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너인데,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너인데, 사랑을 넘치게 받은 너인데, 그런 네가 왜 우울증에 걸린 걸까? 왜 본인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
시어머니와 함께 산지, 올해가 벌써 19년째이다. 시어머니는 직장 생활을 하는 나를 가장 많이 도와주신 고마운 분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동안 고마움의 크기만큼이나, 서운함도 함께 높이높이 쌓여있다. 어머님이 밉거나 싫은 것은 아니지만, 어머님이 계신 집은 일단 편하지가 않다. 다른 식구들 없이 어머님만 집에 계신 날이면, 나는 사춘기 소녀도 아닌데 집에 들어가기가 참 싫다. 이전에는 나는 내가 여행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어머님이 시이모님 집에 가신 주말이면, 난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이 좋다. 집이 너무나도 편하고 좋다.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웃음이 난다.
아들이 처음 나에게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더 설득했어야 했는데, 내 인생이 아니기에 너의 인생이기에 허락을 한 것인데, 지금은 그 선택에 대해서 너무나 후회가 된다. 감당하기 힘든 비용, 끊임없는 부상, 불합리한 시스템 등 미리 알았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구감소 속 대학의 미달 사태는 이제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학과 지원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서 행여나 올해 미달이 될까 벌써부터 조마조마하다. 그건 그렇고 나는 논문은 도대체 또 언제 쓰지? 학교 일도 머리가 너무 아프다.
퇴근 후 집에 있노라면,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하다. 동해 바다의 파도처럼, 아니 쓰나미처럼 마구마구 몰려와 나의 마음과 내 머릿속을 잔뜩 휘저어 놓고는 정작 본인은 저만치 도망가 버린다. 그 파도와 함께 나도 같이 도망가 버리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다.
나의 대부분의 걱정거리들은 사실 걱정하고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일들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걱정과 고민 들은 나마저 우울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우울증인 내 아이의 마음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편의 엄마인 시어머니가 갑자기 나를 낳아 준 친엄마가 되는 것도 아니고, 운동선수가 겪는 세상의 부조리한 시스템 또한 내가 고민한다고 바뀌는 것이 결코 아니다. 어찌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결국 항상 내 자신 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걱정으로 시작해서 그 일에 대해 고민하다가, 아파하다가, 괜히 안 좋았던 과거나 떠오르기도 하고, 그러다 분노하면서 나중에는 내가 나 스스로를 공격하고, 기어이 상처를 내고야 만다.
오늘도 무작정 나는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걷는다. 집 근처 숲공원을 걷다가, 상가가 많은 거리를 걷다가, 힘들면 잠깐 앉았다가, 또다시 걷고, 또 걷는다. 걷는다고 내 고민이나 현실이 바뀌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걷기 전과 걷고 난 후 현실 또한 당연히 전혀 바뀌지 않는다. 걷기 시작한 지 10분이 지나도 내 머릿속과 마음속은 여전히 엉망진창 그 자체이다.
하지만, 20분이 지나는 순간부터 버겁고 힘겹게만 느껴지던 현실이 조금은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또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도 생기기 시작한다. 아무 생각 없이 걸어도, 걷다 보면 신기하게도 복잡한 생각들이 조금씩 조금씩 정리가 되고는 한다.
나만 가난하고 불행한 운명이어서, 항상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우리들의 삶은 어찌 보면 다 똑같다. 이것이 인생이다. 재벌의 삶도 다르지 않다. 돈이 많다고 아무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나보다 더 복잡하고 커다란 걱정거리가 있을 수 있다. 사는 것이 전쟁터 혹은 지옥이라도, 내 스스로 내 마음속까지 지옥으로 만들지는 말자. 항상 내 마음만은 내가 지켜야 한다.
걷기를 통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고, 걸으면서 우리나라의 사계절도 느낄 수 있고,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긍정의 에너지도 채울 수 있다. 이렇게 좋은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걷기에는 돈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가장 큰 장점도 있다.
지금 여러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복잡하고 괴로운 상황이라면, 그럴 때는 일단 집 밖으로 나가라. 그리고 걸어라. ㅋㅋㅋㅋ (걸어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