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6살이 되었다. 1년이란 시간이 흘러 5살보다 겨우 한 살 더 많은 6살인데 남편은 마음이 조급한가 보다. 평소에 아이 교육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아름이가 아기였을 때 동아리를 만들어 여기저기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시켜 줄 때에도 내게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런 남편이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라고 말을 했다. 처음에는 그냥 흘려듣고 지나쳤는데 나에게 몇 번을 더 얘기했다. 남편의 조카는 4살에 한글을 읽을 줄 알아 신문을 읽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 조카에 비하면 아름이는 6살이니 비교가 될 만도 했다. 그러나 나는 남편과 생각이 달랐다.
우리 세대에서는 한글을 모른 채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때는 학교 가서 한글을 배우면 되니까 일부러 한글을 배우고 학교에 갈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학교 가기 전에 한글을 떼고 갔다. 내가 한글을 떼고 글씨를 읽을 줄 안 후에 학교에 가서 그런지 굳이 아이가 한글을 지금부터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라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빠가 말씀해주신 나는 오빠 틈에 끼여 한글을 배웠다고 한다. 내가 어린 나이여서 그런지 아빠가 내게 한글을 아무리 가르쳐도 너무 몰라서 더 이상 가르치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모르는 글자에 대해 귀찮을 정도로 아빠께 몇 번이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엔가 한글을 떼고 글씨를 읽더니 혼자 책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내 기억에 학교 가기 전 어느 날이었다. 그 당시에 재미있게 봤던 만화책 시리즈가 있었는데 신간이 나오면 오빠 손을 잡고 서점에 가 책을 사서 집에서 재미있게 읽던 기억이 난다. 아름이도 나처럼 스스로 한글을 알고 싶을 때가 올 거라 생각했다.
늦가을이 되어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나의 마음은 슬슬 초조해졌다. 아름이 나이 또래인데 주변에 한글 학습지를 하는 친구들은 벌써 한글을 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더 걱정이 되었던 소문 중에 하나는 요즘 초등학교 숙제가 엄마 숙제라는 얘기를 듣고 나서부터였다. 한글을 읽고 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료를 찾아 스스로 아이 자신의 생각을 써야 하는 숙제가 학교 숙제라는 것이다.
아니, 아직 한글도 모르는 아이와 이제 한글을 겨우 알고 읽고 쓸 줄 아는 아이가 어떻게 그런 숙제를 할 수 있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주변 지인에게 ‘학교는 아이가 가는 건데 왜 엄마가 숙제를 하는 거래?’라고 물었더니 교과서가 바뀌어서 그렇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부모세대와 달라졌다는 교과서를 본 적이 없어 교과서 내용이 무척 궁금해졌다. 마침 우리 아파트 같은 동에 살고 있고, 아이가 3명 있는 언니를 만나 물어보았다. 그 언니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2학년, 4학년, 5학년이었다.
어느 날 시간을 내서 그 언니 집에 들렀다. 그러자 언니는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여주었다. 요즘은 교과서를 집에 들고 다니지 않고 학교에 두고 다닌다고 알려 주었다. 아이들이 숙제가 있을 때 교과서를 들고 집에 와야 하는데 자꾸 잊어버려서 그 언니는 집에 아예 교과서를 사놓았다고 했다.
아이들 교과서를 훑어 보여주면서 1학년 교과서는 이렇고, 그 다음 학년 교과서를 보여주며 별 거 없다고 얘기를 했다. 그리고 다른 여러 얘기를 들었는데 나는 내가 듣고 싶은 얘기만 기억을 했다. 나보다 먼저 아이 셋을 초등학교에 보내는 동네언니의 말 한마디에 나는 아직 한글을 가르치지 않은 것에 대해 안심을 했다. ‘뭐 별 거 없어.’라는 언니의 마지막 말만을 기억하고 느긋하게 겨울방학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마침 집에서 멀지 않은 출판사에서 부모세대와 달라진 현재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교육과정에 대한 부모교육이 있다고 해서 교육을 들으러 갔다. 2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교육을 듣고 나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교육내용의 핵심은 이러했다. 우리 부모세대 교육방법은 선생님이 주체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주입식 교육이었는데, 지금 시대와 동떨어진 교육이어서 2000년부터 아이가 학습의 중심이 되는 교육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에 아이를 보내도 부모세대처럼 학교에서 다 가르쳐 주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가 배우는 교과서에 따라, 주제에 맞춰 자료를 조사해서 학교에 가면 모둠별로 토론, 토의하고 발표를 하도록 교육과정이 바뀌었다.
7살이 되었는데 아직 한글을 떼지 못한 아름이가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보려면 아이가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는 질문이 많은데 그 당시 아름이는 질문이 거의 없었다. 궁금한 게 별로 없는 아름이가 학교에 가서 수업시간에 손 번쩍 드는 건 고사하고 학교에 가면 재미있어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아이는 무얼 하든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아름이가 학교에 가서 어떻게 적응할지 걱정이 되었다. 결국 학교는 아이가 다니는 거지 엄마가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교육이 끝나고 내가 엄마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뭘까라는 생각에 잠겼다. 한 번 들은 교육으로는 내 머릿속만 복잡해졌을 뿐 구체적으로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제까지 아이를 키운다는 걸 막연하게만 생각해왔다. 그러나 어떤 교육을 받고 키우느냐에 따라 아이가 어디서든 즐겁고 자신감 있게 자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읽는 책에 대한 시선이 바뀌었다. 내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현재 교육과정과 아이들 발달에 대한 교육을 체계적으로 들을 수 있고 아이 책을 마음껏 읽어 줄 수 있는 북큐레이터로 일하리라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집안일과 육아를 함께 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버거웠지만 매일 아침, 아이 발달에 대한 교육과 아름이에게 읽어 줄 책에 대한 교육을 들으며 마음만큼은 어느 때보다 한결 가벼웠다. 아이와 관련된 교육을 매일 들으며 한 때 나 자신만을 생각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몸이 아파 아이에게 밥만 주고 신경을 제대로 못쓰며 키웠던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또한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을 들으며 감동을 받았다. 매일매일 내가 엄마로서 아이와 책을 읽는 경험이 곧 나의 일로 연결되었고 아이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 엄마로서도 성장한다는 걸 느낄 수 있어 즐거웠다.
어느덧 아름이는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되었다. 아름이와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집에 놀러 갔다. 학교에서 아름이와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같은 학교에 보내어서인지 공통된 이야기가 많았다. 담임선생님에 대한 얘기, 숙제는 어떻게 해 가는지, 내가 출근한 후 아침에 혼자 아름이가 씩씩하게 학교 가는 모습을 본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 엄마는 아름이가 마르고 키는 작지만 아침마다 보는 씩씩한 모습에 내가 걱정할 것 없겠더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다 나는 그 집 아이가 숙제하고 있는 방문에 붙여진 상장을 봤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1년 동안 받은 상장이 그렇게나 많은 걸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아름이는 초등학교 1, 2학년에 받은 상장이 별로 없다. 1년 동안 저렇게 다양한 상을 받아왔다는 걸 보고 놀랐고 혹시라도 아름이가 상을 받았는지 물어볼까 싶어 급하게 그 집을 나왔다. 물론 아름이에게 친구 집에서 본 상장에 대해서 일절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 숙제를 도와주지 않았다. 학교는 아이가 다니는 거라 생각해 학교 숙제를 아름이가 잘하지 못하고 완성을 못했어도 그냥 학교에 보냈다. 아이 스스로 최선을 다해 숙제를 해서 학교에 보내려고 했지 엄마인 내가 숙제를 도와주면 아이는 다음에 또 엄마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게 분명하다 판단했다.
그리고 내가 일을 시작할 때라 집에 와서 아이 숙제를 봐주고 저녁을 해 먹이기만 해도 늘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1학년 때 집 근처 공부방에 아름이를 보냈다. 선생님과 다른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방법을 배워왔으면 싶어 아이를 공부방에 보냈다. 그 공부방 선생님은 아이들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셔서 기본 공부하는 시간 외에도 엄마들이 놓치고 갈 수 있는 숫자 쓰기를 시켰다.
아름이가 숫자를 5번씩 똑같이 써야 하는 걸 너무 힘들어해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3번으로 줄여주었다. 그러나 아름이는 며칠 지나지 않아 또 힘들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공부방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도 다 하는데 한 아이라도 안 하면 아이들을 관리하기 어려워진다고 대답해주셨다. 그래서 아름이에게 힘들어도 하다 보면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얘기하면서 숙제를 해가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는 결국 숙제를 하지 않고도 했다는 거짓말까지 했다.
아름이는 1학년 때 연필 잡고 글씨 쓰는 것을 유독 힘들어했다. 5월이 되자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학부모와 선생님이 만나 상담하는 기간이 있었다. 1학년 담임선생님과 아이가 힘들어하는 부분에 대해 상담을 했다. 선생님은 아이가 연필 잡는 것을 힘들어하면 소근육을 많이 움직일 수 있도록 색칠하기, 가위질, 종이접기 등을 많이 시키라고 하셨다. 연필 잡기도 힘든데 글씨 쓰기부터 시키면 아이는 질려할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그 일을 계기로 숫자 따라 쓰기를 그만하고 집에서 아이에게 맞게 공부습관을 잡아가기로 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학습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심어 주고 싶지 않았다. 학교에 가서 아름이가 즐거웠으면 해서 학교 급식 식단을 보고 오늘의 메뉴를 보며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고 만족했다. 아침에 자기 몸보다 큰 가방을 메고 아파트 지상 주차장선에 그려진 선 따라 삐뚤빼뚤하게 씩씩하게 걸어가는 아름이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부모라면 유대인처럼》책에서 유대인 부모는 아이에게 학교에 가서 “가서 얌전히 선생님 말 잘 듣고 와.”가 아니라 “오늘은 어떤 질문을 했니?”라고 물어본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아름이에게 아침에 학교 갈 때 “오늘도 학교 가서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고 궁금한 게 있으면 선생님께 질문하고 와”라고 말을 해주었다. 질문을 하는 아이는 수업 내용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고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아이이다. 아이가 수업시간에 질문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수업시간을 재미있어한다는 증거이기에 아름이가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길 바랐다. 배움이 즐겁다는 생각을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름이가 아침에 학교 갈 때 나의 인사는 궁금한 게 있으면 선생님께 꼭 물어보라는 말로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