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딩코치 Young May 09. 2021

워킹맘의 짧은 육아

아이를 낳고 가슴에 와 닿은 말 중에 하나가 “밭 매러 갈래? 애 볼래?”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아이보다 밭을 매러 가겠다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육아가 힘들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집에 있을 때면 꼭 뭘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도 수시로 냉장고 문을 열곤 했다. 그러나 임신을 하고 입덧이 시작되자 냉장고 근처에 가기조차 꺼려졌다. 배가 고파서 숨을 꾹 참고 냉장고 문을 열면 속이 울렁거려 눈물, 콧물 흘려가며 화장실로 달려가 속을 게워냈다.

내 몸이 나 하나만의 몸이 아니라는 증거로 아침마다 어김없이 밀려오는 입덧은 10달 내내 아이를 뱃속에 품는 그 인고의 세월을 지나 귀하게 얻은 내 아이, 물론 귀엽고 사랑스럽기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내 아이는 세상의 어떤 화려한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모자를 만큼 이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내 아이가 아무리 이뻐도 아이를 보는 건 힘들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일요일 아침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야 쌩쌩한 몸상태를 유지할 정도로 잠이 많은 나였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밤, 낮 구분 없이 2~3시간마다 일어나 모유수유를 하느라 늘 잠이 모자라 어디에든 등만 갖다 대면 잠이 들었다. 잠이 늘 부족해서 아기의 울음소리에 밤에 깨지 않고 한 번에 아침까지 쭉 자는 것이 소원이었다. 어디서든 이제는 잘 수 있을 정도로 잠이 고팠다. 그런 나와 달리 아름이는 잠이 들 때까지 재워 주어야 했다. 그 당시 나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를 가는 것조차 모두 고된 노동처럼 느꼈다.


잠이 모자라 예민해지고 산후우울증까지 겹쳐 울며 지내던 날이 지나 아름이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되었다. 젖도 5분 정도 짧게 먹고, 잠도 짧게 토막토막 끊어서 자던 아름이가 이제 제법 밤에 길게 자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된 그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느라 휴학했던 대학원에 다시 복학을 했다. 아기띠를 매거나 유모차를 끌지 않고 아기 없이 나 혼자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은 너무나 가벼웠다. 

수업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집에서 조금 여유롭게 출발해 혼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수도 있었다. 적당히 시원하고 상쾌한 카페 실내 온도를 느끼며 오롯이 커피를 즐길 수 있는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눈물이 날만큼 좋았다. 복학을 해서 수업시간에 오랜만에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해서 밭 매러 가는 것만큼 몸이 쑤시기도 했지만 참을 수 있었다.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대신 아이를 봐주는 엄마에게는 죄송했지만 집을 나선 순간부터 모유수유를 하는 중이라 젖이 불어 가슴에 통증이 올 때를 빼고는 아이 생각이 나질 않았다. 나 대신 아이를 봐주는 장모님께 전화해서 물어보기 뭐했던지 가끔 남편이 내게 전화를 걸어 물어본다. 

“아름이는 뭐 하고 있어?” 

“나 지금 밖이야.”

“집에 전화 안 해봤어?”

“애 자고 있을지 모르는데 전화하면 깰 수도 있어 전화 안 했어.”


아기를 재우는 건 복권 당첨되는 기분과 같지 않을까 싶다. 아이가 잠든 것 같아 이불 위에 내려놓으면 귀신같이 알고 눈을 번쩍 뜬다. 그리고 다시 울기 시작한다. 어설프게 잠이 깨면 계속 칭얼거린다. 운이 좋으면 아기를 다시 재울 수도 있지만 잠이 깨어버린 아기는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아기가 자야 집안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가 자는 시간을 활용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름이는 정말 짧게 낮잠을 잤다. 정성 들여 재워 놓으면 겨우 30분 정도 자고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났고, 많이 자도 1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어쩌다 2시간 정도 낮잠을 자면 정말 행운이 가득한 날로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다 보니 잠을 자는 아이가 깰까 싶어 집에 전화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아름이를 봐주시던 엄마도 바깥에 나가면 바깥일에만 신경 쓰라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아름이에게 무슨 일 있으면 그때 전화할 테니 걱정 말고 공부 열심히 하다 오라고 늘 말씀하셨다. 그러다 보니 육아에 미숙한 나보다 아이를 잘 재우고 돌봐주셨던 엄마라 안심하고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수업이 없어 학교를 가지 않는 날과 주말에는 엄마인 내가 온종일 아이를 돌봤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아이에게 생활의 모든 포커스를 맞춰야 했다. 아름이가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나지 뒤집기를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느라 잠시 옆을 비우면  금방 ‘응애’하고 우는 소리에 물에 젖은 손을 제대로 닦지도 못하고 아기에게 달려가 보아야 했다. 

그냥 칭얼거리는 것이면 괜찮은데 혹시라도 아기가 몸을 뒤집었다가 엎드려 있는 자세가 힘들어져 목에 힘이 빠져 얼굴을 이불에 파묻힌 채  고개를 들지 못할 경우 숨을 제대로 못 쉴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더운 여름에 기저귀를 제 때 갈아주지 못하면 기저귀 발진이 생겨 아기 엉덩이가 빨갛게 짓물러 하루 종일 보채는 경우도 생긴다. 

왜 이렇게 아기 피부는 약한가 했더니 아름이는 아토피 피부였다. 병원에 가서 아름이가 아토피 피부라는 것을 알고 낮에는 종이기저귀에서 천기저귀로 바꾸어 사용했다. 몸에 직접 닿는 옷이나 기저귀 빨래는 항상 손빨래를 해서 마지막으로 빨래를 헹굴 때는 꼭 다시 삶아야 했다. 그래야 더운 날에도 아름이 피부가 덜 짓물렀다. 그리고 아기는 체온조절을 아직 잘 못해 조금만 더워도 땀을 흘리고, 금방 추워하기도 한다. 젖을 먹고 토하는 것 또한 일상이다. 그래서 빨랫감을 담아 놓은 통에는 늘 아기 빨래가 담겨 있다. 어른 옷은 입고 벗은 옷을 모아 두었다 한꺼번에 빨아도 되지만 아기 옷은 그날그날 빨아야 한다. 젖 토한 냄새와 기저귀 냄새가 합쳐지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체력적으로 피곤해하셨지만 아기 키우는데 능숙한 친정 엄마와는 달리 하나부터 열까지 초보주부, 초보 엄마였던 나는 아기를 키우는 게 너무나 고되었다. 학교에 가는 시간만큼은 육아를 잊을 수 있어서 잠시 좋기는 했지만, 집에 오면 늘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이 늘 버거웠다. 조금 더 효율적으로 육아를 하면서 내 시간을 누리고 싶었다. 

아름이가  밤낮 구분을 못하고 수시로 깰 때 아이들의 수면습관에 관련된 책을 사서 보고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 나는 또다시 육아서를 찾아보았다. 아이를 낳고 어느 날 나만의 시간이 없어져 버린 엄마들의 마음을 아는지 내가 아름이를 낳아 기르면서 고민할 때 사서 도움을 받은 《베이비 위스퍼》책은 1탄, 2탄에 이어 《베이비 골드》편까지 집필되어 아직도 서점에 나오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아기를 키우는 엄마는 일을 하는 워킹맘이던, 집에서 아이를 전적으로 돌보는 전업주부이던 시간은 늘 부족하다.      

어느 날, 수업과 공부를 끝내고 깜깜해진 밤 10시 무렵에 친정으로 갔더니 아름이도 자고 있고, 하루 종일 아름이를 보느라 피곤하신 친정엄마도 주무시고 계셨다. 그 시간에 마침 일을 끝내고 퇴근하신 아빠와 잠시 식탁에 앉아 과일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었다. 아이를 낳으니 내 시간도 없고 집안일에, 공부에,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아빠께 투덜거렸다. 그때 아빠는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사람은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거야. 특히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더 그렇단다. 집안일은 먼저 보는 사람이 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집도 지저분해지고 일이 쌓여서 하기 싫어진단다.” 


그러고 보니 엄마 아빠가 우리 삼 남매를 기를 때 아침에 아빠가 우리를 깨워서 집 앞에 있는 산에 데리고 가셨던 기억이 났다. 아빠 손을 잡고 산 중턱에 있는 바위에 올라가서 ‘야호~’ 소리도 한 번씩 지르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빠랑 삼 남매가 산에 다녀올 동안 엄마가 차려 놓으신 아침식사를 했었다. 조금 더 자라서는 아빠가 삼 남매에게 청소할 집안 구역을 나눠 주셨다. 안방과 거실은 아빠가 청소하시고 나머지 방과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화장실로 가는 길목을 나눠서 각자 삼 남매에게 청소를 시키셨다. 연탄보일러로 난방을 사용해서 한겨울을 지냈기에 연탄 가는 일을 좀 더 컸을 때 우리 삼 남매가 돌아가면서 하곤 했다. 주말에는 아빠랑 함께 자전거를 타고 약수를 떠서 물통에 담아온 기억이 났다.

그러나 결혼 전 우리 집 상황과 달리, 남편은 평일에는 늘 야근으로 집에 자정가까운 시간에 들어올 때가 많았다. 게다가 주말에도 일하러 가서 주말에 집에 없을 때도 많았다. 어쩌다 주말에 집에 있으면 남편은 평소에 못 잔 밀린 잠을 자느라 늘 바빴다. 한편으로는 남편이 안쓰럽기도 하고,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게 하루에 자는 시간을 빼고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 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야속했다. 어쨌든 남편은 슈퍼맨이 아니니 어떻게든 혼자 육아와 집안일을 감당해내야만 했다.




그러다 임산부였을 때 임산부 체조와 교육으로 도움을 받았던 커뮤니티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엄마의 글을 보았다. 아기들의 개월 수가 비슷한 엄마들이 모여 함께 아기와 놀아주고 책 읽어주는 동아리를 만들자는 글이었다. 글을 쓴 엄마가 나처럼 공부를 하는 엄마여서 일요일에만 꾸준히 시간이 나니 일을 하는 워킹맘이거나 공부를 하는 엄마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글이었다. 비슷한 생각을 한 5~6명의 엄마들이 금세 모였고 일요일에 아기들과 함께 만나 육아에 필요한 정보를 나누었다. 엄마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동아리 아기들에게 읽어 줄 책을 골라 일요일에 만나 책도 읽어 주고 함께 노래도 불러주며 놀아주는 방법을 하나씩 공유해 나갔다. 

육아서에서 보았던 대로 짧은 시간이라도 아름이랑 눈을 맞춰 주고,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을 수 있게 된 6개월 이후에는 시간 날 때마다 아이 눈높이에 맞는 연극이나 공연을 보여주러 가기도 했다. 날이 선선해져 야외 활동하기 좋아진 가을이 되어  동아리 활동을 하는 엄마들이 아기들을 데리고 함께 경복궁으로 유모차를 끌고 갔다. 마침 가족 나들이가 많아진 주말을  겨냥해 경복궁에 온 시민들을 위해 소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 공연이 이어져 야외 스탠드에 앉아 구경을 했다. 

그 와중에 평소 입이 짧은 아름이가 공연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집중해 앉아 있어서 그 틈을 타 나는 재빨리 이유식을 먹이고 있었다. 타악기를 연주하는 두드락 콘서트를 보며 아름이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그때가 아름이가 태어난 지 10개월이라 아직 걷지 못할 때였는데 내 무릎에 앉아서 공연을 보며 타악기의 소리에 맞춰 상체를 앞, 뒤로 흔들며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함께 간 엄마들과 아빠들도 웃으면서 박수를 쳐주었다. 

집안일에, 학교 공부에 처음 하는 육아가 힘들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아름이와 조금씩 더 시간을 함께 나누려 했다. 아름이에게 간간이 틀어주던 음악을 매일 틀어주려고 노력했고, 동아리 활동 가기 전에 읽어주었던 책을 틈나는 대로 읽어주려 했다. 세상의 다양한 모든 것을 내 아이에게 경험시켜 주고 싶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