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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섀도우 Mar 09. 2023

빛과 어둠의 현대사를 품은, 타이완

권위주의의 상처를 넘어 민주의 시대로

중국인들의 폭죽사랑

 마지막 날 아침이 밝자 섭섭함이 밀려온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했던 하늘에 구름이 드리운다. 타이완의 일기에보에선 조만간 비가 온다고 했다. 2월의 첫째날이었다.

 타닥타닥! 폭발음에 내려다보니 호텔 반대편 1층 상가 앞, 자욱한 연기 사이로 폭죽이 빛났다. 


거리를 지나는 와중에 들리는 또 한 번의 폭죽소리에 고개를 돌려본다.

춘절 연휴가 끝난 지 1주일이었기에 2월 1일을 맞아 폭죽을 터트리는 것 같다. 

중국인들은 10세기부터 음력 새해를 맞아 액운을 쫒아내는 폭죽을 터트려 왔다.


타이완에서 펑리수와 누가크래커 안 사오면 혼날 것 같았다. 다행히 가족들과 친구들이 잘 먹었다.

누가 크래커 

 한국으로 돌아와 나누어 줄 기념품을 찾아 우리는 버스를 타고 누가크래커 집에 왔다. 30개들이 한 박스에 240위엔(약 만원)이었는데, 커피맛이랑 초코맛 하나씩 사서 반반 나눔했기에 1개씩 개별포장되어 있어 나중에 분배하기 편했다. 

 야채맛은....한국 과자 야X크래커 그 맛이어따... 뭔가 익숙한 맛이라 스킵.


https://goo.gl/maps/Y4f1P8wJNwEs8BW57


호텔 조식을 먹고 배부른 상태였는지 우육면이 다 안들어가더라...

우육면 시식기

 중정기념관까지 걸어서 15분 정도 걸렸기에, 제과점 반대쪽의 융캉공원 주변의 찜해두었던 우육면을 먹기로 했다. 

 나는 토마토 소스의 우육면을 시켰는데 맛있긴 한데 느끼하고 뭔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 아쉬운 맛이었다. 토마토 소스와 쇠고기 육수가 고기랑 면에 베어들지 않아서 그런걸까. 

하지만 고기는 진짜 푸짐하게 많이 들어가 있었다. 괜히 우욱면이 아닌가. 욤뇸뇸.

 참고로 저 반찬은 개별구매다. 가지무침(기름에 절인) 이었는데 다른 반찬들도 한 접시에 50위엔(2천원).


https://goo.gl/maps/nEYw9A9iSPmXVWfJ9




 가는 길에 잠깐 들른 대형 식료품점인데 농협 로컬푸드매장마냥 1층 상가에 수많은 반찬 식료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타이완 사람들의 집밥 반찬은 이런 것들일까? 비슷한 반찬도 보이면서도 다르기도 하고. 사람 사는 데는 다 거기서 거기다.



 장제스의 썩소가 반기는 중정기념당(國立中正紀念堂)

 떠날 때가 된다고 우리의 심경을 대변하는지, 맑았던 하늘에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식료품점을 지나 우리는 중정기념당 후문 쪽으로 들어온 것 같다. 남색 지붕이 얹은 담장들이 우리를 반기고.


숨이 턱 막히는 저 계단. 장제스가 89세에 세상을 뜨면서 그를 기리기 위해 계단이 89개가 되었다. 

계단을 오르면서 상념에 젖는다 - 건강하게 오래 사셔서 관람객들 무릎 다 나가겠다고... 나쁜 마음. 

그게 장제스 잘못이간, 연세 맞춰서 89개 계단 맞춘 행정가, 건축가들이 빌런인거지.


 사실 중정기념관 갔을 땐 왜 '장개석기념관'이 아닌가 했는데... 

장제스(장개석)의 본명이 장중정(蔣中正)이랜다. 충격...

 

정각에 맞춰 시작되는 근위병들의 교대식을 숨죽이고 보게된다.

정각 5분여 전부터 공무원들이 붉은 금줄을 치고 관광객들을 통제한다. 작은 구멍에서 반짝이는 투구와 예식용 소총을 든 근위병들이 한발자국씩 천천히 내딛는다. 동굴 같은 거대한 홀에 근위병들의 딱딱한 군화가 부딛히는 소리만이 울리고, 삼삼오오 모여든 관람객들은 휴대전화를 꺼내 그들을 촬영하기 시작한다. 좌우 단상에 석상처럼 굳어있던 병사들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착지한다. 분대장의 우렁한 기함이 끝나고 새로운 병사들이 단상에 올라 가고일 석상마냥 서로를 마주본다. 한 시간동안 돌처럼 굳어있던 석상들이 분대장을 따라 방으로 사라지자 금줄이 풀리고, 공무원들이 새로 세운 마네킹 병정의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숨막힐 듯한 예식과 지독한 절도에 젖은 근위병 교대식을 보면서 우스꽝스러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움을 느낀다. 

 근위병들이 부동자세로 지키고자 하는 것은 그의 못다 이룬 중화 통일의 꿈일까, 먼지로 돌아간 장제스의 생전 모습을 담은 껍데기일까.


타이완의 빛과 어둠

장제스에 대한 나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듯이, 하늘은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나처럼 권위주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장제스의 인자한 썩소를 박제한 기념관이란, 사실 불편함을 감추기 힘들다. 마치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존재가 천수를 누리며 장기 집권하다 세상을 떠나니 그를 기념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 거대한 피라미드형 기념관을 짓고 거대 조각상을 세워 국민들을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도자들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그들을 높은 장소에 놓아 아랫사람들이 우러러 보도록 설계된다. 


 허물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는지마는, 장제스만큼 아이러니한 정치인은 손에 꼽을 것 같다. 장제스는 수많은 정치인들을 하나로 압축해 놓은 인물 같다.


 수많은 군벌로 분열되었던 중국을 시황제마냥 무력으로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일본제국이라는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웠으나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배하고 타이완 섬으로 천도했다. 세련되고 현대적인 민주주의 중국을 표방했던 쑨원(孫文)의 후계자를 자처했지만 그는 총통이라는 이름으로 수십년 간 죽을 때까지 독재자로 군림했다. 게다가 공산당에 밀려 섬으로 천도하면서 타이완 원주민들의 저항을 학살한 범죄도 저질렀다. 한국의 아픈 역사와 비교한다면 제주도의 4.3 사건이나 광주 민주화운동의 희생과 맥락이 비슷하지 않을까.


 장제스의 실패는 민심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지도자는 민심을 잃으면 쓰러진다.

장제스의 군벌정치는 군인들의 무력전쟁이었다. 수많은 중국의 평민들은 군인들의 총검 아래 착취당하고 징병되었다. 군벌들의 고질적인 부패는 타이완 섬으로의 천도 후에도 지속되었고, 착취에 저항한 주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권위주의 권력은 무력으로 사람들을 복종시키지만 마음으로부터 우러러나오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 

 

패방의 명판이 장제스의 유지에서 자유광장(自由廣場)으로 바뀐 건 2007년이 되어서다.


 타이완의 총통직은 유지되고 있지만 타이완의 정치는 우리가 겪었던 것처럼 독재의 잔재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투표와 정당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고, 민주진보당 집권 시절 장제스 기념당을 국립대만민주기념관(國立臺灣民主紀念館)으로 개칭한 전적도 있다. 랜드마크가 되어버린 이상 폐쇄는 못하고 장제스 개인의 숭배 공간에서 과거사 청산의 공간으로의 바꾸거나, 장제스의 증손자이자 타이페이의 현 시장인 장완완(蔣萬安)의 제안으로 "대만발전기념관"도 건의되고 있더라.

 

 역사의 잘못 꿴 단추로 인한 어려운 숙제를 우리 뿐만 아니라 타이완 사람들도 겪고 있으니. 낮선 이국 땅에서 아픈 동질감을 느낀다. 


시간과 여력이 없어 2.28 추모관을 가지 못한 게 아쉽다.



공항철도를 타고

호텔에서 짐을 빼면서 호텔에서 파는 펑리수를 사서 캐리어에 테트리스를 해서 타이페이 역에 도착했다. 다시 우리를 반기는 오래된 객차를 보며. 안녕, 타이페이...


우리를 반기는 아시아나 항공기. 가기 싫어지는 순간이다.


언젠가 다시 찾아갔을 때 더 밝아진 모습이길 바라며.



Adieu, Tai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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