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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상민 May 13. 2023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Volume 3> 단평.

제임스 건이 마블을 떠나며 남기는, 더 강렬하고 더 나아간 종지부

여러 말들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물이 낳는 의의가 있다면, 그 중 하나는 정말 다양한 감독들이 좀 더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길을 만든 것에 있지 않을까요.


제임스 건도 그 중 하나입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맡기 전에는 원래 미국 B급 호러-고어 전문 영화사 트로마에서 일하고, 이전 장편 연출작이 징그러운 괴생명체가 사람들을 장악하고 죽이는 호러 영화에(<슬리더>), 일단 히어로물이긴 한데 잔혹한 고어로 가득 채운 영화(<슈퍼>)를 연출했었으니까요.


물론 이전에도 팀 버튼이나 샘 레이미가 각각 <배트맨>(1989)나 <스파이더맨>에 참여하는 등 히어로물과 녹여내 독특한 작품을 만드는 등의 움직임은 계속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언맨> 이후 본격화된 미국 양대 코믹스의 본격적인 영화 산업 진출은 자신들이 소유한 캐릭터를 최대한 빠른 속도로 영화로 만들 필요가 있었고, B급이나 호러 등 장르 영화의 영역에서 활동하던 이들을 더욱 불러올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 흐름에서 제임스 건은 빠르게 마블에 픽업되었고, 그 결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영화 시리즈는 몰개성한 작품이 나오기 쉬운 히어로물 중에서 흑인 영화의 전통을 잇는 <블랙 팬서> 시리즈나 호러의 감각을 삽입한 <닥터 스트레인지> 시리즈, 닥치고 막나가는 <데드풀> 시리즈 등과 더불어 고유한 특색을 지닌 시리즈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죠. 제임스 건이 인디에서 활동할 때 올린 경솔하고 젠더 감수성에서 문제적인 트윗을 올렸다는 것이 대거 밝혀졌고, 그로 인해 2018년에 마블에서 계약이 해지되었다 배우들의 요구 등으로 2019년에 다시 복귀하는 소동이 있었습니다. 이후 제임스 건은 마블의 경쟁자인 DC로 건너가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피스메이커>를 만들더니 2022년에는 급기야 DC 코믹스의 영화 스튜디오 ‘DC 스튜디오’의 대표로 영입되었습니다. 더 이상 마블의 영상물에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는 어떻게든 끝을 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어요.


그러기에 이 작품은 시리즈의 ‘일단’ 종지부이자, 제임스 건이 이 시리즈에서 미처 펼치지 못했던 시도들을 죄다 펼치는 감각이 강합니다. 작년 디즈니 플러스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공개한 특별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홀리데이 스페셜>에서는 본인 특유의 어딘가 꼬여 있는 독특한 코믹 센스를 가득 채우더니, 여기서는 본인의 원류인 잔혹과 고어를 상영 등급을 높이지 않는 선에서 가득 선보이는 것입니다. 정말 피가 덜 보일 뿐이고 잘 근접해서 담아내지 않을 뿐 이전 두 작품에서는 그렇게 강하지 않았던 신체 훼손, 개조, 변형, 살해 등등의 시퀀스를 꽤나 자주 담아냅니다. 딱 한 번에 불과하지만 욕설(F로 시작하는 그 단어…)도 그대로 대사로 실어내고요.


그러나 표현의 세기만 강해진 것은 아닙니다. 이전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가디언즈 멤버 사이, 그리고 주변 인물 간의 우정이나 애정을 비롯한 ‘감정의 교류‘와 ’존중‘이라는 감각도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본래도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는 멤버들의 성별은 물론 각자 사연, 성격, 취향도 제각기 다르게 설정하며 어떻게 타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돕고 도움받는지를 그리며 우정이나 애정에 바탕한 유대감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 유대에 필요한 ‘적절한 거리감‘, 그리고 ’인간형 캐릭터‘를 벗어나 더욱 폭넓게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고 공생해야 할 필요성을 함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한 점은 이번 작품의 메인을 장식한 ‘로켓 라쿤’(브래들리 쿠퍼)을 통해서 매우 강하게 드러나죠. 만화 원작에서도, 영화판에도 개조로 다른 동물과는 다른 신체 능력과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는 설정이 있었지만 이번 편에서는 그 ‘설정’이 그저 캐릭터의 능력을 뒷받침하는 도구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임을 말하면서 들어가고 있습니다.


끔찍한 개조를 자신처럼 당한 동료 동물들, 동물들은 물론 다른 생명체도 놀잇감처럼 취급하는 경멸어린 메인 빌런의 시선들을 엮어 배치하는 전개와 클라이맥스는 영화의 비주얼적인 잔혹함을 서사적으로도 증폭시키는 동시에, 2010년대 중후반부터 계속 전개 중인 상업 영화의 시선 확장이 이런 식으로도 드러날 수 있음을 보이는 하나의 모습입니다. 비단 성별이나 인종뿐만 아니라, 절대 인간형이 아니며 흉측한 모습을 지닌 괴물 같은 캐릭터까지도 ‘같이 살 수 있는 존재인가‘를 말하며 실천하는 모습은 할리우드 상업 영화라는 한계를 고려해도 꽤나 과감하고, 도발적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제임스 건이 자신이 일으킨 여러 논란을 성찰하고, 그 숙고의 결과를 이렇게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렇게 스토리의 큰 줄기가 생명체 전체의 공생을 말한다면, 그 사이드로 배치된 스타로드(크리스 프랫)-가모라(조 샐다나)를 비롯한 다른 가디언즈 멤버들 사이의 이야기는 서로가 서로에게 지니는 관계성에 초점을 맞추며 개인이 다른 개인에 어떠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며 줄기의 이야기를 더 세부적으로 뻗어나가게 합니다. 여기에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한 제임스 건의 빠른 리듬의 편집과 경쾌한 촬영 구도, 그리고 더욱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사운드트랙의 선정이 합쳐져 독특했던 히어로 시리즈의 마지막을 하나의 ‘작별 선물‘처럼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그 선물은 근래 들어 더이상 2010년대 같은 폭발적인 흥행력을 보이지 못하는 히어로물 전체에 던지는 고민이기도 합니다. 이전에도 <토르 : 다크월드> 등이 받았던 비판처럼 <어벤져스> 같은 메인 이벤트를 위해 ‘지나가는 이야기’로 내던져지는 작품에 대한 지긋함은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장르 전체에 대한 피로감으로 퍼지고 있으니까요. 어떤 의미로는 미국 양대 코믹스 고유의 시스템이 영화로 이식되는 순간 답습될 수 밖에 없었던 한계기도 하고요. 다수의 캐릭터들 이야기가 끊김 없이 계속 반복되고, 주기적으로 히어로 캐릭터 모두 모이는 대형 이벤트를 반복하지만 조금씩 그 자체에 피로를 느끼며 독자들이 떠나가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 점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Volume 3>는 히어로물이 일대를 풍미한 붐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계속 생존하려면, 어떠한 접근이 필요한지를 던지는 작품이기도 한 것입니다. 시리즈 각자의 개성과 특색을 살리고, 그러면서도 세계관 전반이나 다시 이 작품들이 제작되는 현실과의 매개를 놓치지 않는 시선 말이죠. 그리고 어떤 의미론 비슷하게 난맥상에 빠지고 있는 한국 영상물 전반, 문화 산업 전반이 고민할 문제기도 하고요. 업계, 종사자, 향유자 다수가 시선을 넓히기는커녕 줄이는 시기엔 더욱 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2023)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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