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ck & Talk] 김연희&한재민 인터뷰
내 방문을 나서면 자연스럽게 누군가와 마주치는 코리빙 하우스.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공용 키친, 라이브러리까지
그 우연한 만남이 켜켜이 쌓여 맹그로브 안에서 연인이 된 인물들을 만났습니다.
사소한 일상 공유를 시작으로 사적인 관계로 발전하기까지,
맹그로브에서 함께 지내면서 생긴 다양하고 즐거웠던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Q.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연희&재민: 안녕하세요, 저희는 맹그로브 신설에서 이웃으로 만나 9월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 김연희, 한재민 입니다! 둘다 맹그로브에서는 약 1년 반 정도 살았고 지금은 맹그로브를 떠나 성북구에서 살고 있어요.
Q. '코리빙'이라는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특히 맹그로브 신설에 살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뭘까요?
재민: 부산에서 살다가 서울로 취직을 하게 되었는데, 회사에서 주거 비용을 지원해주셔서 맹그로브를 계약하게 되었습니다. 퇴근 후 공간 투어를 위해 1615호를 방문했는데, 창문을 열자마자 비치는 노을빛에 마음이 빠져서 고민할 틈도 없이 계약을 결정했어요.
연희: 맹그로브 신설이 오픈했을 때, 와디즈에서 맹그로브 살아보기 펀딩을 접하게 되었어요. 에어비앤비처럼 가볍게 생각하고 왔지만, 다양한 공용 공간과 이웃이라는 개념 아래에서의 따로 또 같이 사는 코리빙의 매력에 빠졌어요. 또한 본가로부터 독립을 생각하고 있던 때였는데, 집을 떠나기 위한 조건을 따져 부동산을 알아보고 계약을 체결하고 가구를 채워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비교적 간편한 입주 과정과 갖춰진 공간, 그리고 맹그로브에서 제공하는 관리 서비스까지 고려하고 독립의 시작으로 딱 맞다고 생각했죠. 일주일간의 체험이 끝난 후 두 달 후에 본격적으로 입주했습니다.
Q. 연희님이 브런치에서 연재하신 '코리빙 라이프스타일 관찰기' 시리즈도 재밌게 읽었어요. 어떤 계기로 연재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연희: 저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데는 조금 부족한 편이에요. 코리빙에서의 생활을 글로 풀어보고 싶었는데, 우연히 맹그로브에서 친한 이웃인 테드가 코리빙을 소재로 한 에세이를 써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해서 함께 글을 쓰게 되었어요. 테드는 맹그로브 이전에도 코리빙을 경험한 친구로, 행동력이 좋아요. 함께하니까 더 즐겁게 글을 쓸 수 있었어요.
저는 직접 겪은 일을 쓰기도 했고, 이웃들의 이야기를 듣고 쓰기도 했어요. 매주 연재하면서 궁금한 점이 생기면 이웃을 찾아가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글로 남기는 일이 즐거웠어요. 테드나 저 모두 본업이 바빠서 오래 이어나가지 못했지만, 여전히 기록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뿌듯합니다.
Q. 두 분은 어디에서 처음 만나셨나요?
연희: 재민이 먼저 저를 알았어요. 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맹그로브를 태그해서 올렸는데, 맹그로브에서 리그램 해주셨고, 재민이 그 스토리를 보고 제 계정을 발견했대요. 제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하던 순간에 16층 공용 키친에서 저를 발견하고, 먼저 인사를 건넸어요. 같은 입주민으로서의 인사가 낯설지 않았죠. 그래서 둘 사이의 첫 만남이 자연스럽게 시작됐어요.
'이웃이니까'를 핑계 삼아 함께 밥을 먹자는 얘기도 나왔는데, 재민이 14층 공용 키친에서 보쌈 요리를 해줬어요. 요리가 취미인 재민이 특별한 요리를 보여줬고, 요리 잘하는 남자가 이상형이었던 저는 조금 반했어요. 이후로는 맹그로브 여기저기서 자주 마주쳤어요. 엘리베이터를 타다가도, 빨래를 하러 가다가도, 지하 2층에서 일을 하다가도. 맹그로브 이웃 친구들과의 관계도 겹쳐서 자연스럽게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됐어요. 저는 관계에 있어 천천히 다가가는 스타일이었는데, 같은 집 아래에서 자주 마주친 덕분에 어느 순간 마음이 사악 퍼졌어요.
코리빙 하우스에서는 조건 없이
사람 자체로 서로 친밀감이 쌓이는 것 같아요.
Q. 코리빙 하우스에서 시작 된 연애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요?
재민: 마침 저희 둘다 성수쪽으로 출근했고 출퇴근 시간도 비슷해 항상 함께 했어요. 동시에 집에와서도 매일매일 볼 수 있다는 게 정말 선물 같았습니다. 그래서 만난 시간에 비해 정말 빠르게 오래 만난 연인처럼 여러 편안한 활동(동네 산책, 요리 등의 데이트)을 할 수 있었던 게 가장 좋았어요.
연희: 제가 14층, 재민은 16층에 살고 있었어요. 계단을 오르기만 하면 남자친구의 집이 있는 거라 매일 보게 되었어요. 이전에 연애를 할 때는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호했고 매일 만나는 커플이 신기했는데, 이젠 그렇게 되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게 아니라 집에서 볼 수 있으니 서로의 모습이 빨리 익숙해졌고요.
학교를 나온 후에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특정한 조건하에 만나는 경우가 많아요. 모임을 하더라도 특정 주제가 있거나 소개를 받아 서로의 배경을 알고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런데 코리빙에서는 같은 곳에 거주하고 있음 외에는 어떤 점이 겹치는지 알 수 없어요. 조건 없이 사람 자체로 친밀감이 쌓인 것 같아요.
제가 확신의 연상파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재민이 연하였고, 제가 막연하게 세일즈 직군은 술을 많이 마시고 파워 외향인에 사람들과의 네트워킹 위주의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IT 업계에서 세일즈 업무를 하는 재민은 의외로 꽤나 얌전해서 제 편견을 다 부셨어요.
Q. 이웃들에게는 연애 사실을 언제 공개하셨어요? 초반에는 비밀 연애 기간도 있었나요?
재민: 저희와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곧바로 말했어요. (티를 안 낼 자신이 없었음ㅎㅎ) 연희가 조심스러운 성격이라 우리와 친하게 지내던 입주민 친구들에게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관계가 안정된 후에 알려주려고 했는데, 저희가 자주 만나게 되는 만큼 이웃 친구들도 그만큼 자주 마주치게 되어 숨기기가 힘든 환경이었습니다.
연희: 저희가 만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크리스마스 때였어요. 맹그로브 신설 근처 키미라는 와인바에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남자친구와 함께 키미를 방문했던 맹그로브 이웃과 마주쳤어요. 우리 둘 다 움찔 했고, 이웃은 '저 둘이 어떻게 된 조합이지' 생각했대요. 이후에도 둘이서 가볍게 산책을 하거나 차 한 잔을 마셔도 분위기가 달랐나봐요.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결국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CC(Coliving Couple)가 되었어요.
어떻게 보면 연애가 가장 사적인 영역인데도 환경이 환경인 만큼 알리고 싶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맹그로브 안에서 저희의 연애 일상을 함께 하고 있는 것도 특이했어요. 서로 아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던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Q.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알려주세요.
재민: 사실 처음 연희를 보게 되었을 때 아름답고 귀여운 외모에 반했고, 만난 지 일주일 정도만에 이미 저는 연희에게 빠져 있었습니다. 생각하는 것과 가치관, 취향이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연희는 몰랐겠지만, 혼자서 이미 연애 초에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저에게 고민이 되었던 것은 연희와 언제 결혼을 할 것인가였지, 누구와 결혼을 할 것인가는 전혀 고민할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연희: 저는 연애와 결혼을 따로 생각하지 않는 주의였어요. 만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결혼을 염두에 두고는 있었는데, 결심을 내릴 때까지 꽤 오래 걸렸죠. 상대방을 잘 알아야 평생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맹그로브에서 매일 마주하며 보는 재민의 모습들에서 앞으로도 함께 지내며 즐겁게 지낼 수 있겠다는 힌트를 많이 얻었어요. 사소한 일상 생활 습관들까지도 보게 되니 결심의 토대가 어느 순간 단단해진 것 같아요. 맹그로브에서 이미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경험하고 함께 했기 때문에, 함께 살았을 때 부딪힐만한 것들도 꽤나 유사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재민은 저와 매우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에요. 그만큼 저를 잘 이해하고요. 연인이지만 가장 편안한 친구로서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결혼까지 이어졌어요.
Q. 한 집에 살아서 다퉜더라도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일이 종종 있었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면요!
재민: 코리빙 환경에서는 자주 만나게 되는 장점과 함께 단점도 있었어요. 그 중 가장 큰 단점은 싸웠을 때 공용 공간이나 엘리베이터를 타면 마주치게 되는 상황이었죠. 어색하게 지나가곤 했지만, 뜻밖의 만남이 서로를 다시 화해시키는 순간으로 바뀌기도 했어요. 그래서 오히려 서로 웃음 짓고 금새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연희: 한 번은 둘이 방에서 대화하다가 서로 기분이 상했는데, 방에서보다는 조금 더 오픈된 공간에서 얘기해야겠다 싶어서 14층 공용 주방의 원형 테이블에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어요. 저는 티가 별로 안 났다고 생각하는데, 나중에 저희를 우연히 봤던 친구가 "싸웠지?"라고 묻더라고요ㅋㅋ.. 코리빙에서는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것들도 종종 오픈됩니다.. 그래도 싸웠을 때는 결국 얼굴을 보고 푸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얼굴을 마주할 일이 많으니까 싸워도 금방 풀었던 것 같아요. 화해는 대부분 재민이 먼저 손을 내밀었어요. "저녁은 먹었어?" 묻고 주방에서 요리 해주고. 퇴근길에 제가 좋아하는 작은 꽃다발을 사서 방문 앞에 두고 가는 식으로요. 이것도 코리빙이라 가능했던 화해 방식 같네요.
Q. 함께 자주 이용하던 공용 공간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연희: 책 읽거나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저는 지하 2층 라이브러리를 좋아해서 자주 갔는데, 그럴 때 재민이 라이브러리로 같이 와서 라이브러리 내 구비된 책을 이리저리 살펴보거나 누워서 쉬거나. 따로 또 같이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장소였어요. 주로 함께 하는 장소지만 싸웠을 때 마음을 식히는 대피 장소(?)로도 훌륭 합니다.
Q. 가장 좋아했거나, 특별히 추억이 있는 신설 로컬 플레이스가 있나요?
연희&재민: 단연코 성북천! 둘 다 걷는 것을 좋아해서 함께 아침이나 밤에 산책을 다니며 많은 이야기를 했던 곳이에요. 완전한 신설동은 아니지만, 날씨가 좋을 때는 따릉이를 타고 성북천을 따라 올라가 성신여대 근처에서 ‘팔백집’에서 매콤한 쫄갈비를 먹고 다시 걸어 내려와 ‘보리수’ 카페에서 여름의 달달한 팥라떼를 입 안에 가득 털어넣고 돌아오는 것이 저희가 자주 찾던 확신의 행복 코스였어요. 팔백집과 보리수는 여전히 자주 가요. 며칠 전에 보리수에 갔더니 사장님께서 저희를 보고 활짝 웃으시면서 ‘곧 팥라떼가 나옵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청계천과 성북천이 맹그로브 신설 근처에 있는 것이 저희에게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였습니다. 게다가 매일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새끼 오리들이 태어나는 봄이 올 때 즈음엔 오리를 보겠다고 주구장창 걸어 다녔어요. 서울에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한 귀중한 경험이에요. 앞으로도 주거지를 선택할 때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고요.
Q. 맹그로브에서 잊지 못할 풍경을 하나 꼽아 보자면?
재민: 풍경보다 기억이라고 한다면…제가 코로나에 걸려 방에 격리된 적이 있는데 연희가 매번 생필품과 음식을 문 앞에 가져다주고, 만나질 못하니 문구멍 사이로 연희 얼굴만 잠깐 보이던 그때가 생각나요.
연희: 저는 재민과 함께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16층 공용 주방에서 연말을 기념하며 마니또를 했던 때요. 정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친구들과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만나 서로를 생각하며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니 저에게는 여전히 잊지 못할 풍경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재민이 주최했던 테라스 타코 파티, 시네마룸 단체 관람 등 아마 재민이 있어서 더 좋았던 거겠지만, 역시나 잊지 못할 기억들은 다 이웃들과 함께하는 장면들이네요. 다시 생각해도 너무 소중해요. 경험할 수 있어 기뻤고.
‘시절 연인’이라는 말이 있듯,
맹그로브에서 때에 맞는 인연들을 잘 만났어요.
Q. 맹그로브에서 지내보면서 얻어간 것이 있다면요? 퇴실 시 느끼셨던 감정 등도 궁금합니다.
연희: 낯선 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인간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어요. 사랑하는 사람도 만났지만, 아쉬운 관계로 끝난 이웃도 있었죠.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저에게는 관계의 적절한 수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공동 생활을 하면서 각자가 정말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 당시 지내던 친구들과 현재 모두 연락을 유지하고 있지는 않아도 그런대로 또 좋아요. ‘시절 연인’이라는 말이 있듯 때에 맞는 인연들을 잘 만났어요. 직접 연락을 하지 않더라도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서 또 꾸준히 소식을 접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퇴실할 때는 정말 아쉬웠어요. 하지만 스스로를 더 찾아 나서기 위해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맹그로브에서 알아간 우리의 생활양식, 취향, 앞으로의 방향을 고려해 이사를 했습니다. 맹그로브에서 1년 반을 보내면서 공간에 대한 취향이 많이 바뀌고 확고해져서, 지금의 제 집을 보고 친구들이 ‘참 김연희스러운 집' 이라고 말해주더라고요.
맹그로브에서 지내는 동안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다채로운 경험을 즐길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여전히 공용공간이나 커뮤니티 같은 코리빙 라이프가 조금 그리워요. 만약 신혼부부를 위한 맹그로브가 있었다면 그곳으로 이사를 갔을지도 몰라요!
글 | 임정연
사진 | 이라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