직이면 되는 거라 일단 도착만 하면 반쯤은 마음을 내려놓아도 된다. 비행기 타기 전까지만 잘 진행됐다면 절반은 이미 성공한 셈이다.





3-3 비행기라 좌석이 불편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지난밤 체크인에서 실패의 맛을 보았기에 창가자리에 갇힐 신세에 처했다는 것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느지막이 비행기에 탑승했지만 아직 내 옆자리가 비어있어 제발 옆자리가 좀 편안한(?) 분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한분과 아주머니가 곧이어 탑승했고, 내 옆에 앉은 아주머니는 앉자마자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셨다. 미국 국적을 가진 캄보디아인인 이 아주머니는 사실은 61살의 장성한 아들 둘을 둔 엄마뻘이셨고 함께 타신 분은 이 분의 이모님이셨다.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이긴 했지만 큰아들이 무려 국가에서 일부 장학금을 받으며 석사과정에 돌입한 수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식 자랑으로 시작한 아주머니의 입담은 미국의 물가가 얼마나 높은지, 미국에서 아시안으로서 학위과정을 하는 것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토로하고 나아가 캄보디아 경제에 대해서까지 논하기에 이르렀다. 아주머니가족부터 조카사진까지 보고 나서야 첫 대화가 끝났다.


조카 Niece를 Nie로 발음해서 알아듣기가 참으로 어려웠는데, 조금만 더 알아듣기 쉬운 발음이었다면 투머치토커인 나와 아주 잘 맞는 비행파트너가 됐을 것 같았다. 출장으로 캄보디아를 간다는 말에 짧은 기간이지만 (그리고 비록 상사들과 함께지만) 그 안에서 꼭 즐거움을 찾으라며 응원해 주시는 이 아주머니의 마음이 정말 따스하다고 느껴졌다. 아줌마들의 수다는 기내식이 나오고 잠시 멈춰졌다.


옆자리의 행운은 화장실이 가고 싶을 때 최상에 달했다. 단시간에 수다를 꽤 떨며 나름의 친분을 쌓아서 그런지 화장실 가는 것도 편안하게 양보해 주셨고, 긴긴 줄을 기다려 마침내 내차례가 왔음에도 터뷸런스로 화장실을 못 가게 되자 승무원들을 크레이지 피플(?)이라며 나를 대신해 승무원들에게 항의를 해주시는 모습에 엄마랑 비행기 타고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관신고서와 Immigration 신청서를 작성할 때에도 내 것까지 잘 썼는지 모르는 것은 없는지 친절히 챙겨주고 본인이 모르는 것을 나에게도 거침없이 질문하는 모습에 자칫 불편할거라 생각했던 비행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아 좋았다.






오늘 아침 내 운세에 '반가운 사람을 만나게 되니 아주 좋습니다'라는 것이 나왔다. 아마도 이 분을 만나게 되는 것이 나에게 아주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아니었을까.


오늘의 운세


출장이 정해지고 영어를 안 쓴 지가 오래되어서 약간 걱정을 하던 차였는데 이분과 근 6시간을 쉬지않고 떠들다보니 긴장이 풀려 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이런 우연한 만남들이
삶에 작은 터닝 포인트가 되어
나를 조금씩 조금씩 더 성장시켰다.



비행기에서 만난 옆자리 외국인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거는 용기
배려해 주는 따스함
그 안에서 느껴지는 인생의 관록과 여유



그 모든 것이 나에게 닿아 작은 자극들이 된다. 

이런 하루하루가 모여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이지 않으려나.



이러나저러나. 오랜만에 가는 출장. 왠지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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