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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섀도우 Feb 20. 2023

해풍을 받는 시골섬, 타이완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아


테이블마다 좌석이름이 적힌 토큰이 있었고 주방에 드리면 맛있는 오므라이스가 배달왔다.

아침은 든든하게

 디 오쿠라 호텔의 명물 오므라이스를 먹고 우리는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는 타이페이역에 도착했다. 

앞에는 증기기관차와 객실차 한 량이 주차되어 있었는데 가는 일정이 촉박했으므로 저녁 때 보기로 하며. 


타이페이역의 문제점이라면, 앉아서 쉴 의자가 없다.

 타이페이 역의 문제점이라면, 앉아서 쉴 의자가 없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그냥 바닥에 주저앉기를 택했다. 2박 3일 타이완 여행에서 아쉬웠던 부분 중 하나. 



이번역은 지룽, 종점입니다.

 우리는 루이팡(瑞芳區) 역에서 버스 환승을 해서 지우펀(九份)으로 가기로 했다. 

 객실은 한국의 지하철과 달리 여러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한 객실 안에 순방향/역방향, 마주보는 좌석 등이 혼재되어 있었다. 우리는 루이팡 급행을 놓쳤기에 다음 기차에 올랐고, 시점이기에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전날 편의점 직원의 추천해 준 음료를 쥐어들고 바깥의 세월이 잠든 풍경을 바라보며. 

 기차에서 꾸벅꾸벅 졸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구글맵으로 도착역을 수시로 확인하며 시간을 보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학생 둘이 우리보다 먼저 내리고, 어르신들만이 객실을 지키고 있는 걸 보고 이상함을 눈치챘어야 했을까?

낭랑한 목소리로 "이번역은 지룽, 종점역입니다" 를 들었을 때 우리는 네 귀를 의심했다.


께랑은 비오는 항구, 우항(雨港)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비가 많이 온다고 한다.

산 중턱에 KEELUNG이란 간판이 우리를 반기는 지룽(基隆), 타이완식 표현으론 께랑(Ke-lâng)으로 읽히는 이 도시는 탁 트인 항구도시였다. 역 바로앞에 ㄷ자로 된 만에 크루즈선과 군함이 정박해 있었다. 


 께랑(지룽)은 역사적으로 에스파냐, 홀란드(네덜란드) 상인들의 개항부터 일제 치하의 가혹한 식민지 수탈의 요충지로서 작용했다. 일본 제국은 청일전쟁으로 할양받은 타이완 섬을 일본 본토와 제일 가까운 지역인 께랑을 군함을 수용하기 위해 개조했다고.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난 지금에도 민-군항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께랑은 우항(雨港), 비오는 항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비가 많이 온다고 한다. 1년에 200일 넘게? 여행하는 사흘이 그 쨍쨍한 100여일 중 하나였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다행히 지우펀으로 향하는 시점 버스가 있었는데 바로 도착 예정이라 께랑을 오래 구경할 수 없어 아쉬웠다. 

우호호호 민.트.조.아. 정말인지 타이완 내내 저 민트빛이 너무 좋았다.


타이완의 버스기사조차 한국인을 알아본다.

 께랑(지룽)의 맑은 공기를 잠깐이나 만끽하고 버스에 오르며 기사님께 니하오 인사를 하자 "안녕하세요"가 나오는게 아닌가. 깜짝 놀라서 반사적으로 한국어가 튀어나온다. "어떻게 알았어요?" 여긴 타이완이지? 낮선 친숙함에 그만 깔깔 웃는다.

 먼저 차에 오른 여자친구도 자기를 한국인으로 알아봐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우리가 그렇게 한국인인 게 티가 팍팍 나는 지 모르겠다. 


버스 내부 TV 전광판에는 정류장을 실시간으로 띄워주고 있었다.

 버스 내부 TV 전광판에는 정류장을 실시간으로 띄워주고 있었다. 우리가 내려야 할 지우펀(九份)역 한자가 바로 적혀있어서 마음이 놓인다. 

 우리는 버스기사님이 타이완의 '놀라운 도로'를 돌파하는 모습에 감탄하기 시작했다. 1차선 편도로 도로가 바뀌는 건 기본이요, 산을 깎아낸 절벽길을 위태롭게 타고 내려가고 정차된 차와 전봇대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는 곡예운전을 보면서 타이완에서 국제면허 따위(...)로 운전할 생각은 꿈도 꾸지 않기로 했다. 


 새옹지마라는 말마따마, 께랑(지룽)에서 텅텅 빈 버스를 탄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원래 환승하려고 했던 루이팡에서 버스가 멈추자 수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채우기 시작했다. 아! 하마트면 서서 갈 뻔 했군.



해풍을 맞는 산과 바다의 마을, 지우펀

지우펀으로 가는 산 중턱마다 저런 사원?들이 있었는데 진짜 사원인 지 모르겠다.

 숨막힐 것 같은 시가지를 돌파한 버스는 꾸불꾸불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좌측 창밖을 통해 펼쳐진 타이완의 바닷가와 산의 풍경이 벌써부터 기분이 설레고 좋아진다. 


세븐일레븐이 보인다면 잘 오셨습니다, 여기가 바로 지우펀입니다!

 장장 1시간에 가까운 버스멀미를 겪고 지우펀의 돌로 된 정각에 올라 전경을 바라보며, 

우리는 이번 여행의 가장 먼 곳에 도착했다. 

따뜻한 햇살과 서늘한 바닷바람이 맞닿는, 해풍을 맞는 산과 바다의 마을, 지우펀(九份)


가파른 오르막길에 생긴, 좁고 허름한 골목 상가 같으면서도 세련된 가게가 공존하는 지우펀.

 지우펀은 청나라 시대 아홉 채의 집이 다였던 조그만한 마을이었고 한 사람이 도시로 내려와 필요 물건을 사서 9등분했기에(九份) 지우펀이라 불렀다고 한다. 일제 점령기에 이 한적한 마을에 금광이 주목되고, 비슷한 처지였던 진과스가 100% 일본인의 손에 쥐어짜였다면 지우펀은 조금이나마 본토인들에게 채굴권이 주어졌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금을 캐기 위해 몰려들었고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미로같은 도심을 만들었다. 1970년 즈음 금이 고갈되고 쇠락했던 지우펀은 영화 촬영 후 관광지로 탈바꿈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붉은빛 홍등이 가득한 지우펀을 찾아가는 이유 | 두피디아 여행기 (doopedia.co.kr) 


사람들은 깔끔해야 들어온다. 끈적이는 디저트를 먹고 불편한 손을 닦으라고 개수대가 놓여있는 센스!

 날씨가 더웠기에 입구에서 산 콜드브루를 홀짝이며 (우더플라이프 분점 구경도 하고) 골목을 쏘다니다 결국 망고빙수를 먹기로 했다.

 가격은 185위엔이던가?... 8천원도 안했다! 바깥은 16도였는데 세상에 정말 시원하고 달고 맛있었다. 

좁은 부지 문제 상 화장실은 없었지만 손님들이 손을 닦고 갈 수 있도록 세면대가 있어 너무 좋았다. 

그리고 그 화장실은...




화장실을 찾아 떠나는 여정 - 구글 지도를 죽입시다

구글아... 힘들게 언덕 올라갔더니 화장실은 커녕, 납골당만 잔뜩이잖아!

공용 화장실은 지우펀 상권 내 계단길 중턱에 있다. 헤매지 말자. 



"바로 그 랜드마크"

절대로 난간에 엉덩이 깔고 앉지 마시오. 안전불감증 같으니라고.

 지우펀의 랜드마크, 아메이 차루(阿妹茶樓, A-MEI Tea house)는 암록빛 지붕에 연등이 줄줄이 달린 예쁜 찻집이다. 우리는 그 랜드마크 뷰를 찾기 위해 거진 1시간동안 헤매다 발견했고, 맞은편의 찻집인 해열루경관차(海悅樓景觀茶坊, Skyline Tea house)의 베란다에 앉았다.

 오후 세 시 넘어 그늘진 데다 바다의 찬바람이 슝슝 올라오는 지 쌀쌀했고 화장실은 깨끗했다(?) 


우리는 우롱차를 시켰고, 아무리 남은 티백을 갖고가게 한다지만 티백 400위엔+ 인당 100위엔 해서 600위엔(2만 4천원)은 자리세 때문이라 비싸다고 느꼈다. 흑흑 이게 다 서비스 비용이야 자기 합리화하며 밤탱이 맞는거야...

그치만 우롱챠는 맛있었다

그치만 우롱챠는 맛있었다. 직원분이 내리는 법을 알려주셨는데, 고체연료로 주전자 물을 팔팔 끓여서 잎을 씻어내서(이를 세차라 했다) 따라 주셨다. 남은 우롱챠는 귀국해서 어머니한테 드렸고, 어머니는 30년 가까이 묵은 보이차 마지막 한 줌 담겨있던 그릇을 비우고 내 것을 두었다. - 그렇게 30년 묵은 보이챠는 맛있게 마셨다. 냠냠

https://goo.gl/maps/hUJyT4gAenqcAnox5


안녕 지우펀... 사람 적을 때 와서 다행이야... 사람 많으면 지옥펀이라더라...



루이팡의 약사

 지우펀에서 돌아오는 길, 루이팡으로 향하는 흔들리는 버스 입석 때문이었을까, 전부터 향신료에 취약했던 여자친구가 멀미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초췌하게 죽어가는 표정으로 입으로 심호흡을 하며(마스크에 향신료가 베였는지 코로 숨쉬면 토할 것 같다고...) 한 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루이팡 역에 내리자 역전 앞 시장에서 뿜어져나오는 엄청난 향신료 폭탄내! 여자친구가 엄청난 헛구역질과 울렁증을 호소해서 스펀으로의 일정은 취소,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약국을 들르기로 했다.


 네 평 정도 되어 보이는 공간에 약들이 빼곡 차 있었고, 뒤쪽으로 두 배는 커보이는 공간에 수많은 영양제와 건강상품들이 쌓여있는 약국이었다.

 아르바이트생에게 어줍잖은 영어로 물어보다가 짧은 스포츠머리의 안경낀 약사님에게 물어본다. traffic and spice origin nausea? 이랬던 것 같은데 유창한 영어로 대답해주셔서 이렇게 말이 통하는구나...했다. 약사님이 소개해 준 약을 먹고 한 숨 들이켜서 그런지 서서가는 전철에서도 죽어가면서도(...) 용케 비둘기마법진을 소환하지 않고 타이페이 역에서 내렸다.

전철을 타고 오면서 보는 바깥 풍경. 타이완 사람들은 야외운동을 많이 하고 좋아하는 것 같다(후술)
유치원에서 단체로 야유회를 온 건지 귀요미들이 선생님들의 지도하에 열차에 올랐다. 타이페이역의 야경이란.

 도심의 오토바이 매연 냄새와 시원하고 맑은 바람을 맞으며 - 그 황사대륙의 남쪽이라 공기가 맑았던 것 같다 - 숙소로 걸어오면서 괜찮아졌다. 숙소의 소파에 다리를 걸터누워 레이(Lays) 감자칩과 콜라를 들이키니 한결 좋아졌다. 약 때문에 맞...지?


타이완도 병원이 있다. 저 거울너머 종이로 된 진료기록지(차트)를 보라! 추억이 새록새록...

 타이완을 소개하는 책들을 보면 드러그스토어가 그렇게 발달했다고 했는데 잘은 모르겠다. 

마치 한국 도심에서 놉스와 올리브어린이와 홍관장세트, 코코나 홈마이너스같은 대형마트 영양제코너, 여느 약국에서 영양제 파는 수준이랑 비슷한 것 같다. 

 한국처럼 건강보험으로 인해 진료비가 저렴한 게 아닐테니 타이완 사람들이 약국을 자주 찾는 게 아닐까?

 


우더플라이프 - 결정장애들의 기념품 고르기

형이 왜 거기서 나와?... 타이완에 한국산 일본식 이자카야 몬뎈ㅋㅋㅋㅋ


 타이베이의 밤길이란. 낮과 달리 형형색색 조명들이 켜지고 인도와 차도가 뒤엉킨 구시가지를 십여분을 걸었을까. 

화산1914 창의문화원 구(華山1914文化創意產業園區) 내 입점한 우더플라이프에 도착했다. 폐업한 양조장 부지를 사들여 문화관광지로 사용했다는데, 수도 도심에 이런 문화공간을 만든다는 게 뭔가 부럽고 신기했다. 

 창의문화원 부지에는 이런 공예 가게들 뿐만 아니라 영화관, 심지어 카카오크프랜즈들도 입점해 있었다. 저녁 시간이라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았지만 영화관과 우리의 우더플라이프와 프랜즈네는 불이 켜져 있었다.

https://goo.gl/maps/iN5N5cLwC68DtLNv9

타이완의 오르골 전문점. Wooderful life 華山店 도착. 왼쪽 입구는 키즈존이다.
오르골 번호를 기계 하단에 입력하면 미리 들어볼 수 있다

 관람차가 좋겠다 색감은 이게 좋고 멜로디는 이게 좋겠어 하다보니 거진 이 오르골 앞에서 1시간 가까이 서 있던 것 같다. 숙고 끝에 우리의 여행 기념품으로 낙★점

https://youtu.be/9l5Fuww3Nlo

오르골 멜로디는 Over the waves


키키 레스토랑 - 한국인들은 다 이렇게 많이 안먹어요...

Kiki 레스토랑에선 한국인들을 위한 책자도 있었다


 계란두부튀김(230위엔)은 푸딩마냥 부드러웠고 (여자친구는 기름졌는지 조금 느끼했다고...) 매운소고기조림(390위엔)은 진짜 맵다 국물 잘못 떴다간 입안이 불타오르는 걸 느낄 수 있다.

 취두부는 220위엔, 명성에 비해선 그 향취 독하지 않던데? 쫄깃하고 맛있는데 씹을 때마다 약간의 구리구리한 향취(...)가 나는 맛. 나는 맛있었다.

 그리고 저 간장생선찜이 520위엔(2만원)이었다. 짭조름하고 부드럽고 밥이 땡기는 맛에 살이 무너지다 못해 잇몸으로도 먹을 수 있다. 근데 둥 둥 떠다니는 저 기름기를 보다시피 저것도 기름졌다. 


 요리 네 접시에 음료수 두 잔 시켜서 세후 1804위엔 (7만원) 넘게 쓴 우리가 레전드... 홀에선 수군수군 댔을거다. 말이 안 통하는 한국인 남녀가 와서 요리 네 접시에 밥 세공기 시켜서 해치운다고... 아침 이후로 지우펀까지 간식으로 때운 것도 있지만 진짜 많이 먹었다.

아니에요... 우리 한국인들 돼지 아니에요...

 얌전히 요리 세 접시만 시키자..ㅠ


으엑 매실 액기스를 마시는 느낌이야! 왜이리 독하니 둘 다(남김)

https://goo.gl/maps/QgoFdry3Lo6byb957



에필로그

스펀(十分)엔 가지 못했지만... 돌아오는 밤거리에 펼쳐진 연등을 보며

You're my chemical hype boy~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국부기념관이 있어 지나쳐오는데 수많은 연등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2월 5일부터 19일까지 타이페이 국부기념관 앞에서 연등축제 일정이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선 끝났지만... 일상의 바쁨과 게으름을 한탄한다.



호텔에서 바라보는 낮설고 몽환적인 야경을 바라보며


2일차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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