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지에서 만난 소소한 인연
병맛 개그로 점철된 기내 안내방송으로 유명한 EVA AIR를 타고
2차세계대전 독일의 전투기 조종사였던 갈란트 중령이 처음으로 제트 전투기를 타보고 나서 남긴 한줄평, "마치 천사가 등 뒤에서 밀어주는 것 같았다". 그의 말마따마 여객기는 활주로를 가속하기 시작했고, 발치로 피가 쏠리는 기분과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깐깐한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온 우리는 한사람당 코로나 키트를 한 박스씩 쥐어주는 타이완의 관대함에 놀랐다. 나중에 호텔와서 뜯어봤는데 한 박스에 4개씩 들었다. 오오 차이잉원 총통각하 오오!
- (공항에서 호텔 등으로 이동하는 경우) 코로나19 유사증상이 없는 경우 대중교통, 방역차량, 친인척 차량, 自車 모두 이용 가능
- (자발적건강관리기간) 대만 입경 시 제공받은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4개)로 △입국일 또는 격리 1일차에 검사 필히 실시, 검사 결과에서 음성인 경우에만 외출 허용(동 결과는 검사 당일에서 익일까지 효력 유지)
- 자발적건강관리기간에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이 나온 경우에는 방역호텔, 집중검역시설 또는 原 장소에서 격리 실시
코로나19 관련 입국제한조치 변경(2.7.부터) 상세보기|코로나19주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 (mofa.go.kr)
환전과 환율, 그리고 로밍
블로그와 여러 여행정보 사이트를 뒤지며 알아봤지만 도대체 여행 경비를 얼마큼 쓸 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대만 야시장이나 관광지, 택시 같은데서는 지폐가 많이 쓰인다곤 했는데...
나는 총 4개의 결제 수단을 준비했다.
1) 200미화달러를 환전해서 약 6천 뉴타이완달러(NTD, 위엔) 현금(Xiànjīn)
2) 현지에서 개통할 교통카드인 EasyCard(자오통카交通卡 = 이지카)
3) 한국에서 미리 준비한 네이버 Line Pay
4) 그리고 기념품을 구매할 때 혹시나 해서 준비한, 달러결제가 가능한 비자카드(信用卡, Xìnyòngkǎ).
2023년 1월 30일 당일 기준으로 환율은 NTD 1위엔 당 한국 돈 40원과 비슷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위엔에 40을 곱하기 시작했고 대만의 대략적인(?) 물가를 알게 되었다.
- 버스와 전철같은 교통비 등 몇몇을 제외하곤 그리 싸지 않고 한국과 비슷하다. 단, 음식의 퀄리티를 생각하면 60-70%정도 저렴하다는 건 맞다.
- 2021년 기준 타이완의 1인 GDP는 약 3만 3천 달러, 하지만 평균임금은 GDP의 약 70%인 약 2만 2천달러(약 2800만원)
- 2023년 대만의 사회초년생/하층민들의 평균 월급은 32691위엔(약 130만원), 평균값은 128,958위엔(약 570만원)이다.**
한국은 하층민 평균 98만원, 평균값은 약 380만원이다.
- 대만은 노조가 없고 양극화가 심한 나라라고 들었다.
** Average Salary in Taiwan for 2023 (worldsalaries.com)
공항 1819A 버스(국광버스) : 140위엔(5600원)
공항철도 타이베이국제공항-타이베이역 편도 150위엔(6000원)
야시장 먹거리들 대략 50~80위엔(2000~3200원)
괜히 이지카/유심 판매하시던 직원분들이 2박3일 있을거면 한사람 당 적어도 500위엔씩 넣어두는 게 좋다고 한 게 아니었다.
*이지카는 한 장에 100위엔이다(충전료 별도)
로밍은 한국의 통신사들을 다시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KT는 24시간 당 11000원해서 이틀동안 2만 2천원을 결제했는데 여자친구의 SKT의 로밍은 무제한 24시간은 19000원 / 9900원을 내고 300메가바이트에 속도제한이 붙.... 여자친구는 SKT 버리기로 했다.
현지에서 두 통신사에서 파는 유심은 3일에 270위엔(10800원)/300위엔(12000원)이었다. 대충격...
도대체 한국 통신사들은 얼마나... 읖읖.
현지 통신사의 품질이 안 좋을 우려가 있어서 나는 KT로밍 서비스를, 여자친구는 현지 통신사의 3일짜리 유심을 구매했다. (다 쓰고 버리면 된다고 했다)
민트빛 신호등
퀴퀴한 광역버스에서 꿈뻑꿈뻑 졸면서 호텔 근처 정류장에서 내리자 수많은 가로수들이 식재된 아름다운 거리가 나타났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중국어를 들으며, 나는 이제야 이역만리 이국땅의 낮선 이방인임을 실감했다.
타이완의 신호등은 민트색이었다. 보행자의 도보등과 차량의 적색 신호등 옆에 숫자등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인 지 표시되는게 신기했다. 몇몇 횡단보도를 빼고는 어르신들도 건널 수 있게 넉넉하게 1분씩 켜지는 데가 대부분이었다. 한국 같았으면 왕복 2차선 짧은 신호등이면 금방 꺼지고 차들이 쌩쌩 다니겠지만 대만은 보행자 신호등이 오래 켜져 있다.
오토바이, 스쿠터의 세상
세상에, 그렇게 오토바이가 많을 줄 몰랐다. 아예 차선 앞으로 오토바이들이 서 있을 수 있는 존이 있었다. 타이완의 오토바이들은 좌회전 신호 시 꺾지 않고 좌회전 할 예정인 차선의 네모난 정차 존에 서서 직진 신호를 기다린다. 도로 폭이 좁아 차량 전용 차선과 오토바이용으로 폭이 좁은 차선이 나뉜 곳이 많았다. 물론 도로 가장 바깥쪽에는 오토바이들이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한국의 버스전용차로마냥 몇몇 큰 도로에는 1차선이 버스(빠스, 公車 꽁처)차선으로 나뉘어 정류장(公車站 꽁처짠)이 있었다.
타이완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형형색색 귀여운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와 스쿠터를 타고 정차존에 서 있는 모습이란... 언젠가 타이완의 어느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그림 한 장이 이제야 와닿는다.
The Okura Prestige Taipei Hotel
타이완과 일본과의 친한 관계를 알 수 있는 게, 타이완에서 일본계가 아닌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도로를 다니는 차량들은 도요타와 미츠비시, 편의점의 양대 산맥, 패밀리마트(全家,췐자)와 세븐일레븐 등. EVA air와 헬로키티 콜라보레이션 등. 한때 일본의 '비교적 온건한' 식민 통치를 받아서일까, 아니면 같은 섬나라라 통하는 게 많은지도?
여행 전부터 타이베이의 여러 호텔들을 알아봤지만 우리가 꼭 가고싶은 곳들과 메트로 등 교통편을 고려해서 오쿠라 프레스티지 호텔로 정했다. 그리고 호텔 1층에서 기념품으로 펑리수(鳳梨酥)를 팔기에, 귀국할 때 기념품으로 살 생각이었다.
호텔의 삐까뻔쩍한 건물과 대비되는, 타이베이 도심지의 낡은 건물과 신축 건물들이 뒤섞인 전경은 마치 '응답하라 1994' 마냥 20여년 전 과거로 여행을 온 기분이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오면서 본 타이완의 시골과 도심의 낡은 거리를 보면서 드는 생각. 한국은 너무나 쉽게 재개발을 하는 것 같다. 한국은 건물의 수명이 남았음에도 부수고 반짝반짝한 새 건물을 짓는다.
내가 살던 동네는 다른 동네 부자들이 멀쩡한 빌라 건물을 사들여 가게와 세입자들을 내보내고 그 자리에 신축 원룸건물을 올린다. 저녁까지 불을 켜두던 상가들이 사라지고 희미한 조명으로 필로티 기둥 사이로 차를 쑤셔 넣는 원룸촌이 되면서 골목길은 더더욱 어두워지고 소비자들의 발길이 끊긴다. 그렇게 20년 넘게 동네 사람들의 목을 축이던, 벽을 뒤덮는 담쟁이덩쿨과 장독대와 작은 연못이 있던 고풍스러운 주막이 헐리고, 차 세 대를 흉물스러운 차단기가 가로막는 '말끔한' 필로티 원룸 건물이 생긴다.
- 그렇게 동네가 서서히 고사한다. 집주인들은 건물값이 오른다고 좋아한다. 반들반들한 슬럼가로 변하고 있는데 말이다.
타이완은 그런 파괴적인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점이 다른 여행자들을 실망시킬 지 모르겠지만.
내 어릴 적 추억 속 이미지의 8-90년대의 촌스럽다면 촌스러운, 세월의 흐름과 사람의 손길이 닿은 낡은 건물들과 신축 건물들의 세련됨이 조각보마냥 섞여있는 것이, 사진과 어줍잖은 글솜씨로는 묘사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향수가 느껴진다.
그렇게 치사량의 타이완 뽕을 맞아버린 나는 호텔의 19층에서 발전하고 있는 타이베이의 찰나의 순간을 목격하고 있었다.
타이완의 필로티 건물들과 기후
타이베이 시의 거의 모든 건물들은 타이완의 열대기후로 인한 스콜(비)을 맞지 않고 다닐수 있게 배려한 것인지 대부분 필로티 구조로 되어 있었다. 보행자들이 차나 바이크에 치이지 않도록 분리되어 있는 것과 함께, 좁은 섬나라에서 2층 이상의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함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가 머무른 3일간은 햇볕이 쨍쨍한 사흘이었고 (우리가 떠난 뒤로 일주일 가까이 비가 예정되어 있었다) 덕분에 쾌적한 여행이었지만, 구질구질 스콜을 맞아가며 건물 사이를 뛰어다닐 생각을 하면 아찔하기도 하다. 1월 말임에도 낮 최고기온이 16도까지 올라 더우면서도 간간이 매서운 찬바람이 불어 한국에서 입었던 두꺼운 패딩을 입었다 벗었다 했다. 짐이 늘어도 자켓을 따로 들고갈껄.
날씨 이야기를 더 하자면. 1월 30일 즈음부터 타이완에도 한파(?)가 몰아닥쳐 영상 6도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난방이 미흡한 아열대 지방이라 최소 160여명이 심근경색 등 이상기후로 인해 사망했다고... 여행 중에 부고 소식을 들으니 안타까울 다름이었다.
괴물눈의 토끼 - 신광 미츠코시 백화점 ShinKong Mitsukoshi
타이베이 시내에 몇 블록만 다니면 수많은 명품 브랜드관들과 호텔, 그리고 신광 백화점을 볼 수 있다. 올해가 토끼의 해라고 자신들의 마스코트를 눈 세 개 달린 토끼라는 그로테스크한(...) 디자인의 토끼가 탄생하게 된 것 같다. 대충 현지인들의 반응이 궁금해지는 마스코트 디자인. 이걸 통과시켜준 신광 경영팀에 존경?을 담아.
딘다이펑 난시점(鼎泰豐 南西店)
수많은 여행 선구자들의 추천을 받아. 신광 백화점 지하2층에 있는 딘다이펑에 도착했다.
5시반 즘 도착해서 웨이팅 40분이 걸렸고 백화점을 구경하고 돌아왔다. 워 쓰 한궈런(我是韓國人)으로 시작한 우리의 손발짓 주문에 맞추어 한국어/영문으로 된 메뉴 리스트를 보며 주문했다.
매콤한 오이무침, 시금치무침, 샤오롱바오, 새우 샤오마이, 갈비튀김계란볶음밥, 후식으로 토란 샤오롱바오까지. 든든하게 먹고 현금을 아끼기 위해 라인페이를 이용했다. 값은 부가세 10% 더해서 1130위엔(약 4만 5천원) 정도.
든든히 먹은 것 치고 체감상 정말 싼 물가다. 한국 딘다이펑과 비교해보니 이 정도 먹으려면 한국에선 약 6만원 정도 나왔을 것 같다.
오이무침(100위엔/4000원) 은 향신료 향이 느껴지는 새콤아삭하고 맛있었는데 여자친구는 아삭한데 느끼하다고 별로라고 손을 못대더라.
- 여기서부터 우리의 식도락 타이완 여행의 위기가 시작될 줄은 몰랐으니...
시금치나물볶음(230위엔/9200원) 세상에 타국에까지 와서 시금치나물을 먹는 우리가 빌런같지만. 대만은 어떻게 시금치나물을 하는지 궁금했었고, 너무 맛있었다. 조금 물리긴 했지만.
샤오롱바오(소룡포) (5개 125위엔/6000원)
샤오롱바오는 옆을 살짝 찢어서 국물맛을 보는데 키야... 육즙 맛이 진짜 훌륭했다.
새우 샤오마이(185위엔/7400원) 위에 얹은 새우살이 꼬들꼬들하고 맛있었다.
대망의 갈비튀김계란볶음밥(280위엔/11200원), 너무 맛있었어...흑흑 너무 맛있어...고기 퀄리티가 미쳤어..
후식으로 나온 토란 샤오롱바오는 팥앙금맛이 비슷하게 나는 속이 꽉 찬 팥앙금을 얇은 반죽포로 싸서 따뜻하고 달콤한 맛이었다. 너무 좋았다.
2박 3일 여행중에 두 사람 모두 입맛이 가장 맞았던, 향신료 초심자들을 위한 추천집
https://goo.gl/maps/V1aTjPhyAxzYop617
닝샤 야시장(寧夏夜市, Níngxià yèshì 닝샤예싀)
버스들의 시끄러운 깜빡이 소리와 오토바이의 매연 냄새를 맡으며, 우리는 골목길을 걸어 호텔 근처 닝샤 야시장으로 향했다.
야시장의 천국인 타이베이! 기름에 튀기고 볶는 중화요리 특성 상 집에서 하기 힘들어서 노점 문화가 발달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아예 집에 화구가 없다고도 들었고. 저녁즘 되면 날씨도 선선하고 입도 심심하겠다, 삼삼오오 밖으로 나와 한입하는 게 아닐까? 프로 야식러인 간호사로서 참을 수 없지!
첫 메뉴는 타이완 명물 땅콩아이스크림! 해맑은 웃음을 짓는 청년이 하는 집이었는데 한국인임을 배려해서 샹차이(고수)를 조금 곁들여주신건지 모르겠지만, 살짝 톡 쏘는 향이 감미롭고 넘 좋았다. 가격은 까먹었다. 60위엔(3천원)으로 기억하는데.
혹여나 샹차이(고수)가 무섭다면 "부야오 샹차이(不要香菜, Bùyào xiāngcài)"***를 시전하자.
여자친구는 원미향창(原味香腸,Yuánwèi xiāngcháng), 나는 저 오향향창(五香香腸,Wǔxiāng xiāngcháng)을 시켰는데 둘 다 식감이 정말 쫀득하고 짭조름하고 고기 육즙이 장난이 아니었다.
향신료를 곁들인, 우샹샹챵은 입안에서 엄청난 향신료 폭발이 터져나오면서 아찔해지는, 그러면서 묘하게 짭조름하고 중독적으로 맛있는 맛이었는데 여자친구는 향신료의 벽에 부딛혀 삼키지 못했다. 가격은 50위엔(2천원).
초보자들이여, 무적권 오리지널을 드시라. 하지만 나는 저 오향 소시지가 진짜 맛있었다.
한정 맥주를 쫓다 만난 인연
오향향창에 호되게 당한(?) 여자친구를 위해 거리에서 밀크티를 마시며 오던 생각,
타이완 맥주를 마셔보자!
찾아보니 타이완 명물 18일 맥주가 있다고 해서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맥주를 사보기로 했다.
근데 편의점엔 안팔더라. 으앙...
호텔 뒤 패밀리마트에서 나와 옆의 세븐일레븐에 갔는데 점장으로 보이는 숏컷 여성과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 알바생이 있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맥주 가판대를 헤매다 그냥 타이완 맥주 오리지널과 클래식을 한캔씩 구매했는데, 클래식은 진한 쓴맛이 강하고 낭낭했다.
차의 민족답게 냉장고 한쪽켠엔 수많은 타이완 브랜드의 차들이 진열대에 꽉 차 있었고 우리는 선뜻 고르지 못했다. 관종 ENFP인 내가 되도 않는 영어로 카운터에 물어보겠다니깐 여자친구가 부끄럽다더라.
...그래 내 영어실력이 저질이긴 하지ㅠ
우선 니하오, 워 스 한궈런으로 시작하고 더듬대는 영어로 타이완사람으로서 추천하는 브랜드가 있냐고 물어보자
"오! 한궈런! 안녕하세요!" 하며 격한 반응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거 아닌가. 점장까지 가세해서 깔깔거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타이완 사람들이 친일, 친한파라는 게 이렇게 실감날 줄이야.
1일차 끗!
이번 타이완 여행에 도움을 준 링크들
타이난 여행 : 여행콘텐츠 (naver.com) ***
대만 사용설명서 #4 - 여행용 중국어 간단회화 - 단어편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