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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섀도우 Mar 18. 2024

에메랄드빛 물결이 넘실대는

니스, 니챠 이야기


공항까지의 바우처와 깐깐한 오를리 공항

새벽 7시. 해가 뜨지 않는 파리의 겨울 7시는 아침이 아니다.

우리는 눈곱을 떼고 픽업 바우처 분을 기다렸다.



프랑스인들의 이유없는 여유

스치듯 지나가는 그래피티도 도배된 벽들.

픽업 바우처분은 뿔테 안경을 쓴 파리지앵 한국인이었다. 파리가 좋아 파리에 10년 째 살고 있지만 프랑스인들은 절박함이 없다고 비판했다. 하다못해 우편이나 공무를 신청하면 며칠이 걸리기 일쑤라고. 

풍요로운 나라의 느긋함은 무한한 경쟁의 수렁에 빠져 서로을 옭아매는 한국의 정서와 정 반대의 모습이다. 


프랑스인들의 느긋함은 식사 문화에서 드러난다. 프랑스인들은 식사에 진심이다. 물론 작금의 프랑스 MZ들은 샌드위치로 간단히 때운다곤 하지만, 일반적으로 프랑스인들은 점심시간에 2시간 넘게 투자한다. 앙트레 + 쁠라 코스로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음식을 들며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사업을 논의한다. 이들에게 식사 시간은 사교의 장이다. 일에 치여 15분만에 밥을 쑤셔넣고 올라오는 나의 모습을 생각하면 프랑스의 느긋한 식문화가 부럽다.


오를리 공항. 국내선 공항이지마는 역시 중무장한 군인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파리의 스타벅스는 어떤 곳일까. 사실 프랜차이즈는 가격만 다르지 분위기는 비슷하다.

슬슬 주문을 프랑스어로 할 법도 하지만 아직도 우물쭈물 하며 팬케이크와 쿠키를 시켜본다. 


프랑스의 원자력 발전

프랑스는 공격적인 원자력 발전 국가 중 하나다. 옆나라 도이칠란드는 천연가스 수입과 재생에너지에 집중했다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의도치 않게 고통받고 있는데 프랑스는 도이칠란드에 인접한 스트라스부르 지방에 원자력 발전소를 세워 왔다. (원자력 사고나면 덤탱이는 도이칠란드가 쓰게 생겼다)

 '친환경 에너지' 재생 에너지가 나쁘다, 원자력 에너지를 두둔하는 게 아니라 러시아의 꼴통짓에 외교적으로 압박을 당하고 국가의 발전시설 기반이 흔들리는 작금의 상황이 안타까울 다름이다. 



지중해의 에메랄드빛 바다

한 시간여 정도 비행기가 날아가다 바다를 맞이하곤 유턴하듯 돌아섰는데 넘실대는 지중해 앞바다가 나를 반긴다. 



공항의 트램은 Grand Arenas까지 무료입니다

 코트 다쥐르 공항(Nice Côte d'Azur)에 내리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트램. 트램을 타면 시내까지 갈 수 있다는데 왠걸, 트램 표를 안판다? 

한참동안 자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봤는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공항철도마냥 Grand Arenas까지는 무료 탑승이 된댄다. 이런...


 우리는 다음 트램을 타고 Grand Arenas에서 내려 거기서 자판기를 발견했다. 교통카드(La Carte) 한 장을 사서 2번 찍을 수 있다고 했다. 교통카드 한 장에 2회 충전해서 두 번 태그하면 끝! 


 교통카드는 다음날 여행할   요긴하게 썼다..... 모나코에서 빼면 말이다.



니챠, 니스 이야기

니스(Nice)는 과거 니챠(Nizza)라 불렸던 지방이었다. 니챠는 18세기까지는 이탈리아의 조각난 나라들 중 하나였고 이탈리아 북부의 샤르데나-피에몬테 왕국의 조상들의 땅이었다고. 그러다 이탈리아 통일전쟁 당시 샤르데냐 왕국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가 이탈리아 반도에 개입하려 하자 입 닫는 조건으로 눈물을 머금고 조상 땅을 할양했다고. 


 그러나 이탈리아 통일의 주역이었던 주세페 가리발디가(그의 고향이 이곳이다) 니챠의 재할양을 요구했다가 좌절되고, 이에 프랑스가 니스의 이탈리아 사람들을 쫒아내고 프랑스화 했다. 2차세계대전 때는 잠시 이탈리아의 중립지대였지만, 전후 협정을 통해 프랑스로 완전히 넘어오며 현재의 국경선이 그어진다. 이러한 역사 덕분에 니스는 프랑스에서도 이탈리아의 정서가 함양된 조금은 독특한 색채를 풍기는 도시가 되었다. 



한국사람들은 모두 여기서 피자를 테이크-아웃 해간다

한국사람들이 죄다 이곳 노상 피자집에서 한 판 시켜서 니스 해안가에서 먹는 게 유행이라더라. 통통한 사장님은 우리더러 한국인이냐고 바로 맞추더니 유창한 영어로 어떤 피자를 해줄 지 물었다. 세상에, 중국인들은 씨가 말랐고 일본인들은 적댄다. 졸지에 세계여행 온 한국인들의 성지가 되어버린...


 이 아담한 가게는 추측건데 원래 마차가 드나드는 건물의 빈 공간이었던 것 같다. 현대화가 되며 말들은 사라졌고 마차를 위한 공간은 작은 가게를 위한 곳이 된 것 같다. 



잠시 캐리어만 맡을 심상으로 호텔에 체크인 했는데 비수기라 손님이 적었던지 바로 방을 내주셨다. 오오

니스의 웨스트엔드 호텔. 바로 앞 바다 뷰가 보이는 차도가 있었지만 한적하고 조용했다. 넓직한 스위트룸 내부는 철제 햇빛 가리개(블라인드)가 드리워져 있었고 두터운 커튼이 언제든 빛을 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피자를 먹으며 바다멍을 때리고, 비둘기의 공습에 아내는 비둘기를 무서워하기에 내 팔을 잡다 이내 줄행랑친다. 아내는 전생에 피죤투에게 쪼이고 다니던 캐터피가 아니었을까.



니스의 시내 탐방

프랑스에서 느낀 거지만, 한국의 도시는 트램을 설치하면 안 된다.

철저한 차량 위주로 설계된 과밀된 도시에서 트램은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는 심부동맥의 혈전같은 존재가 된다. 정 굳이 한국의 대도시에 트램을 설치하고 싶다면 고층 아파트를 모두 허물어버리고 유럽식으로 6-7층 아파트 건물로 인구를 수용하면 된다. 



니스의 로컬 푸드 매장같은 식료품점. 낮익은 채소도 있었지만 낮선 채소들이 나를 반긴다. 사실 물을 사러 들어왔는데 싱싱한 야채와 농산품, 쥬스 가공품이 잔뜩이었다.



프랑스의 약국과 콘돔

식료품점 바로 옆에 큰 약국이 있어 호기심에 들어가 본다.

  한국의 약국과 달리 프랑스에는 휘황찬란한 LED 간판이 빛나는 약국들이 전국 곳곳에 편의점마냥 들어서 있다. 각자 건강기능식품과 영양제, 샴푸 등 사람 몸에 들어가는 것이든 바르는 것이든 온갖 것을 취급한다. 


 가게의 우측 벽에 하얀색 상자 같은 자판기가 붙어있는데 바로 콘돔 자판기. 2유로 동전을 넣으면 콘돔이 나온다. 

 한국은 성 문화에 대해 보수적이고 특히 미성년 학생들에겐 엄격한 성의 잣대를 들이댄다. 한국의 혈기왕성한 청소년들은 무한한 학력 경쟁과 학업의 굴레만 짊어지고 운동은 무식하다는 편견이 주입된다. 청소년들 역시 이성에 대한 사랑과 성욕을 느낄 것이고, 잘못된 성교육과 억압은 왜곡된 성인지를 제공한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할꺼면 해라, 콘돔은 끼고." 청소년들의 부끄러움과 접근성을 배려하여 학교나 약국 등에 무인 자판기가 비치한 것 같다자판기의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나의 생각에 다른 학무보들이라면 눈이 시뻘개져서 달려들 지도 모르겠다만,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한다. 인터넷과 교통수단이 발달한 이상, 더 이상 19세기 같은 쇄국의 시대는 없다. 



한국에선 그리 비싼 에비앙이 여기선 1유로도 안한다.



돌아와보니 웰컴 샹파뉴가 있었다

니스 시내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왠걸, 테이블 위에 얼음에 담긴 샹파뉴가 담겨 있다. 

숙소를 업그레이드 했긴 했지마는 이국의 바다를 바라보며 샹파뉴를 즐길 수 있다니. 해질녘 노을을 바라보며 우리는 홀짝홀짝 와인을 들이켰다.

간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 빵은 살짝 녹아서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녹아내렸다. 큰입으로 꿀꺽.



니스의 겨울 밤공기는 차갑다



근사한 저녁을 위해 열심히 구글링하던 우리는 La Vague, 물결이라는 이름의 식당에 들어섰다. 니스 앞바다의 자갈 해안에 부딛치며 하얗게 끓는 바다 물결을 상징하듯, 식당은 온통 하얀 빛이었다. 주광색 가로등이 따뜻함을 연출했다.


누가봐도 우리가 신혼부부로 보이는지 넉살 좋은 털보 사장님이 짠 하고 샹파뉴를 건넨다. 바게뜨에 매콤한 스프레드를 발라 입안에 넣는다. 


밤바다 바람을 맞으며 먹기엔 조금 쌀쌀한 날씨였기에 따뜻한 음식이 끌렸고 아내는 간판에 적혀있는 시즌메뉴 홍합탕(Moules marinières), 나는 생선 스튜(Soupe de poisson)를 주문했다. 

생선 스튜는 추어탕 같은 식감이었는데 비주얼은 향신료를 곁들여서인지 술술 들어갔다. 사실 배고픈 여행자에겐 무엇이든 맛있었을 테지만, 쌀쌀한 날씨에 먹는 프랑스 어죽(...)만큼 맛있는 게 없지.

해산물 뻴라(Paella aux fruit de mer)는 강황 향이 느껴지고 오징어가 쫀득하고 정말 맛있었다. 


사장님의 서비스 디저트의 새콤달콤한 맛을 즐기고 우리는 기분좋게 식사를 마쳤다. 물결이라는 이름답게 맛이 입안에 물결치는 느낌. 쎄 델리시유!

니스에 다시 오면 꼭 들러야지.

https://maps.app.goo.gl/Dd8zxfH7jM78nvgj9

p.s. 뒤늦게야 일지를 쓰는 두 달 사이 평점이 4.7에서 4.9로 치솟아 있다. 사장님 대단해!




다음 이야기

여긴 어디?... 난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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