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디 Jul 28. 2017

나의 당신에게 안녕을 고하는 방법

영화 '김종욱 찾기' 리뷰

"사실은 용기가 없어서 말을 못 한 게 아니라,

그만큼 절실하지 못해서 말 꺼낼 용기가 생기지 않은 거였더라고요"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마주하는 모든 현실이 버겁게 느껴질 때,


그 어느 날

내가 갑자기 사라진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 손톱만큼의 영향력도 끼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갖은 불행 요소가 함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하늘이 내편이라 느껴지지 않는 그런 시간들.


그럴 때마다 나는

조금 뻔한 영화를 틀어 놓는다.

적당한 시련이 함께하지만

결국 이겨내고 말 것이라는 암시가

잔뜩 들어가 있는

대학로 연극 같은 영화를.


영화 '김종욱 찾기'도 딱 그런 영화다.

동명의 대학로 뮤지컬을 원작으로 해서였을까.

극의 중간중간에 보이는

뮤지컬적인 딕션과 연기, 호흡이

리드미컬하게 어울린다.



"도대체 인도가 뭐길래, 10년을 기억하냐고요"



첫사랑.

처음으로 알아버린 두근거림일까.

처음으로 손을 잡았던 상대일까.

처음으로 입을 맞췄던 상대일까.


그 정의에 대해서는 분분한 의견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잊을 수 없는 것'이겠다.

아니, 조금 말랑하게 이야기하자면,

'슬몃 미소 짓다가, 이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겠다.


비포 선라이즈가 그랬고,

이를 오마주한 여러 영화가 나올 정도로,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이

연인이 되어 시작하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고,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다.


여행이 주는 기분 묘한 설렘,

한국과는 다른 콤콤한 그 나라만의 향기,

조금은 후덥지근하게,

그렇게 끈끈하게 느껴지는 공기까지.

모든 것이 낭만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사랑에 빠진다.


때론 수줍게 당신을 바라보고,

때론 당신의 모습에 가슴이 뛰고,

그 찰나와 순간의 당신을

마음에 담았다면,

분명 그것은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김종욱 찾기'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운명적인 사랑이었다.

그래서?



"안녕? 안녕, 안녕."



마지막은 항상 힘들다는

서지우의 투정이, 변명이 남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 생각할 때,

가슴 한편이 간질여지는 순간을 좋아한다.

하지만 정작 그와 마주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되면

나의 '첫사랑'이

나의 '운명'이

나의 '낭만'이

깨질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사랑을 할수록

나이가 한 살 한 살 많아질수록 느끼는 것은

첫인사보다 끝인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어는 참 잔인하게도

첫인사와 끝인사가 같은 말이다.

'안녕'


처음 가벼운 마음으로 던졌던 그 한 마디가

끝에는 어떤 무게감으로 다가올지

여전히 무섭지만,


나도, 서지우도

이제는 알고 있다.

그 무게감을 끝끝내 견뎌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지나간 사랑에 대한 예의이자,

새로운 시작과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인연을 붙잡아야 운명이 되는 거지"



단조로운 우울감이

적당한 멜랑꼴리로 바뀐 밤이다.


와인 한 잔이 절실하지만,

이대로 달큰함을 갖고 잠에 빠져도 될 것만 같은 밤이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의 모든 은희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