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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상민 May 28. 2023

루벤 외스틀룬드 <슬픔의 삼각형> 단평 : 웃고 비웃고

<더 스퀘어>보다는 선명해진 작품, 비꼬는 맛은 좋아졌다.

<포스 마쥬어>, <더 스퀘어>를 만든 스웨덴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의 신작입니다. <더 스퀘어>에 이어 연속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도 받았죠. 하지만 동시에 어떤 의미로는 (올해 마이웬의 작품이 개막식에 오르며 논란이 된) 칸 영화제의 상황을 보여주는 감독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애시당초 ‘3대 영화제’라는 호칭은 긴 역사가 쌓은 권위이며, 그 영화제로 ‘간택‘되는 것이 작품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긴 하죠. 마이클 무어 <화씨 9/11>이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것처럼 시상식이나 그곳의 상은 자체적인 맥락과 정치가 더해지는 결과였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전작 <더 스퀘어>는 근래 칸 영화제가 놓인 위치 그 자체를 보여주는 작품이긴 했죠. <포스 마쥬어>에 이어 백인 사회의 규범으로 박힌 ’정상성‘을 뒤집는 블랙 코미디이기는 해도 이전의 비슷한 시도에 비하여 더 나갔던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상은 받는, 그런 느낌의 작품이었습니다. <포스 마쥬어>가 상당히 적은 무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의 역전으로 효과적으로 꼬집었다면, <더 스퀘어>는 무대도 늘어나고 권위있는 상을 받았지만 감흥은 역설적으로 줄었습니다. 이제 그러한 작품에 이어 재차 대상의 영광을 받은 작품은 어떨까요.



일반적인 블랙 코미디 드라마에 가까웠던 전작들에 비하면, <슬픔의 삼각형>은 제법 레퍼런스가 많은 조난 코미디나 68 운동을 전후해 대거 등장했던 사회 지배층을 비꼬는 유럽 영화들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가이 리치가 <스웹트 어웨이>로 리메이크했다 대차게 까였던) <귀부인과 승무원>을 비롯해 부자들이 오물 속에 죽어가는 <그랑 부프> 같은 작품들 말이죠. 매우 명시적으로 계급의 구도를 보여주고, 성별이나 인종, 장애와 같이 사회적인 급간도 잘 보여줍니다. 대놓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취중에 늘어놓다, 그 이야기들을 정말 현실에 실현시키는 사고 실험도 시켜주죠.


앞서 언급했던대로 이런 류의 작품은 오래전부터 계속 잊을만 하면 나왔기 때문에 오리지널리티가 강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직설적으로 세부적인 요소를 던지며, 냉소로 가득찬 감독의 시선이 더해지며 이미 반복되었던 플롯은 좀 더 세세한 결들을 가지게 되죠. 본격적인 ‘역전’의 발생 전 1시간 30분 정도를 상세하게 빌드업에 공을 들입니다.


반은 현실의 젠더 관계와 달리 남성의 처우가 더 열악한 모델의 세계에서 어떻게든 남성다움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칼(해리스 딕킨슨)과 그런 그가 못마땅한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야야(故 샬비 딘)의 관계를 보여주죠. 감독의 두 전작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겉으로는 멀쑥한 척 하지만 속은 덜그럭거리는 남성의 모습을 그립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이 세계를 판박이로 옮긴 것 같은 호화 크루즈의 세계죠. (야야와 칼은 협찬받아 왔지만) 비싼 돈을 주고 크루즈에 올라 승무원도 자기 장난감인듯 구는 부유한 계급과 이들을 모시는 승무원들, 그리고 다시 맨 바닥에 있는 온갖 직원들의 세계기도 하죠.



하지만 화려한 크루즈는 운항 내내 구조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계속 좌충우돌하고, 결국 실질적으로는 부유층들과 그 수행원들이 스스로 낳은 파멸로 배는 ‘역전’되고 말죠. 이후 외딴 섬에서 전개되는 3부는 <귀부인과 승무원> 같은 요소가 가장 강렬하게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다만 생존한 사람이 단 두 명은 아니고, 다양한 요소를 가진 사람들이 제법 살았기에 더욱 구도는 복잡해지죠. 그러나 카메라의 초점은 명확하게 계급의 맨 바닥이 위로 올라오는 순간을 향하고, 작품은 끝날 때까지 우연과 필연이 겹쳐 만든 희비극을 비춰냅니다.


목적과 시선이 매우 명확하기에 밍숭맹숭했던 <더 스퀘어> 보다는 훨씬 볼만 합니다. 더욱 직접적으로 부유 계급과 자기 모순과 멍청함을, 젠더나 인종 등을 이유로 누군가에 위에 서있다 착각했던 양반들을 대놓고 욕보이며 비웃기 위해 제작된 작품이니까요. 물론 여전히 제도권에서 만들어졌기에 못 넘는 선이 있고, 과연 이 작품이 작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을 정도로 가장 좋았냐고 물으면 참 미묘하긴 합니다.


칸이 이전 <화씨 9/11>에 그 상을 준 것처럼 정치적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바로 다음에 마이웬이 연출하고 조니 뎁이 나오는 작품을 개막작으로 부르는 영화제의 선택에 대한 신뢰는 언제까지 오래갈 수 있을까요. 어찌되었든 마치 마당놀이의 말뚝이처럼, 147분의 러닝타임을 아낌없이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삼각형 꼭대기를 비웃다 집에 돌아가면 그만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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