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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문 Mar 23. 2023

23년 3월 22일

30개월 15일

어린이집에 퇴소를 통보했다. 알림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어플에 글로 남겼다. 선생님은 회유하시며 내일 아침에 전화로 다시 얘기하자 하셨다. 내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다시 댓글을 남길까 하다가 말았다. 이것도 회피지. 내일 전화하시면 말로 정확히 전달드려야겠다. 


자꾸만 선생님은 '우주가 힘들어하는 것 때문에 마음이 아프시겠지만'이라고 하신다. 나는 마음이 아파서 우주를 떼놓지 못하는 게 아니다. 나는 매사에 우주에게 단호하게 제한을 두지만 어린이집 적응 문제는 그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주가 오래 걸리더라도 적응에 성공하면 그 어린이집에 오래 다니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장기전이라 여기고 어린이집의 공간과 사람들이 우주에게 편안함으로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고 격려해주고 싶었다. 나를 떠나 독립하는 첫걸음이 우주에게 강압적이고 피할 수 없는 일로 느껴지지 않기를 바랐다.


돌아보니 적응기간 동안 우주의 떼는 날이 갈수록 늘었다. 점심을 먹고 온 후부터는 전보다도 더 강하게 스스로 밥 먹기를 거부했다. 원래 나는 그런 일이 있으면 우주에게도 이유가 있을 거라는 전제로 사태를 수습한다.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나에게 마음 약한 엄마라는 프레임을 씌운 후로 우주가 나 때문에 저렇게 떼가 늘은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 때문에 우주를 다그치고 내모는 일이 생겼다. 수저를 들지 않겠다고 우는 우주에게 안 먹으면 치운다고, 쓸데없는 협박을 했다. 


오늘도 근처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오는 길에 집에 가지 않겠다며 울고 불고 난리를 피웠다. 지칠 때까지 울다 잠이 들었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가 그다음에는 자기도 풀어야 할 스트레스가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는 우주의 마음에 어쩌면 매일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짓누른 것은 아닌가 싶었다. 집에 도착해서 잠이 깬 우주는 다시 울었고, 안아주며 물었다. 어린이집 가는 게 너무 힘들었냐고. 그렇다고 했다. 이제 가지 말자고 했다. 오늘 저녁에는 다시 해맑은 우주가 돌아왔다. 포크질도 시키지 않았는데 혼자 했다. 몇 번 하다가 말고 내려갔을 때, 나도 전처럼 이제 응가 시간이 되어 돌아다니는구나, 여유 있게 생각해 줄 수 있었다. 


우주는 어쩌면 말만 빨리 트인 아기인지도 모른다. 말을 너무 잘해서 내가 다 컸다고, 다른 것도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무의식 중에 단정 지었는지도 모른다. 우주에게는 엄마가 등 뒤에서 버티고 서서 제공해 주는 자유가 필요하다. 그런 우주에게 적응하기 위한 시간을 줄 수 없는 어린이집은 필요 없다. 어린이집에 가고 싶다던 우주에게도, 한 번 보내보자 결심했던 나에게도 참으로 긴 20일이었다. 이만하면 잘했다 우주. 조금 더 키워보자. 더 있으래도 싫다며 나를 떠나는 날은, 언제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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