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딩코치 Young Jun 07. 2021

엄마, 저를 사랑하세요?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늘 엄마 아빠에게 사랑을 확인받으려 이쁜 짓도 했다가 울기도 하고 떼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아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거의 떼를 쓰지 않았다. 아름이가 떼를 쓰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나의 육아방법 때문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되고 안되고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엄마였다. 


 아이를 낳고 제일 힘들었던 때를 떠올리자면 아이가 밤, 낮 없이 수시로 깨는 신생아 때이다. 밤에 잠을 쭉 이어서 못 자는 게 그렇게 고될 수가 없다.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날이 이어지면서 아이가 어떻게 커 가는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자 읽은 육아서에서 밤중 수유에 대한 글을 보았다. 


 아이가 태어난지 첫 돌이 될 무렵에는 밤에 잠을 푹 잘 수 있도록 밤중 수유를 그만해도 되는 시기이다. 그때는 아기들이 유치가 나올 시기라 밤중에 젖을 물고 자게 되면 이가 나오는 방향도 달라지고 충치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밤중 수유를 그만두려면 무엇보다 엄마가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아이가 운다고 밤중 수유를 포기하고 밤에 젖을 주게 되면 아이의 울음이 길어질 수밖에 없어 결국 엄마도 아이도 둘 다 힘들다고 했다. 




 밤중 수유를 끊기로 마음먹은 후 일주일 정도 아이에게 ‘너는 이제 다 커서 밤이 되면 젖을 물지 않고도 잘 수 있어. 젖을 물고 자게 되면 이 모양도 미워지고 충치가 생길 수 있대. 그러니 이제 일주일 후에는 밤에 잠이 들고 나면 아침까지 자는 거야.’라고 매일 틈나는 대로 얘기했다.


 이제 첫 돌이 지난 아름이가 알아듣지 못해도 반복해서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밤중 수유를 끊기로 한 전 날, 내일부터 밤에 젖을 먹지 않고 잘 수 있는 어린이가 되었다고 함께 손뼉 치고 화기애애하게 잠을 청했다. 아름이는 내가 박수를 치며 웃자 나와 같이 고사리손으로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밤중 수유를 끊기로 한 첫날은 다시 기억을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아름이가 울며 보챘다. 회사에 다니는 남편이 아이 울음소리에 잠을 못 잘 까 봐 작은 방에 가서 밤새 우는 아름이를 달래며 속으로 그냥 젖을 물릴까 수백 번을 고민하다 날이 밝았다. 아마 남편과 함께 그 밤을 보냈더라면 분명히 밤중 수유를 끊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귀가 먹먹해졌고, 비몽사몽 중에 새벽 동이 터 올랐다. 아름이에게 ‘잘 잤다!!’ 말해주며 창문을 열고 밖을 보여주며 아침이 밝았다고 얘기하고 '자. 이제 아침이 되었으니 아침을 먹어야지.'라고 말해주며 젖을 물렸다. 아이는 울먹거리며 젖을 물었고 아침 반나절을 나랑 아름이는 밤중인 것처럼 기절한 듯 잠이 들었다.


 환한 낮이 지나 다시 저녁이 되자 나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오늘 밤에도 어제처럼 울지 모른다는 걱정과 다시 아름이가 그렇게 울어대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러한 내 걱정과는 달리 모유수유를 주지 않은 둘째 날 밤, 아이는 그 전날보다 울음소리도 작아졌고 피곤해서인지 중간중간 깨어나긴 했지만 첫날보다는 눈에 띌 정도로 울음이 줄어들었다. 3일째가 되자 잠깐씩 칭얼거릴 뿐 드디어 밤에 푹 잘 수 있었다. 




 아름이가 기특하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에 낮에 더 잘 놀아주고 이유식을 먹이고 바로 젖을 물리며 아름이에게 칭찬을 듬뿍 해주었다. 이제 많이 커서 밤에 안 깨고 잘 잘 수 있게 되었다고 칭찬해주었다. 그렇게 밤중 수유 끊기에 성공하고 나니 이제는 아름이가 밥을 먹일 때 돌아다니면서 먹는 게 눈에 띄었다.


 돌이 지나 아름이가 걸어 다니기 시작하니까 궁금한 게 많아서인지 앉아서 밥을 먹지 못했다. 밥을 한 입 먹고 돌아다니면, 다시 식탁으로 아이를 데려와 한 숟갈 떠 먹이고 급기야 쫓아다니면서 밥을 먹이거나 입에 물고 있는 밥을 삼켰는지 재차 확인하곤 했다.


 아름이는 말을 빨리 한 편이다. 18개월 때 말을 종알종알하기 시작하더니 20개월 될 무렵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어지간히 표현을 하는 아이였다. 더 크기 전에 자리에 앉아 밥 먹는 습관을 들이려고 일주일을 앞으로 식사시간에 지킬 규칙에 대해 아름이에게 알려주었다. 이제는 아름이가 커서 진짜 언니가 되었으니 아가처럼 돌아다니지 말고 식사시간에 앉아서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름이가 시간을 잘 모르지만 시계를 가리키며 짧은바늘이 숫자 12를 가리키면 12시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1시간 정도 밥을 먹으면 점심식사시간이 끝나서 식탁을 깨끗이 치울 거라고 했다.


 아름이는 입에 밥을 넣으면 오래 씹어 먹었다. 밥을 먹이다 지쳐서 언젠가 한 번은 아이가 음식을 입에 넣고 몇 번이나 씹는지 세어 본 적이 있다. 아름이는 입에 밥을 넣고 100번 정도 씹고 나서야 입안에 있는 음식을 꿀꺽 삼켰다. 오래 천천히 음식을 먹는 아름이를 위해 밥 먹는 시간을 1시간으로 넉넉히 잡았다.


 그날도 아름이는 돌아다니면서 밥을 먹었다. 처음에는 엄마인 내가 먼저 밥을 먹었고 그다음에는 아름이 밥을 먹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식사시간으로 정한 1시간이 지나자 식탁에 있는 그릇을 치웠다. 아직 밥을 다 먹지도 않았는데 식탁이 깨끗하자 아름이는 의아한 듯 어리둥절해했다. 그리고 내게 밥을 달라고 했다. 나는 아이에게 저녁시간까지 기다려야 밥을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름이는 과자를 달라고 했다. 과자는 밥을 다 먹어야지 줄 수 있는데 오늘은 밥을 다 먹지 않았기 때문에 과자는 없다고 얘기해주었다.


 아름이는 울기 시작했다. 밥을 달라고, 과자를 달라고, 아니면 과일을 달라고 떼를 썼다. 아름이가 떼를 써도 모른 척했고 대신에 좋아하는 놀이를 하자고 말했다. 오늘 날도 더운데 욕조에 물 받아서 물놀이하면서 놀자고 했다. 아름이는 놀다가도 문득 배가 고픈지 칭얼거렸다. 그렇게 밥을 제자리에 앉아 먹지 않고 일어나서 돌아다니면 다시 밥을 준다거나 간식을 주지는 않았다. 


  일관된 행동으로 아이를 대하자 쫓아다니며 밥을 떠먹이지 않을 수 있었다. 드디어 아름이는 제자리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 친구 엄마들과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간 적이 있다. 4살 아이들은 식당을 돌아다니고 엄마들은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밥을 먹였다. 그러나 나는 아름이가 앉아서 밥 먹는 습관을 들인 후라 나와 함께 앉아 식사를 했다. 물론 먹는 걸 무척 좋아하는 아이라서 더 그럴 수도 있긴 하다. 아름이가 앉아서 칼국수를 담아준 한 그릇을 다 먹는 모습을 보고 '내가 더 줄까?'라고 물어보았더니 아름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내가 다시 담아준 칼국수를 앉아서 다 먹을 때까지 앉아 있는 걸 보고 모두들 놀라워했다.




 나는 아이에게 습관 들이는 것을 잘한 편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잘하는 것도 있으면 못하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흔들리지 않고 잘 가르친 엄마였지만 나는 아름이에게 정서적으로 공감을 하거나 칭찬하는 횟수가 적었다. 그전에도 아름이는 내게 신호를 보냈지만 무심한 엄마였던 나는 그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아름이는 나에게 곧잘 이렇게 물었다. 


“엄마, 나를 사랑하세요?”


“음, 그럼 사랑하지.” 대답을 해도 아이는 계속 물어보았다. 그렇게 아이가 똑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하면 엄마가 널 사랑하지 않으면 학교도 보내지 않을 거고, 밥도 안 주고, 옷도 사주지 않을 거라고 대답했었다. 그런데도 2~3년이 지나도록 잊어버릴만하면 아이는 내게 사랑하냐는 질문을 했었다. 내가 나의 이런 모습을 알게 된 것은 아이가 한창 자라 10살이 되었을 때였다.


 나는 일을 하면서 상담을 할 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전화를 보거나 받지 않는다. 얘기하고 있을 때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다니던 아름이는 내게 자주 전화를 했다.

 어느 날이었다.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소리가 나지 않게 급하게 핸드폰 버튼을 눌렀다. 연달아 5번째  핸드폰이 울렸다. 내 앞에 있던 분이 먼저 ‘전화받으세요, 급한 전화인가 봐요.’라고 얘기를 해서 전화를 받았다. 


“엄마~!!” 평소 아름이보다 상기가 된 목소리였다. 

“응, 그래”

“엄마, 나 과학상상화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금상 탔어요!!”

아름이가 무척이나 기뻐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 그래. 잘했다. 애썼어. 엄마 지금 일하는 중이니까 이따 집에 가서 보자.”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금세 아이가 상을 탔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에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름이는 또다시 내게 말했다. 


“엄마, 나 과학상상화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금상 탔어요.”

“어, 알아. 아까 전화해서 말했잖아.”라고 나는 대답했다.

아름이는 또 내게 물었다. 


“엄마, 저를 사랑하세요?”


“그럼. 그런데 왜 자꾸 물어봐?” 그날은 아름이가 사랑하냐고 여러 번 묻지 않았는데도 내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났다.

“엄마는 내가 상 탄 걸 진심으로 기뻐하지 않으셨잖아요.”

아이가 무척이나 속상해하는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뜨끔했다. 얼른 아이를 안아주며 말했다. 

“엄마가 미안해. 아까는 일을 하고 있어서 엄마가 더 길게 전화받을 수 없어 그랬어. 네가 상을 받아서 엄마도 얼마나 기쁜지 몰라.”


 아름이는 나의 말에 만족스러운 듯 나를 꼭 껴안았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이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왜 나에게 자기를 사랑하냐고 묻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평소에 사랑한다는 표현도 잘 안 하고 아이에게 가르치려고만 했지 따뜻한 말이나 포옹은 잘하지 못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아이를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아름이는 한 번이 아니라 10번이 넘게 사랑한다고 표현해 줘야 하는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아이였다. 어릴 때는 자신의 그런 마음을 말로 표현이 하지 못해서 나에게 계속해서 자기를 사랑하냐고 몇 번이고 물어본 것이었다. 




 “습관의 쇠사슬은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가늘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끊을 수 없을 정도로 이미 굳고 단단해져 있다.”라는 미국의 36대 대통령 린든 베인스 존슨의 말처럼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나의 말투는 쉽사리 변하지 않았다. 일을 하러 밖에 나와 있을 때 아이를 생각하면 늘 미안했다. 좀 더 따뜻하게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어야 했는데라는 반성을 하곤 했다. 그러나 밖에 있을 때와 달리 집으로 돌아가 아이를 마주하면 나의 생각과 달리 평소의 내 모습이 불쑥 나와 버렸다. 그렇게 아름이에게 말을 쏘아붙인 그날 밤에는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안해했다. 어떻게 하면 내 말 습관을 고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이어졌다. 


 아이 책을 함께 읽으며 아이에게 공감해주는 말이 나오면 여러 번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따라 해 보았다. 다음번에는 책을 읽을 때가 아니라 내 아이에게 책에서 나온 말을 꼭 해주겠노라 다짐도 했다. 그러나 막상 생각과는 달리 아이에게 칭찬해주어야 할 그 순간이 지나서 '아, 아까 잘했다고 말했어야 했는데'라고 깨닫는 순간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름이에게 오랫동안 연습한 공감의 말을 한마디 해주고 스스로 뿌듯해했다. 아이가 10번을 잘못했을 때 10번 모두 혼내던 엄마였는데 정말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아이를 혼낸 날이면 밤에 자는 아이를 보며 반성도 많이 했다. 그러나 나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아이에게 공감을 잘한 날보다 못한 날이 더 많기는 했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아이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듯이 나도 엄마로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이전 03화 학교는 엄마가 아니라 아이가 다니는거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