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1. PEACE 06화

Give Give Give

7. Los Acros

by 황사공



부스럭거리는 사람들의 소리에 오늘도 잠에서 깬다. 다들 어쩜 이렇게 일찍들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물론 누워있는 나도 잠을 자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새벽녘부터 일어나 어둠 속을 걷고 싶지 않다.
빛과 함께 걷고 싶은 마음. 단지 그 이유로 나는 늘 일곱 시가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지런한 나의 친구들은 이미 출발하고 없다.

아이슬란드에서 온 덩치 큰 굴리가 아침부터 발목 통증을 호소하고 있길래 그에게 어제 산 스프레이 파스를 권했다. 덩치와 안 어울리게 아주 유쾌하고 활달한 굴리는 너무 고맙다며 우렁찬 소리로 인사를 한다. 오늘이 마지막 걷기라 느지막이 움직이는 셀린느에게도 파스를 뿌려주고, 준비한 샌드위치를 챙겨 길을 나섰다.

알베르게 앞에는 루이스와 몇몇 순례자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부에노스 디아스 ~ "

습관이 되어버린 아침인사를 하고, 나는 내 갈길을 가려하는데 루이스가 친구들과의 대화를 급히 마무리하고는 나를 따라나선다. 나를 기다린 건 아니었겠지만 뭔가 나와 같이 걷고 싶어 하는 눈치이다.

루이스가 저 마을 끝에 있는 바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자고 말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흔쾌히 그의 요청에 응한다. 잘 잤냐는 둥, 날씨는 어떻다는 둥, 다리는 괜찮냐는 둥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주유소에 있는 편의점 안 카페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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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안 카페에는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한 여자 순례자가 혼자 앉아 있었다. 브라질에서 온 산드라였다. 그녀는 골반쪽에 통증이 너무 심해 오늘 이 곳에서 하루를 더 머무를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알베르게는 오후가 돼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포르투갈인인 루이스와 산드라는 쉽게 대화를 할 수 있었고,
그들의 대화 내용은 루이스의 통역으로 나에게도 전해졌다. 그제야 알게 되었지만 루이스는 포르투갈어,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그리고 약간의 이탈리아어까지 5개 국어를 할 수 있는 능력자였다.

둘, 혹은 셋이 대화를 하고 있는데 굴 리와 안토넬로, 몰리와 알렉산더가 들어왔다. 나를 본 굴리가 다짜고짜 "Oh my angel!"라고 외치며 다가와 머리통에 뽀뽀를 퍼붓는다. 아침에 내가 뿌려 준 파스 덕분에 다리가 걷기가 훨씬 수월하다며, 내가 그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얘기한다. 이런 적극적이고 솔직한 감정표현이 나는 아직도 많이 어색하고 낯설기만 하다.

넷이 함께 들어왔지만 굴리와 뉴질랜드에서 온 18살 몰리와 안토넬로는 필요한 것을 사 들고 먼저 길을 나섰고, 이탈리아에서 온 24살 안토넬로는 이탈리아노 답게 아침 커피를 선택했다.
루이스와 아는 사이인지 옆에 와서 이야기를 한다. 이탈리아어로 말이다. 이젠 둘, 혹은 넷이 대화를 하고 있는 묘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영어화 포르투갈어, 그리고 이탈리아어를 구사하는 네 명의 대화는 신기하게도 끊임이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중간에서는 5개 국어를 하는 루이스가 있었다. 신기하다. 그는 분위기를 조화롭게 만들고 사람을 이끄는 어떤 힘을 가진 듯하다.

걷지 않겠다는 산드라를 다음 마을까지만 함께 가자고 루이스가 설득했다. 이미 2년 전에 카미노를 한번 끝마친 루이스는 다음 마을이 몹시 아름답고 조용하고 유명한 곳이라 말했다. 그리고 산드라는 다음 마을인 7km까지만 걸어 보겠노라 하고 우리와 함께 길을 나섰다.

에스텔라에서 조금만 지나가면 와인과 물이 나오는 분수가 있는 이라체에 닿게 된다. 모든 순례자가 와인이 나오는 분수를 고대하고 아침에 길을 나섰다. 우리도 아침부터 와인을 흠뻑 마실 생각에 행복해하며 길을 걸었고, 금세 그곳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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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와인이 모두 말라 있었다. 수도꼭지 끝에 와인이 한 방울 매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침 일찍 너무 많은 순례자들이 이 곳을 지나친 듯했다.

아쉽다. 나도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와인을 꼭 맛보고 싶었는데... 그곳에서 다시 만난 굴리, 몰리, 알렉산더도 모두 아쉬워하고 있었고, 우리들은 사진만 남긴 채 그곳을 떠나야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보다 일찍 출발한 순례자들과,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순례자들은 모두 그 와인을 마셨다고 한다. 하필 딱 다 떨어졌을 그 시간에 우리가 그곳에 도착한 것이었다.
말짱한 정신으로 걸으라는 하늘의 뜻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믿는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 신기한 와인이 나오는 수돗가는 이 마을에 있는 와인회사에서 지나가는 순례자들과 마을 주민에게 기부한 뜻깊은 장소였다.

기부, 참으로 아름다운 단어다. 상징적인 기부가 아닌, 이렇게 오래오래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는 기부도 참 아름다운 것 같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기부, 쉬어갈 수 있는 벤치를 만들어 주는 기부도 유럽에서는 흔한데 아직 우리나라에선 보기 어려운 것 같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런 방식의 기부를 점차 하게 되리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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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와 루이스, 그리고 나는 아주 천천히 걸었다. 골반이 아픈 산드라와 발목이 아픈 나,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루이스는 전혀 빨리 걷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루이스의 통역으로 셋이서 함께 대화를 하다가 나는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걸어가면서 영어로 대화까지 하려니 너무 힘들어 혼자 조용히 걷고 싶었고, 그걸 눈치챘는지 루이스는 말을 걸지 않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포르투갈어, 참으로 듣기가 좋은 언어라고 생각했다. 산드라의 목소리는 어떤 일정한 리듬을 타며 부드럽게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있었고, 그 억양과 리듬이 마치 노래와 같이 부드럽게 흐르는 듯했다. 대화의 내용을 전혀 알 수 없었기에, 나는 그저 노래라 생각하고 나의 길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걷다가 양들이 모여있는 들판을 만났다. 양치기 개 한 마리가 수십 마리의 양들을 몰고 있었다. 정말 신기한 광경이었다. 저 개는 어떻게 양치는 법을 배운 걸까? 둥글게 양들을 몰아 한 곳으로 가게 만드는 양치기 개의 기술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다음 마을인 AZQUETA 의 벤치에 앉아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산드라는 그 다음 마을까지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함께라는 것이 그녀에게 큰 힘이 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때, 마을 저쪽에서 세명의 순례자가 손에 막대기를 쥔 채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루이스에서 무어라 말을 했다. 스페인어라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어디론가 가라고 말하는 듯했고, 갑자기 신이난 루이스가 우리를 어떤 곳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스페인 할아버지 파블로티의 집이었다.


파블 로티는 젊었을 시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순례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 수십 년간 그곳에서 지나가는 순례자들에게 지팡이와 조롱박을 나눠주고 있었다.


파블로티 할아버지의 앞마당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그가 자랑하는 코끼리 모양의 나무, 그리고 쌓여있는 조롱박과 지팡이들. 시골 할아버지 집에 온 것 같은 푸근함과 인정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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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에게 무한정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내리사랑, 그런 것과 같은 종류의 사랑일까? 한번 지나가면 다시 만나기도 힘든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나눠주는 그는 어떤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한 걸까?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있고 너무 좋은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아직은 살만한 세상인 것 같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주는 것, 너무 각박한 시대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가져야 할 미덕이 아닌가 싶다.




파블로티 할아버지에게 받은 지팡이를 하나씩 손에 들고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산드라는 루이스와 함께 이야기를 하며 힘을 내서 다음 마을을 향해 걷고 있었고, 나는 또 조용히 그 뒤를 따라 걸었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것, 그리고 스페인어를 할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이 꽤나 든든하게 느껴졌다. 혼자 걸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행운, 내 손에 쥐어져 있는 이 막대기가 이 행운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해 줄 것이다. 루이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볼 때마다 반가워해 주는 것도, 만날 때마다 챙겨주는 것도, 그의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선심이 마음으로 느껴진다. 고마운 사람!

그다음 마을의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커피와 간단한 점심을 먹는다. 루이스는 나에게 나는 자신의 연락처를 알고 있는데 나는 내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며,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한다. 안 그래도 알려 줄 생각이었노라고, 다시 만나게 되면 주려고 준비하고 있었노라 말하고 여행을 위해 준비한 내 여행자 명함을 건네줬다. 산드라에게도 줬다. 굿 아이디어라며 내 명함을 마음에 들어한다.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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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다 남은 쿠키와 초코머핀, 그리고 샌드위치와 바나나.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조금씩 나눠 먹었다. 넉넉하진 않지만 그래도 나눠 먹을 수 있음이 감사하다.


이번 마을에서 묵기로 했었던 산드라는 결국 우리와 함께 로스 아크로스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그녀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우리는 다시 멀고 고독한 길을 나섰다. 길은 단조롭고 편편했고 또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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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 아크로스를 앞둔 마지막 코스가 가장 힘들었다. 햇볕이 가장 뜨거운 오후 3시에 우리는 그 길을 걷고 있었고, 그늘 하나 없는 뜨거운 길 위에서 우리는 점점 에너지를 잃어가고 있었다.


유일한 그늘인 쌓여있는 짚더미 아래에서 잠깐 쉬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늘 속에 있으면 금방 시원해지는 스페인의 뜨거운 여름이 나는 그래도 꽤나 마음에 든다. 짚더미에 기대 누워 우리는 아까 먹다 남은 샌드위치를 먹고, 통조림으로 된 버섯을 먹고, 오렌지를 먹었다. 그리고 혼자 터덜터덜 길을 걷던 체코에서 온 20살 마이클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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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통을 벗은 채 가방을 메고 걷는 그는 알베르게에서 자지 않고 그냥 아무 곳에서나 잔다고 했다. 학생이라 돈이 없기도 하거니와, 자연 속에서 자는 것이 더 좋다는 그의 어눌한 영어가 어쩐지 귀여웠다.


남자들은 정말 좋을 것 같다. 늘 웃통을 벗고 걷는 안토넬로, 그리고 마이클. 그리고 아무데서나 그냥 자도 되는.. 뭐랄까? 그건 용기는 아니고.. 아무튼 어쩐지 남자들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일들이 조금 부러웠다. 물론 여자라고 못하란 법은 없지만...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행동들이다. 암튼 카미노를 걷기엔 남자가 여자보다 이점이 많은 것은 확실히다.


그늘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우리는 다시 걸어야 했다. 가는 길을 따라 펼쳐져 있는 포도밭에서 포도를 따먹어 가면서 우리는 길을 걸었다. 처음 먹었던 포도보다 훨씬 달고 맛있다. 포도가 익어가고 있나 보다. 로스 아크로스까지 가는 길은 정말 너무도 멀고 멀었다. 너무 덥고 너무 지쳤고, 길은 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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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곳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레온에 가기 전에 나오는 카스티야의 평원은 이보다 더 삭막하고 뜨겁다고 했다. 상상할 수도 없다. 그리고 이 뜨거운 햇볕 아래서 내 머릿속은 하얗게 하얗게 비워져 갔다.



나타나지 않을 것만 같던 로스 아크로스에 도착했다. 루이스가 우리가 가야 할 숙소로 우리를 안내해줬다. 교회 옆에 있는 시립 알베르게, 이미 모든 친구들이 그곳에 있었다. 늦게 도착한 우리들 몫까지의 거대한 스파게티를 케샤와 몰리가 만들고 있었고, 우리는 운 좋게 마지막 남은 3개의 침대를 배정받을 수 있었다. 두개 남은 아래층을 나와 산드라가 쓰고, 내 침대 위를 루이스가 쓰기로 했다. 마이클은 숙소 밖에 있는 캠핑장에서 묵기로 했다. 침대가 7유로, 캠핑장은 3유로였다.

씻고, 빨래를 하고, 숙소 옆에 있는 잔디밭에 앉아 잠깐 휴식을 취한다. 천국이 따로 없다.

빨래를 하다 스페니쉬 호세를 만났다. 그는 의사였고 그의 아내 또한 의사라고 했다. 아내를 두고 혼 호세에게 괜찮냐고 물었더니, 그의 아내는 지금 비영리단체에서 주관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나 있다고 했다. 아내의 부재 기간 동안 그는 혼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결정했고, 그 다음번에는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하러 갈 계획이라고 했다.

멋진 부부고, 멋진 인생이라 생각했다. 단지 그런 그들의 삶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그들이 서로를, 삶을 그리고 이 지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사랑으로 반짝이고 빛나는 듯했다. 멀리 있어도 느껴지는 그녀를 향한 사랑, 이런 커다란 사랑이 실제로 존재하기도 한다는 것을 이 길 위에서 나는 처음으로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다.

저녁이 준비되는 동안 나는 마이클과 함께 숙소 맞은편에 있는 새로 오픈한 순례자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감상하고, 켄따루, 후미야, 루이스, 마이클과 함께 슈퍼마켓에 들러 저녁에 마실 와인을 샀다. 돌아오는 길에 마을에 있는 교회를 구경하고, 잔디밭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그냥 그렇게 시간 속에 녹아 있었다.



첫날부터 만났던 히데오상을 다시 만났다. 그는 이미 다른 순례자들과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그는 발뒤꿈치가 모두 벗겨져 내일은 걷지 못하겠노라고 얘기를 했다. 우리는 꼭 다시 봤으면 좋겠다는 기약을 하고, 함께 사진을 찍고 작별인사를 했다. 이것이 카미노였다.

언제 작별이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지금에, 오늘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네 인생도 매한가지.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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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저녁이 완성됐다. 체코에서 온 마이클은 이런 웅성거림이 익숙지 않은지 주변을 서성거리고만 있다. 함께 먹어도 된다고, 모두가 너와 같은 사람들이니 부담 가질 필요 없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부담스러운지 자리에 앉지 못하고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다. 아직 어린 탓이리라.

억지로 마이클을 내 옆에 앉히고 스파게티를 떠서 줬다. 고맙다고 얘기하는 그가 우리의 마음을 받아들인 듯하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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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왼쪽에 앉아있던 독일에서 온 20살짜리 영어교육학을 전공하는 여자아이가 나에게 묻는다.

"Why are you here? " (여기에 왜 왔니?)

여기에 왜 왔냐는, 수도 없이 들었던 질문.

어찌어찌하다가 이 길을 알게 됐고 이 길에서 인생을 바꾼 사람을 알게 됐고 그를 따라 나도 인생을 바꾸러 왔노라,라고 늘 얘기를 했었는데, 어쩐지 그렇게 말하기가 귀찮았다. 그래서 그저 혼자이고 싶어 왔노라고 대답했었다.

혼자이고 싶어서 왔니라는 내 대답에, 그녀는 다시 묻는다.

"So, did you do that? " (그래서, 그렇게 하고 있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정녕 혼자였던가?

아니. 그렇지 않았다. 나는 늘 혼자이고 싶다 스스로에게 되뇌었지만 정작 혼자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끔 혼자가 되면 늘 누군가를 찾았고, 누군가를 만나게 되길 빌었다. 내 마음은 혼자가 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는데, 나는 계속 혼자이길 바란다고 스스로를 속여 믿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고,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거대한 폭풍 하나가 일기 시작했다.

나는 결심했다. 지금 새롭게 알게 된 이 사람들이 너무 좋지만, 늘 챙겨주고 반겨줘서 고맙긴 하지만, 조만간 이들을 떠나겠노라고, 그리고 다시 혼자 이 길을 걷겠노라고.



저녁을 다 먹고 나서 무리들은 한바탕 술내 기를 시작했다. 그런 게임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옆 테이블에 앉아 호세, 마이클과 함께 와인을 마셨다.


마이클이 진심으로 나에게 저녁을 함께 먹자고 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영어를 잘 하지도 못했기에 한 단어 한 단어 천천히 끊어서 얘기를 해 준다. 그렇게 말해주니 내가 더 고마웠다.


그렇다. 진심은 언제나 통한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또 받기만 하면서 지금껏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바라지 않고 준다는 것, 이라체의 와인 분수가 그랬고, 파블로티 할아버지가 그랬고, 이 길 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랬다. 달라고 요구하지 못했지만 주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을 그 마음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 아무리 사소한 감사여도 입 밖으로 꺼내어진 감사는 누군가의 마음에 감동이 된다.


Give와 Share, 나눔과 공유,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

호의가 주어졌을 때 고맙게 받아들이고 그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


쉽고도 어려운 주고받기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늘 우리는 주고 또 받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순수하고 온전한 마음을 주고 또 그것을 왜곡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리고 그렇게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지만 이것이 바로 이 길이고 또 우리의 삶이었다.


Give and Take, 순수한 마음으로 아낌없이 베풀 것, 그리고 내가 받은 모든 것에 충분히 감사할 것.

꼭 그런 사람이 되리라 마음을 먹어본다. 오늘도 참 아름다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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