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Estella
오늘도 여느 때 처럼 느지막이 숙소를 나섰다. 느지막히라고 해 봐야 8시지만, 다른 순례자들은 보통 7시 전에 다 떠나가기 때문에 8시는 늦은 편이다.
부실하지 그지없어 보이는 2층짜리 철제 침대, 어제 내 위에서 자던 외국인 할아버지가 꽤나 뒤척이는 바람에 오늘도 잠을 설쳤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들도 꽤나 익숙해졌는지 아침이 피곤하지는 않다. 자주 깨긴 하지만 잠을 못 자지는 않고, 그런 모든 상황에 적응한 내 몸은 스스로 하루치의 체력을 준비해두는 것 같다.
참 아름다운 마을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는지 이렇게 집집마다 꽃을 내놓고 키우고 있다. 키우는 사람도 즐겁고 보는 사람도 즐거운 일석이조의 행복. 마을 끄트머리에 있는 바에 들러 빵과 오렌지주스를 마셨다. 어제 더치페이로 계산하게 했던 것이 미안했는지 락 오빠가 계산해주었다.
락 오빠와 어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롭게 아침을 즐겼다.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구구절절 명언이다. 락 오빠는 오늘도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그는 돌아갈 비행기 일정이 타이트해 꽤나 빨리 걸어야 했다. 아침을 다 먹고, 우리는 기약 없는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나를 비롯한 친구들로 인해 이미 일정을 많이 지체한 그는 지금까지 보다 훨씬 빨리 걸을 것이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참 고마운 사람이었고, 더 알고 싶은 사람이다. 또다시 만나게 되기를 희망하며, 그리고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며 작별했다. 부엔 카미노!
오래간만에 혼자가 된 느낌이다. 오늘은 발목이 꽤나 아프다. 10kg에 육박하는 배낭과 내 몸무게까지 지탱해야 하니 발목에 무리가 안 갔다고 하면 이상하리. 나는 시간도 많았고 서두를 필요도 없었기에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걷는다. 초반의 짧지만 꽤나 가파른 경사진 오른 막길에서는 평소의 반도 안 되는 속도로 걸었다. 나와 함께 후발대를 이루고 있는 유쾌한 순례자들의 웃음소리가 내 마음도 즐겁게 만들어 준다.
한참을 혼자 걷다가 스페인에서 온 아빠와 아들을 만났다. 아들은 12살 이었다. 낯선 동양인의 외모를 신기해하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했는데, 한국을 모른다... 아... 슬프다.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서로 인사를 하고, 우리가 지나고 있던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에 대해 얘기를 조금 하다가 헤어졌다. 멀어져가는 부자의 뒷모습이 왠지 훈훈했다. 나도 다음에 내 아이들을 데리고, 또 내 부모님을 모시고 꼭 오리라.
처음으로 본 포도밭만큼, 처음으로 본 올리브 나무도 신기했다. 정말 나는 올리브나무에 대해서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던 지라, 나무의 색깔과 그 열매가 너무도 낯설고 신기했다. 뾰족뾰족한 잎과 땅 달 막한 그 길이, 그리고 흰색을 섞은 듯한 초록의 낯섦이란! 그저 새롭기만 했다. 열매를 하나 따서 먹어봤다. 떫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올리브는 다 익어 까만색이 되어도 독성이 있기 때문에 날 것으로 먹을 수 없다고 한다. 물에 일주일씩 담가 두는 것을 몇 번이고 반복을 해야 먹을 수 있는 상태에 올리브가 된다고 한다. 올리브를 별로 안 좋아했었는데 이 곳에 온 뒤로는 올리브가 좋아졌다. 너무 맛있다.
포도밭을 지나고, 올리브 밭을 지나고, 자그만 마을 하나가 나타났다. 언덕 위에 있는 마을이었다. 어쩐지 출출해 마을에 있는 작은 상점에서 민트 초콜릿을 샀다. 맛있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아는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너무 늦게 출발한 건지, 대부분의 순례자는 이미 이 길을 지나고 없는 듯하다.
혼자 걷기 위해 이 길에 왔다. 혼자임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혼자 걷다 보니 왠지 모를 외로움이 느껴진다. 발도 여느 때보다 더 아픈 듯하고, 배낭도 내 어깨를 짓누르는 듯하다. 외롭고 또 괴롭다.
하지만 나는 걸어야 했다. 터덜터덜 걷다 보니, 아래에 마른 포도를 물고 가는 개미가 있다.
자기보다 훨씬 더 큰 포도를 물고 낑낑대는 모습이 어쩐지 애처롭다. 그래도 먹고살려고 그 노력을 하고 있는 거니까. 들어다가 집 앞에 놓아주고 싶지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 같아 가던 길을 그냥 걸었다.
조금 길을 더 가다 보니 딱정벌레 두 마리가 겹쳐져서 길을 가고 있다. 짝짓기를 하는 건지, 한 녀석이 다쳐서 업어주는 건지(물론 짝짓기일 확률이 높긴 하지만.)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걷는 이 길 위에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고, 그 길을 걷고 있다. 부디 그 조그마한 녀석들이 삶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 무사히 한평생을 영위하길 빌어본다.
또 그렇게 한참을 혼자 걸었다.
걷던 중, 한 알베르게를 만났다. 1층은 레스토랑 및 바로 운영하고 있었다. 많은 순례자들이 알베르게 앞에 옹기종기 앉아 쉬고 있었고, 나도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유럽에서는 아이스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아이스는 슬러쉬처럼 만드는 종류의 커피만 있고 우리가 늘 즐겨먹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아이스 카페라떼 같은 메뉴는 없다.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키고 싶은 마음이 늘 굴뚝같지만, 뜨거운 에스프레소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열치열이라 그랬던가, 아무튼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대한 열망이 커져감을 느끼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누군가가 어눌한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알베르게의 호스피탈 레로다. 동그란 눈과 선한 인상의 그는 한국어를 꽤나 잘 했다. 한국을 좋아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며, 나에게 한국어 학습용 책을 꺼내 펼쳐 보인다.
이때다 싶어 나는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어떻게 주문하면 되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카페 콘 옐로스"라고 하면 된다고 하면서 에스프레소 한잔과 얼음 3개가 든 잔을 꺼내 준다. 늘 먹던 맛은 아니지만 이 정도도 정말 너무 행복하다! 아 감동!
카미노에서 처음으로 만난 와이파이가 되는 레스토랑에서, 나는 한 시간을 커피를 홀짝이며 앉아 있었다.
오래간만에 집에 연락도 하고 페이스북으로 생존 소식도 남겼다. 아직도 이런 SNS 따위에 얽매이고 있다는 한심한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내가 버려두고 온 세상에 대한 갈증이 간만의 오아시스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시차로 인해 한국은 너무 이른 아침이었다는 것. 친구 한 명이라도 연락이 실시간으로 닿았다면, 나는 몇 시간이고 그 자리에 죽치고 앉아있었을 것이다.
와이파이의 유혹을 뒤로 한 채 밖으로 나섰다.
자주 마주치던 세명의 순례자가 레스토랑의 점심메뉴가 괜찮냐고 물어왔다. 커피만 마셔서 모르겠노라고, 커피는 맛있더라 얘기를 해 주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비어있는 내 물통을 보더니 조금만 돌아가면 우물이 있다고 말을 해 줬다. 고맙다고 얘기하고 물을 뜨러 가는 데, 알베르게 호스피탈 레로 가 나와 물을 주겠다고 한다. 정말 친절하다.
물론 물은 그냥 수돗물을 떠서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정수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물이 썩 깨끗한 것 같진 않지만, 그 엄청난 갈증을 매번 비싼 생수로 해소할 수가 없어 수돗물을 그냥 마셨다. 그리고 뭐 딱히 몸에 이상이 없는 걸 보니 수돗물 마신다고 죽는 건 아닌가 보다.
물을 받아 들고 호스피탈레로와 사진 한방 찍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나에게 우물을 알려줬던 세명의 순례자와 함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그룹에 대해서는 늘 호기심이 있었다. 백인 남녀와 아시아 남자 한 명으로 구성된 그룹이었는데, 아시안에 대한 알 수 없는 동질감으로 그에게 늘 관심이 갔었다. 하지만 인사를 몇 번 나눈 터라 아시아인 남성이 일본인이라는 것만 알게 됐을 뿐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대충 외국에서 유학하는 일본인이고, 친구들과 함께 왔으리라는 추측만 했을 뿐이다.
알고 보니 일본인 카주와 프랑스인 셀린느는 부부였다. 그리고 아일랜드에서 온 잘생긴 톰은 카주가 유학시절 만난 친구였다. 여행과 하이킹을 좋아하는 셋은 자주 휴가를 맞추어 이렇게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충격적이다. 백인 둘이 당연히 커플일 것이라 지레짐작했던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알게 모르게 인종에 대한 구별을 짓던 나 자신이 세상에 들통난 것만 같아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들은 정말 멋졌다. 우리는 국경 없는 사랑과 꿈꾸는 젊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사랑하고 꿈을 꾸고 사는 이들이라 젊어 보였나 보다. 40대에 가까운 그들을 나는 20대로 봤으니 말이다.
아일랜드에서 온 탐은 정말 잘생겼었다. 키도 크고 남자답고 듬직했다. 카미노에서 처음으로 남자로 보이는 사람을 만났는데, 왠지 쑥스러워 사진 한번 같이 찍자고 못했다. 못내 아쉽다. 이런저런 나의 이야기를 들은 탐은, 두려워 말라며, 세계 어디를 가든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있고 무슨 일을 하든 즐겁게, 즐기면서 할 수 있도록 하라고 했다. 그리고 영국이나 아일랜드에 오게 되면, 언제든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라시아스!
셀린느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어떻게 카주를 만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지, 아시아 남자들이 얼마나 친절한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늘 "Brilliant!"라고 습관적으로 얘기하던 그녀의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와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카주는 내가 일본인인 줄 알았다고 했다. 자주 같이 다니던 켄따루와 후미야 때문이리라. 그는 그 어린 일본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왜 일본인들은 서로를 좋아하지 좋아하지 않을까? 한국인을 거의 못 만난 나는 조금 의아했지만, 그 마음이 이해는 갔다. 나도 오히려 한국인 없는 게 편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정말 멋진 사람들이었다. 더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을 했으나 아쉽게도 그들은 내일 이 여행을 끝마친다고 했다. 길지 않은 휴가로 온 것이라 모든 코스를 다 걸을 수 없다고, 그리고 내년에는 다시 에스텔라에서 시작하는 것이 계획이라고 했다.
내일의 헤어짐을 슬퍼하기엔 지금 내 발목의 통증이 너무 심했다. 그들의 발 상태 또한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고통 속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그리고 또 따로 걸었다.
에스텔라로 가는 길은 멀고 단조로웠다. 무슨 생각을 하고 걸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끝없이 이어진 갈색 길을 걷다 보면, 그냥 아무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그저 걸을 뿐이다.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할걸 그랬다는 생각을 잠깐 하고, 그냥 걸었던 것 같다.
다리가 아프면 쉬고, 어깨가 아프며 쉬고, 목이 마르면 쉬고, 그저 걷는 게 일인 순례자들에게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몸이 원하는 그때가 그저 쉬어야 할 시간이었다.
두 갈래의 갈림길이 나왔다. 오른쪽 길은 에스텔라로 들어가는 입구였고, 왼쪽 길은 그 끝에 허름한 예매당이 하나 있는 끝이 보이는 길이었다. 예배당이 어떨지 궁금했지만 고민했다.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그리도 멀지 않은 길을 두고 내 다리의 고통과 육체적 피곤함, 예매당을 보고 싶은 호기심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때, 예매당에서 걸어 나오는 한 순례자를 만났다. 연신 사진을 찍어대며 돌아 나오고 있는 그에게 저기에 무엇이 있냐고 물어봤다. 몹시 흥분한 상태에 놓여 있는 듯한 그는, 저 곳은 아주 신비로운 곳이라고, 걷은 허름한데 돌아 가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고,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무엇인가가 느껴진다고,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 다른 무엇이 느껴진다며 제발 가보라고 진심 어린 말투로 얘기를 해 줬다. 아직도 그의 "Please, go. " 가 들리는 듯하다.
호기심이 배가 되었다. 거리낌 없이 예배당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작은 벽돌 예매당, 어쩐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지만, 꿋꿋이 걸어갔다. 누가 한 명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돌아봤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나 하나가 덩그러니 있을 뿐.
예매당을 끼고 한 바퀴를 돌았다. 반대쪽에는 야생 올리브 나무들이 있었고, 예매당으로 들어가는 검은 철문이 있었다.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어두웠고, 아.. 이 곳은 정말.. 달랐다. 공기가 달랐다고 해야 할까?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예매당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듯했다. 뭔가 따뜻하고 뭔가가 가득 차 있는 알 수 없는 기분. 알 수 없는 에너지. 누군가가 그곳에서 잠을 잤는지 뒤편에는 건초가 흩어져 있었고, 앞쪽은 무엇인가 써 놓고 간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있었다.
이 곳에도 누군가의 마음이 잔뜩 남아있는 듯하다. 남겨진 메모가, 남겨진 돌들이 그 마음의 일부를 알려주는 듯하다. 좋고 아름다운 마음만 남아 있는 곳인가 보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아름다운 마음.
예배 당문을 살짝 닫고 밖으로 나왔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한줄기 불어왔다. 그 순간 내 마음도 무엇인가로 가득 채워지는 듯했다. 뭔지 알 수 없는 그것, 알 수 없는 어떤 것, 그게 뭘까 아직도 모르겠다.
예매당을 돌아 나오면서 아쉬움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를 만나 저 곳을 꼭 들르라고 얘기를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늦게 움직이는 순례자였던 나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드디어 별들의 도시 에스텔라에 도착했다. 알베르게에 들어가니 반가운 얼굴들이 햇볕 아래에 앉아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늦게 도착한 내가 묵을 곳은 창고를 개조해 방으로 만든 아주 허름한 곳이었다. 여기밖에 없다는데 어쩌리.. 커다란 방에는 대충 70여 개의 2층 침대가 놓여있는 듯했다. 청결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마구간 같은 건물에 침대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여놓은 큰 공간이었다. 처음으로 알베르게에서 자기 싫다는 생각을 했지만, 모두들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냥 묵기로 했다.
씻고 빨래를 하고 나서, 까뜨린과 몰리, 굴리 등등과 함께 슈퍼마켓에 갔다. 저녁거리와 내일 아침에 먹을 샌드위치 거리를 사 들고, 친절한 스페인 아저씨의 도움으로 발목에 뿌릴 파스도 사 들고 돌아왔다.
까뜨린이 있어서 다행이다. 각각 혼자 이곳에 온 우리는 서로에게 꽤나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혼자 걷는 것은 상관없다. 괜찮다. 하지만 숙소에서 저녁을 혼자 먹어야 하고, 슈퍼마켓을 혼자 가는 것은 상상하기 싫었다. 이미 친해져서 소규모 그룹을 만든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 속에 끼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내겐 까뜨린이 있고, 까뜨린에겐 내가 있어서, 우리는 둘일 수 있었다. 다행이고 고마웠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니 하나둘씩 주방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일찍 도착한 케샤와 후미야, 켄따루는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뒤 파스타를 요리 해 먹었고, 요리할 힘이 없었던 나와 까뜨린은 냉동피자를 사 와서 팬에 구워 먹었다.
전자레인지가 없었던 주방에서 당황한 우리에게 누군가가 프라이팬에 구워 먹으면 된다고 얘기를 해 줬다. 냉동피자에 익숙지 않은 나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까뜨린에게는 기겁할만한 일이었나 보다. 피자를 팬에 굽는 것, 그것으로 많은 유러피안들이 웃겨서 뒤집어지고 있었다. 이런 것이 바로 학습이 불가능한 문화 차이리라.
그리고 아까 나에게 예배당에 꼭 들어가 보라고 했던 안토넬로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요리를 잘못해 흑색이 돼버린 닭가슴살과 양배추를 먹고 있는 그는, 꽤나 괴짜 같아 보였다. 그리고 실로 그러했다. 까뜨린이 안토넬로에게 꽤나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안토넬로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녁시간은 언제나 길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얘기를 나누며 와인과 함께 저녁을 먹다 보면 한두 시간은 그냥 흘러간다. 보통 저녁시간은 소등시간인 10시경 끝이 난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보니 할 말도 그만큼 많은 것이다.
사람들과 끝도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 뒤에서 내 두 눈을 가렸다. 한국으로 치면 "누구게 ~"를 나에게 하는 이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순간적으로 몹시 당황했다. 그리고 그것은 포르투갈인 루이스였다. 이틀 만에 다시 만난 그가, 그리고 나를 보고 그렇게 반가워해주는 그가 나도 너무 반가웠다. 가벼운 포옹으로 인사를 하고, 그는 친구들이 저녁을 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며 조금 있다 보자며 밖으로 나갔다.
다시 보게 돼서 반갑고 고마웠다.
이 길이 그런 곳이다. 자주 마주치던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인사할 새 없이 헤어져 있는 그런 곳이다. 모두가 걷는 속도가 다르고 속사정도 다르기에 오늘 만난 사람을 내일도 만난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약 없던 누군가를 계속해서 만나게 되는 것은 기적이었고, 그렇기에 엄청난 반가움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을 알아감에 고맙고, 모두가 모두에게 오픈되어 있는 이 놀라운 곳에 고맙다.
소등시간이 되어간다. 우리는 저녁을 먹은 곳을 함께 정리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정리를 하다가, 케샤의 전공이 성악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래를 들려줄 수 있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겠노라 말한다. 나와 케샤, 켄따루, 그리고 친절하고 매너 좋은 스페니쉬 에릭과 함께 우리는 알베르게를 뛰어 나갔다. 우리에겐 10분밖에 시간이 없었고, 소리를 지를 수 있는 넓은 공간을 찾아야 했다.
마을 공터에서 약간 올라가면 있는 교회 앞 광장에서, 우리는 무대를 발견했다. 그리고 케샤는 노래를 했다. 나도 들어본 적이 있는 노래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에스텔라의 밤을 아름답게 장식했고,
밤하늘의 별들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더욱 반짝였다.
실로 너무 아름답고 완벽한 밤이 아닐 수 없었다. 세명밖에 없는 관람객은 모두 감동을 받았고,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밤을 선물 받았다. 고마워 케샤!
그렇게 우리는 또 함께 웃으며 신나게 뛰어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아름답고 고마운 밤, 나는 케샤에게 굿 나이트 인사를 알려 달라고 했다. 나에겐 낯설기만 했던 스페인식 인사, 하지만 나도 그들을 포옹해주고 싶었고, 볼 키스를 해주고 싶었다.
그녀는 나에게 스페인식 인사와 폴란드식 인사를 알려줬고, 우리는 몇 번이고 서로의 볼에 뽀뽀를 해 주며 인사를 연습했다. 그리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는 스페인식 저녁 인사인 "부에 나스 노 체스"를 말해주며 인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케샤와 굿 나이트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각자의 침대로 돌아갔다.
너무도 아름다운 별들의 마을 에스텔라, 그리고 너무도 아름다운 에스텔라의 밤.
나는 이 도시를, 이 이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또 좋아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