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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섀도우 Dec 02. 2022

델포이 신탁과 법치주의자의 죽음

운명을 거스르러는 몸부림과 달리...


 그리스 신화의 델포이 신탁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관점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을 낳은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짝으로 삼는다'는 신탁을 받아 버려진 오이디푸스는 양부모 밑에 자라다 친아비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자식을 낳는다. 트로이 전쟁에 끌려가면 20여년을 조국에 돌아오지 못한다는 신탁을 받자 오디세우스(율리시스)는 미친척 하고 소금을 뿌리며 당나귀로 밭을 갈았다.

 이처럼 암시된 운명에 반할수록 그 운명의 길을 따라가는 그리스식 희곡은 비천한 천민으로부터 한 도시국가의 왕까지, 왕후장상을 가리지 않는다. 조금이나마 신탁의 예언을 피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정해진 순리로 한 발짜국 가까이 걸어가게 된다.


 한국의 윤 대통령은 당선되고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하면서 "청와대로 들어가면 죽는다"는 어느 법사의 말을 따랐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리스식 터부(Taboo)는 평생 법조인의 길을 걸어온 그에게도 공포를 심어주었을 지 모른다. 그는 '청와대'라는 건물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델포이 신탁은 에둘러 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쩌면 '청와대'라는 것은 단순한 건물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광복 이래로 한국에서의 청와대는 대통령만의 공간으로 알려져 왔다.

 알고보면 '대통령이 되면 (정치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죽는다.'는 예언을 완곡하게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마천이 남긴 태사공서(사기)는 고대 중국의 상고 시대부터 전한 무제 시대의 역사를 저술한 책으로 유명하다. 춘추전국시대의 흥망성쇠를 살아가는 온갖 인간군상의 열전 또한 흥미로운 점인데 그중에 여러 법치주의자(법가 사상가)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제자백가의 법가 사상으로 유명한 공손앙(상앙)은 강력한 법치주의로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었지만 법의 잣대로 원리원칙을 내세우며 많은 정적을 만들었다. 자신을 지지하던 군주가 노환으로 서거하자 상앙에게 당했던 정적들이 세자와 규합하여 상앙을 탄핵했고, 망명길에 올랐던 상앙은 자신이 만든 엄격한 법에 의해 숙박을 거부당하는 등 자승자박 당하다 잡혀 능지처참을 당했다. 

 전한시대 조조(晁錯, 삼국지의 조조가 아니다)는 법의 잣대로 한고조의 혈족들의 권력을 빼앗다 오초 7국의 반란이 일어나자 법치를 구실로 황실 간의 이간질 한 죄 - 반란 명분을 없애기 위해 - 즉결 처형당했다. 

 골계미 - 조조의 아버지는 조조가 처형당하기 한참 전에 '집안에 망하는 꼬라지를 볼 수가 없다'며 자살했다.


 사실 법은 사람이 만든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법 또한 완벽할 수 없다. 만인의 투쟁 상태에서 사회적 합의로 서로의 자연권리를 양보하여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 주장한 홉스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지마는. 법은 사회가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만 존재해야 한다. 법적인 잣대는 사람들 간의 대화와 타협, 양보와 합의가 결렬되었을 때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결함 많은 인류가 만든 거친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200여일이 갓 넘은 대통령과 행정안전부, 법무장관과 같은 심복들은 미처 법복을 벗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앉아 모든 걸 법으로 재단하려는 것 같다.

 200여일 동안 한국이 겪은 수많은 정치적 난제에서 용산과 행정부는 너무 무능한 모습을 보여왔다. 코로나19 후속대처, 경유값 인상, 비속어 논란 - 외교적 결례, 언론 편향 및 검열 시도, 이태원 참사, 파업에 대해 협상 의지가 없는 업무개시명령 등등...

 사실 공손앙과 조조는 능력이라도 뛰어났다. 단지 너무 엄격한 법적인 잣대를 들이대서 그 자신과 집안이 멸문당한 것이지. 그들이 섬긴 나라는 그 법치주의로 강국이 되었다. 


 각자의 자연권을 양도(희생)해서 만든 정부가 권력을 오용하고 남용하면 사람들은 법을 무시하거나, 정부를 전복시킬 것이다. 로크가 주장한 대로 말이다.**


Eugène Delacroix - Lycurgus Consulting the Pythia


 델포이 신탁 이야기로 돌아와서. 청와대로 가면 죽는다는 루머 - 

운명을 거스르려는 몸부림과 달리 그 스스로가 죽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으로 보여 안타까울 다름이다.




* 홉스(T. Hobbes)의 리바이어던(Leviathan) 

** 로크(J.Locke)의 통치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의 폭정(Tyranny)에 대한 시민의 저항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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