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0일의 기록
거창의 시작과 끝은 노래기와 파리인 듯하다. 이제는 파리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노래기 원 킬이 가능하다. 파리채 휘두르기 스킬을 획득했다.
어제의 결심대로 오늘은 7시 반에 무사히 기상했다. 시리얼을 빼놓지 않고 챙겨 먹은 뒤 산책을 나섰다. 새벽 비의 흔적이 남아있었지만 축축보다는 촉촉에 가까워 즐거이 산책했다. 일찍 일어나서인지 어제와 다르게 다소 피곤해서 오늘 걸은 길이 어떤 길이었는지, 어제 걸은 길인지 오늘 걸은 길인지도 구별이 잘 안 간다. 아마도 지난 해에 와이너리에서 숙소로 돌아왔던 길로 걸었던 것 같다. 노란 허수아비도 보고 쌩쌩 달리는 거대한 트럭도 만났다. 인도가 만들어지지 않은 길을 걷는 것은 아직까지 익숙지 않다. 이곳에 비하면 도시의 차는 쁘띠하다. 바퀴가 내 몸만한 거대한 트럭이 옆을 지나가면 왼쪽 혹은 오른쪽 볼이 부르르 떨린다. 나는 대쫄보이므로 괜히 가장자리에 더 붙어 걷는다.
숙소로 돌아와 책을 읽고 필사도 좀 했다. 편지도 썼다. 답장 한 통과 답장 아닌 편지 한 통. 어제의 나라면 쓰지 못했을 문장을 오늘의 내가 쓴다. 어제의 나와 달리 오늘의 나는 비가 오는 7월의 거창 하늘과 해가 난 7월의 거창 하늘을 모두 알고 있다. (방금은 나의 벗이 파리를 잡았다. 그렇다 어제의 우리와 달리 오늘의 우리는 파리를 더 잘 잡기도 한다.) 글을 쓰는 동안 열린 문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를 엿보고 갔다. 조금만 덜 심장을 부여잡았더라면 심정지로 저 세상 가지 않았을까. 사인은 귀여운 고영. 문에 눌린 고영의 오른 볼이 심각하게 치명적이었다.
어제 읽고 오늘도 필사한 책은 <당신의 삶엔 질문이 있나요>라는 제목의 잡지였다. 질문이라는 테마로 엮인 글과 사진이 가득했다. 요즘 나의 관심사는 실험과 상상을 정의하는 것, 더 잘 실패하는 것에 닿아있는데 그것과도 잘 맞아 떨어지는 내용이다. 질문하지 않는 세상은 다시 말해 질문받지 않는 세상이라는 것도, 그래서 흔쾌히 질문을 받는 사람이 되어보라는 제안도 오늘의 내게 매우 유효한 것들이다. 아직은 질문하는 위치에 서있지만 언젠가 질문 받는 사람이 된다면 더 구체적으로 답하고 과감히 모른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보았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곱절의 경험치를 쌓으면서 그것들을 잘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지. 그리 되려 노력하기보다는 기억날 때마다 문득 떠올리며 삶의 주름처럼 얕고 깊게 때마다의 다짐이 새겨지면 좋겠다. 질문과 다짐을 품고 있으면 답이나 변화를 우연히 마주하는 법이니까.
중규형과 채식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혹시나 해서 덧붙이는데, 중규형의 풀네임은 박중규이시다. 성이 중 이름이 규형 아니다.) 점심을 먹지 않고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과자 두 봉지를 까먹은 뒤였다. 세 명이서 다섯 접시를 클리어하고 풍력발전기가 있는 산 꼭대기에 놀러갔다.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시고, 스스로를 정원사라고 소개하시는 분께 그곳의 역사 아닌 역사를 듣기도 했다. 원래는 고랭지 배추와 무를 심는 곳이었는데 모두 망하고 농부들이 떠나고 난 뒤, 결국 나라에서 여기에 꽃을 심게 되었다고. 꽃은 10월 내내 핀다고. 그때가 되면 차가 줄지어 올라오고 색소폰 동호회 사람들도 찾아와 악기를 분다고. 두말 할 필요 없이 그저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내려와서 팥빙수를 먹었다. 그리고 심각하게 부른 배를 안고 조금 더 걸어 중규형네 집으로 강아지 보러 갔다. 불쑥 찾아가서 실례가 된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그 마음이 무색하게 참외도 얻어먹고, 차에, 볶음밥까지 먹었다. 사이사이에 이야기도 곁들여주셨다. 신기한 아르바이트의 세계를 알게 된 느낌이다. 어떤 일이든 중규형이 말하면 다 가뿐하고 거뜬해보인다. 여러 번 생각해보면 그리 간단하고 쉬운 작업은 아닌 것 같은데. 대수롭지 않은 삶의 방식이 '척척'스럽다.
먹는 이야기가 자주 읽히는 것 같다면 잘 읽고 있는 것이다. 글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의 삶도 먹는 것이 반이다. 나머지 반은 산과 초록과 밭과 중규형, 그리고 노래기가 차지하고 있다. 따지자면 다섯 중에서는 노래기의 지분이 좀 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