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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련 Dec 12. 2018

5_ 뜨거운 안녕

길을 잃는 것이 길을 찾는 방법


생각 없이 들은 아이돌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었다.

'길을 잃는 것이 길을 찾는 방법'

서른을 목전에 둔 나에게 어떤 것보다도 가장 와 닿는 위로였다.



일밖에 모르던 사람에게 퇴사란 세상 전부를 뜯어내는 것과 같다. 세 번째 퇴사인데도 전혀 익숙하지 않다. 퇴사를 고하는 것에서부터 업무를 정리하는 것 어느 하나 쉬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특히 이번 건은 타격이 심했다. 그만큼 소중한 곳이었다. 그래서 결정과 선언 뒤에도 갈무리하지 못한 감정이 불쑥 튀어나올 때면 눈물을 훔쳐내기 바빴다. 그렇게 두 번의 작별을 했다.




안녕, 피플펀드

같은 업계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놀리곤 했다. '세련님 피플펀드 C레벨(리더) 하시는 거 아니에요?' 사석에서의 대화 주제, 고민 내용, 심지어 SNS의 피드에는 피플펀드와 내 직무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피플펀드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들은 곧 나의 일이었기에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문제를 더 빨리, 잘 해결하기 위해 개인 시간은 공부와 연구로 채웠고 누구나 각자의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도록 사내 '컬처 커미티(Culture Comittee)' 활동에 열심이었다. 일이나 일하는 방식 모두 문제라고 생각되면 목소리 내는 것이 본성인지라,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즐거웠고 그만큼 열린 조직이었다.


언젠가는 꼭 기록으로 남겨야지 했던 일이 있다. 올해 초 워크샵에서 익명으로 팀원들의 질문을 받았고, 리더들이 그에 답하는 시간이 있었다. C레벨을 포함해 각 부서를 책임지는 리더들이 단상 의자에 앉아 질문을 받았다. 나는 그 모습이 퍽이나 이질적이었다. 팀원들이 앉은자리를 한번 돌아보고 다시 리더들을 보니 이질감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10명 가까이 되는 리더 중에 여성이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질문했다. 롤모델이 되어줄 여성리더가 없어서 아쉽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회사 리더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는 거였다. 그 자리에서 대윤(대표)님이 한 답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노력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 답에 만족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었다. 질의응답이 끝난 뒤 대윤님은 나에게 눈짓을 보냈다. 익명으로 진행한 질의응답이었지만, 많은 사람 중 그런 질문을 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것을 서로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 주 지나지 않아 깜짝 발표가 있었다. 바로 사내변호사인 민주님의 C레벨 승진이었다. 그 소식에 내 박수는 민주님, 함성은 내 메시지를 소중하게 받아준 회사로 향했다.




안녕, 피플펀더

나는 피플펀더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6개월에 한 번씩 진행했던 Growth Review에 남겨진 팀원들의 칭찬과 피드백들을 보며 이들 없이 어떻게 내가 성장할 수 있었을지 다시 한번 느꼈다. 그래서 제대로 인사하고 싶었다. Customer Ground와 철없던 나를 지지해준 소중한 사람들에게라도 미리 작별인사를 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영영 안 볼 것도 아닌데 뭐가 어렵다고. 웃으며 다시 찾아올 거면서 뭐가 힘들다고. 업무적으로는 몰라도 사람으로는 여전히 갈길이 멀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다른 조직에 속해 있지만, 많은 것을 의지했던 첫 팀 리더 지원님. 작은 것부터 뭐 하나 가볍게 넘긴 적 없이 든든한 토론 파트너가 되어준 브랜드 마케터 창현님. 일 욕심 많은 나에게 맞추느라 힘들었을 우리 슈퍼 주니어 현정, 슬아님. 전임자의 높고 깐깐한 기준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컨텐츠 마케터 성구님. 개떡처럼 말해도 찰떡처럼 알아듣고 언제나 상상 이상을 만들어준 디자이너보다는 아티스트 승희님. 터무니없이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던져도 웃으며 받아쳐내준 디자이너 기환님. 험난했던 컨퍼런스라는 마지막 여정을 함께해준 PR 수현님. 그리고 내가 따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언제나 웃으며 맞아줄 피플펀더. 


나에게 더 넓은 세상,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과 무한한 성장의 재미를 일깨워준 감사한 피플펀더.


꼬깃꼬깃 손에 쥐어준 선물들과 편지는 아마 한동안 열어보지 못한 채 묻겠지만, 다시 만날 날까지 뜨겁게 안녕.









그리고

또 다른 길을 찾기 위해 

선로를 이탈한 

피플펀더 김세련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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