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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스타장 Feb 04. 2024

아버님이라 불러도 괜찮아요.

호칭에 대한 소감

    야채 가게의 여주인이 나를 '아버님'이라고 불렀다. 처음 듣는 호칭에 무척 당황스러워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슬며시 가게를 나오고 말았다. '내가 왜 자기 아버님이야?', '내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이상했다. 여주인이 그런 호칭으로 손님을 부르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대개 나이 든 남자 손님을 그렇게 부르겠구나 생각하니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손님'이라는 호칭도 있는데, 굳이 왜 '아버님'이라고 불렀을까 싶기도 했다. 어쩌면 여주인은 나름대로 친근함을 보이려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호칭은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한 언어 수단이다. 호칭에 따라 상대를 존대하는 의미가 담기기도 하고, 친근함이 표현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상대를 낮잡아 부르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아버님'이라는 호칭은 집안의 며느리나 사위가 시아버지 혹은 장인을 부를 때 주로 쓴다. 그런데 요즘은 동네의 가게에서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남자를 높여 부르는 때 쓰이기도 한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 


    이전에는 비슷한 경우에 남자에게는 '사장님', 여자에게는 '사모님'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지금도 그런 호칭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 전보다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사장님', '사모님'이라는 호칭은 산업화 이후에 부의 상징처럼 불려지던 호칭이었던 것이 어느 순간 손님을 존대하는 경우에 널리 쓰이는 경향이 있었다. 업종에 따라서는 '고객님', '손님'과 같은 호칭을 쓰는 경우도 있다. 요즘 공공기관에서는 민원인을 부를 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 역시 원래의 의미나 쓰임에서 많이 확대되어 쓰이는 예라 할 수 있다.


    간혹 같은 단어의 호칭인데도 부르는 상황이나 뉘앙스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될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아저씨'의 경우는 원래 '결혼하지 않은, 아버지의 남동생'을 이르는 말이다. 지방에 따라서는 이를 '삼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아저씨'의 다른 쓰임으로는 '남남끼리에서 성인 남자를 예사롭게 부르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앞의 경우는 친근한 표현이 되지만, 뒤의 경우는 예사롭거나 혹은 낮잡아 부르는 호칭이 되기도 한다. 


    회사에 재직 중일 때는 회사 내에서 직책이나 직급으로 불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팀장님', '실장님', '본부장님'처럼 직책으로 부르거나 '대리님', '과장님', '부장님', '이사님'처럼 직급으로 부르는 것이다. 나도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회사에 소속되어 살다 보니 이런 호칭에 익숙했다. 그러나 퇴직을 하고 나니 회사에서 부르던 호칭은 모두 사라졌다. 다만, 옛 직장의 동료나 후배를 만나면 지금도 나의 마지막 직책으로 나를 부르고 있어서 직장 생활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퇴직을 하고 재취업을 위한 공부를 하는 동안, 집에서 요리, 빨래 등이 집안일을 내가 맡아했다. 요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요리 재료를 사기 위해 마트를 가거나 간식을 사기 위해 빵집에 들르는 일도 자연스러웠다. 이전에는 주말에 아내와 함께 그런 곳에 갔기 때문에 마트나 빵집 주인이 나를 부를 일이 없었는데, 평일 낮에 혼자 마트나 빵집 같은 곳에 가는 일이 생기면서 나를 부르는 호칭을 듣게 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아버님' 호칭을 들어을 때의 당황스러워했던 에피소드를 얘기하면서 '어르신'이라고 안 부르는 게 어디냐고 우스갯소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어디에 가서 '아버님'이라는 호칭을 들어도 거부감이 적다. 많이 익숙해진 까닭일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나이를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 다른 사람이 나이 먹는 모습을 보면서 내 나이를 실감하기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젊은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 사는 것이다. 그런 내가 '아버님'이라 불렸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현실을 파악하고 받아들이니 호칭을 듣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머지않아 어디 가서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듣게 될 것이다. 그때도 '아버님'이라는 호칭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당황할까? 아니면 예방 주사를 맞았기 때문에 그때는 조금 덜 당황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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