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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상민 Aug 26. 2024

양주연 <양양> 단평 : 기록은 왜, 필요한가.

기록을 추적하는 단편 다큐를 만든 감독의 첫 장편, 기록의 맥을 짚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24에서 관람했습니다. 실제 개봉 버젼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양양>은 양주연 감독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입니다. 양주연 감독이 처음으로 만든 단편 다큐멘터리였던 <양동의 그림자>(2013)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서울역 부근 양동 집창촌의 사람들을 여러 영화들과 자료들을 통해 추적하고, 이어서 만든 <내일의 노래>(2014)는 감독 본인이 다녔던 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며 처우 개선을 위해 투쟁하는 과정을 기록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이들 단편이 감독의 관심사나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추적’(trace)한 것이었다면. 이후 만든 단편 다큐 <옥상자국>(2015)은 좀 더 감독의 가족과 연관된 미시적인 영역에 초점을 맞추는 작품이었습니다. 광주 외갓집에 남은 어떤 자국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하는 작품은 외할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이 자국이 5.18 시기에 발생한 총탄 자국의 흔적임을 알게 되고, 다시 5.18이 외할머니와 상관관계를 지녔음을 알게 됩니다. 작품은 이를 단순히 5.18의 시민군 조력자 발굴 서사로 그치는 대신, 당시 5.18을 마주하던 광주 시민이 어떤 식으로 5.18를 기억하며 체화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며 기억에 다가서는 법을 섬세하게 드러냈습니다. 이러한 추적과 기록의 과정에서 5.18은 그저 기념물로 박제화하는 대신, ‘계속 이어지는 삶’으로서 다시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만들었던 단편이자, 다시 한 번 5.18을 주제로 내건 다큐 <40>(2020)은 1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옥상자국>에서 넌지시 드러냈던 ‘현재와 호흡하는 5.18’을 어떻게 영상으로 드러낼 것인지를 모색하는 하나의 실험과 같았습니다. 5.18 당시 사진으로 기록된 이들이 당시 사진이 촬영되었던 장소에서 그날의 모습과 표정을 재현하는 행위는 직접적으로 당시의 심상을 40년이 지난 현재에 되돌아 보는 동시에, 4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인상적으로 드러내는 표현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양주연 감독은 꾸준히 자신이 관심을 지니는 대상과 흐름에 대해서 ’추적‘하고, 다시 그 결과물을 ’기록‘하는 작업을 수행해왔습니다. 이러한 작업 대다수는 작품을 촬영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최소한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 흔적을 최소한의 형태로서라도 구술할 수 있는 상태에서 성립이 가능한 것이기도 했죠. 좀처런 쉽게 말하기 어려운 성질의 기억이라면, 그리고 현존하는 기억의 잔해들이 쉽게 수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분해되어 있다면 다시 어떤 식으로 이를 추적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러한 추적이 이뤄져야 하는 걸까요.



<양양>은 감독이 지난 네 편의 단편에서 시도한 ’추적‘의 방법론을 더욱 심화시킨 결과물입니다. 동시에 ’과정‘이기도 합니다. 우연히 술에 취한 아버지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고모의 삶을 추적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비롯해 많은 가족이나 친척들은 이미 고모에 대한 기억을 날려 보낸지 오래고, 고모에 대한 기록 상당수도 망실되어 있습니다. 고모가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수사 자료 역시도 마찬가지고요. 감독은 정황상 고모의 죽음이 단순한 사망이 아니라, 당대의 여성 혐오가 자아낸 사망이었을 가능성에 도달하지만 이는 결국 ‘가능성‘일 뿐 입증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작품은 이렇게 한 줌의 기억/기록으로 남은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왜‘ 다가가는지를 고민하고 그 고민을 다큐멘터리로서 실천하는 과정에 대한 자기 기록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전까지의 단편이 추적의 ’결과‘에 좀 더 초점에 맞춰져 있었다면, 장편이 되며 훨씬 증가하게 된 러닝타임의 적지 않은 부분을 <양양>은 이러한 감독의 고민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감독은 우연하게 알게 된 가족의 숨겨진 비밀을 그저 개인의 지적 호기심으로만 풀지 않으려 하고, 그렇게 흐르는 것을 경계합니다. 추측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이젠 결코 알 수 없게 된 것에서는 ’알 수 없음‘을 넌지시 드러냅니다. 이 과정에서 작중에 계속 삽입되는 애니메이션은 이 ’불확실하게 된 기억‘을 더욱 인상적으로 드러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다큐가 최종적으로 내딛는 발걸음은, 쉽게 결론을 내리는 대신 그간 쉽게 잊으려 했던 존재에 대한 ’기록‘과 ’호명‘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기억을 키워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유를 명목으로 제대로 호명도 되지 않았던 존재를 조금이라도 뚜렷하게 바라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치 <양동의 그림자>나 <옥상자국>에서 수행했던 작업처럼, 결말부의 ‘기록 작업’은 한국 사회가 그간 계속 쉽게 지워만 오던 과거를 정성적이자, 물적으로 호명하는,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이 계속 필요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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