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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ntasmo Jun 27. 2022

오락실, 후암동 종점, 엄마

내 인생의 첫 기억에 대하여

밤 벚꽃_그림 홍지혜


나는 어릴 적 후암동 버스종점에 살았다. 그곳은 차가 종점에서 돌아서 나가는 곳이라 유턴하는 로터리 같은 공간이 있다. 그 버스정류장을 중심으로 작은 가게들이 모여 상권을 이뤘다. 우리 집은 그 가게들 뒤에 바로 골목 들어가면 나오는 집이었다.


첫 기억이라고 하면 그 동네가 생각난다. 엄마는 나를 업고 선선한 밤거리를 걸어 다닌다. 아무래도 아빠가 퇴근하여 들어오길 기다리는 것 같다. 동네 어르신들을 만나서 인사도 하는데 동네 어르신들이 아 누구 딸이냐고 내 얼굴을 보고 아빠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엄마는 동네를 어슬렁 거리다가 코너에 있는 오락실에도 간다. 사람들이 오락하는 게임 화면을 같이 쳐다본다. 막 뿅뿅거리며 평소에 들어본 적 없는 소리가 신기하다. 

그 오락실을 생각하면 엄마 등에 업혀있던 기억도 나고 어떤 날은 내가 서서 사람들 게임하는 곳 옆에 서서 같이 쳐다보던 기억도 난다. 게임을 했던 기억은 안 나지만 옆에 그 소리가 신기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화면 속 공이나 물체들이 신기했다. 그래서인지 밤에 산책처럼 나가면 엄마는 우리를 데리고 오락실에 갔던 것 같다. 

첫 기억은 여기까지 난다. 하지만 그게 하루의 기억인지 기억이 각색되어 여러 기억이 조합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 집에 살면서의 또 다른 기억은 동생이 아장아장 걸어 다니면서 마당에 있는 석유통에서 길게 나 있는 호스를 통해 석유를 먹은 기억이 난다.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근처 내과에 갔고 나도 봐줄 사람이 없어 데리고 갔던 것 같다. 많이 위독한 건 아니었지만 위세척을 해야 했고 나는 진료실 밖에서 영문도 모른 채 그냥 앉아있었다. 내가 아픈 것도 아니고 동생이 많이 아파 보이지는 않아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는데 엄마가 너무 초조해하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모든 상황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도 괜히 무서웠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두 기억이 그 집에서의 큰 기억이다. 그 외에 기억들은 아마도 내 머릿속에 기억된 게 아닌 엄마가 이런저런 넋두리하며 듣고 내가 스스로 연출한 기억일 것이다. 


내 동생이 그렇게 혼자 동네를 돌아다녀서 어른도 1.5km 정도 나가면 나오는 지하철역까지 혼자서 갔다가 거기서 동네분들이 동생을 알아보고 집까지 데려다 주기도 했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컸다. 어릴 적 기억들의 대부분은 동생이 늘 말썽을 피우고 엄마를 속상하게 했던 기억들이다. 내가 만든 기억이 아니라 남동생이 사건사고를 만들면서 생긴 크고 작은 기억들이다. 


그 시절의 사진 속 엄마는 남동생 때문에 살이 찔 겨를이 없었고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그런 엄마는 어른이 된 나에게 그래도 그때 너희들 키우느라 힘들어서 행복하다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가 제일 행복했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행복이 피곤함과 고단함과 같이 붙어있는 것이라면 행복을 구하며 살고 싶지 않지만, 엄마는 지금도 고단한 하루를 보내면서도 행복해한다. 나의 엄마는 내가 갖고 있지 못한 삶을 긍정하는 힘이 있다. 


나는 그렇게 추억을 곱씹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다. 늘 과거는 들쑤셔도 좋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무언가 애잔하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엄마가 행복해다니 나의 기억도 다시 재해석되어갔다. 어릴 적 기억을 돌이키면 나를 마음 가득 채우는 행복했던 기억들이 있다. 그 기억들로 점점 더 많아진다. 그래도 그 기억들 속에 애틋함이 있었고 그 순간의 최선이 있었다. 




노른자 책방에서 진행하는 작가에게 답장을 받는 한 달치 글쓰기의 마지막 글이다. 이기리 작가님이 어릴 적 가장 첫 기억에 대해 쓰자고 하였다. 나의 첫 기억. 감정을 빼고 그 기억은 그저 엄마의 등이었다. 돌이켜보니 따뜻하다 내가 누군가의 등에 업혀있었다니... 작은 나를 엄마는 온전히 등에 엎고 길을 나섰다. 내가 나의 아이를 아기띠에 앉고 다녔듯이 말이다. 


나는 늘 나의 과거를 아프게만 참 슬프게만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그 속에는 모든 게 함께 혼재되어 있었다. 단지 내가 자세히 보지 않았을 뿐이다. 그 속에 우리의 최선이 있었다. 엄마의 최선이 있었다. 그걸로 나는 위로를 받았다. 서툴지만 어른이 되어가려는 엄마의 모습이 느껴졌다. 나는 그 힘으로 지금까지 산다. 감사하며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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