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서포터즈를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그들의 열광을 추적하다.
생각하면 한국에 의외로 안 보이는 영화 소재가 ‘축구’입니다. 엄밀히는 스포츠 소재의 영화 자체가 잘 시도되는 편이 아니지만, 그래도 ‘야구’는 간간히, ‘농구’는 많이 드문 간격으로 보인다면 ‘축구’는 그보다도 잘 안 보입니다. 한국에서 국가대표 축구팀이나 이전에 비하면 많이 상승한 K리그의 인기를 생각하면, 그 인기에 비해서 영상화는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K리그를 다루는 작품도 별로 없습니다. 아무리 긁어모아도 2006년에 임유철 감독이 연출한, 한창 ‘외인구단’이라는 소리를 듣던 2004년 ~ 2006년 장외룡 감독 재임 시기의 인천 유나이티드를 다룬 <비상>이 끝이었어요. 팀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작품이 없는데, 당연히 팬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작품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수카바티: 극락축구단>은 한국 영화에서는 거의 최초로 축구의 ‘팬’, 더 정확히는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열렬하게 응원하는 ‘서포터즈’를 다룬 다큐멘터리입니다. 자신의 결혼 생활을 소재로 삼으며 가족 관계와 고부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여성의 위치를 다룬 <B급 며느리>를 연출했던 선호빈 감독과 등급 분류를 받고 영화관에 작품을 건 적은 없었지만 독립 다큐멘터리의 독립적 순회 배급 프로젝트 ‘다큐유랑’을 통해서 연극에 도전한 아마추어들의 좌충우돌을 그린 <바보들의 행군>을 개봉하고, 다시 이 영화의 다큐유랑을 통한 상영 과정을 다룬 <두 번째 행군>을 연출했던 나바루 감독이 공동으로 연출했습니다. 두 분은 이래저래 서로가 서로의 작품 제작을 돕기도 하고, 다른 지인 감독의 작품에 같이 스태프로 참여하기도 했었죠. 계속 여러 프로젝트에서 함께 할 일이 많다 보니, 둘이 함께 장편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다만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작품에 나오는 모습을 보시면 알겠지만, 작중에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2019년부터 2020년까지에요. 2019년 이후 바로 팀을 옮겼던 조규성의 FC 안양 시절 모습도 나오죠. 실제로도 이 작품은 2019년에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을 받았었으니, 그 때부터 촬영이 이뤄진 것입니다. 하지만 작중 말미에서 나오듯이 촬영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코로나-19가 한동안 창궐하며 무관중 경기가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진 뒤에도 이래저래 편집이나 후반 작업 등에 시간이 더 걸렸는지, 다른 제작지원 프로젝트에 몇 번 참여하다 지난 7월에서야 겨우 개봉하며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카바티>에서는 코로나-19 시기의 이야기는 정말 짧게 언급되지만, 2020년에는 나바루 감독이 연출을 담당해 당시의 FC 안양의 상황을 다룬 웹 다큐멘터리 <FC안양이 코로나를 극복하는 방법>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긴 시간 끝에 공개된 작품의 모습은 어떨까요. 작품 홍보의 전면에는 지난 2013년에 창단한 시민구단 ‘FC 안양’, 그리고 이 팀의 창단에 깊이 관계를 맺어 온, 이전 경기도 안양시를 연고지로 삼던 ‘안양 LG 치타스’ 시절에 처음 결성하여 안양 LG가 ‘FC 서울’이 되어 연고지를 옮긴 이후에도 FC 안양 창단 전까지 꾸준히 명맥을 유지했던 서포터즈 ‘A.S.U RED’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고, 이는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히는 RED와 FC 안양의 이야기가 한 축에 있다면, 다른 한 축에는 K리그의 다양한 구단을 좋아하는 전체 서포터즈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만, 연고지 이전 문제로 RED 및 FC 안양과 악연이 된 FC 서울의 팬이라면 불편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합니다.)
작품의 전반부는 왜 안양의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축구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합니다. 작중에서도 언급되고, 개봉 전후 <한겨레>의 인터뷰에서도 언급되었던 것처럼 선호빈·나바루 감독 모두 축구에 대해선 원래 잘 알지는 못했다고 하니까요. 축구를 모르는 입장에서 왜 이렇게 축구를 좋아하는지를 궁금해하며 들어가는 연출은 축구에 대해서 일반적인 수준의 인식이나 선호도를 지닌 대중들이 손쉽게 작품에 빠져들 수 있도록 만듭니다. 안양 LG가 존재하던 시절부터 현재의 안양 FC까지 족히 20년 넘게 안양 연고지의 축구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연달아서 등장합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이유는 제각기 다양합니다. 사람은 많은데 놀거리가 부족한 동네에 생긴 최초의 스포츠 구단이어서, 한창 축구 열기가 올라가던 상황에서 문득 내가 사는 지역에도 축구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우연히 얻게 된 공짜 티켓 덕분에….
이유는 제각기 달라도, 어린 시절 만난 안양 LG의 모습은 이들의 열정에 불을 붙였습니다. 홍염처럼 활활 타오르는 열정이었던 만큼 2004년 갑작스레 구단이 서울을 새 연고지로 정한다고 했을 때는 더욱 거센 분노가 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구단주가 결정하고 프로축구연맹이 승인한 사항을 팬들의 힘만으로는 되돌리기는 쉽지 않죠. 뜨거운 열정을 지닌 팬은 있는데 그들이 사는 동네에는 축구팀이 없는 상황이 장기간 이어졌고, 다른 K리그 구단의 서포터즈 못지 않은 강력함을 자랑했던 RED도 와해 직전으로 몰렸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집중적으로 안양의 정치권을 공략하며 안양시의 지원으로 FC 안양의 창단을 이끌어 내며 기어코 안양에 다시 프로축구단을 만들게 됩니다. 이 과정이 중반부에 전개되는 이야기이며, 후반부터는 창단 이후 오랜 시간 약팀을 면치 못한 FC 안양이 2019시즌 상위 리그인 ‘K리그1’으로 승격할 수 있는 기회의 목전에 놓인 순간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합니다.
다큐멘터리는 RED 서포터즈가 겪어야 했던 지난한 과정이 무척이나 드라마틱하게 드러냅니다. 하지만 동시에 작품은 이들이 어딘가 특별하거나, 뭔가 무시무시한 존재가 아니라 저마다 각자의 삶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평범한 삶을 살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중에 짬짬이 틈바구니를 만들며 자신이 빠진 축구팀에 열정을 불태우는 것입니다. 이는 해외에서 열광적인 서포터즈를 다루는 작품에서도 조망하는 모습이지만, 한국의 서포터즈들 역시도 그저 난폭하거나 사고뭉치 같은 존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임을 강조하는 모습은 무언가에 대해 ‘열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또한 FC 안양과 RED의 이야기를 넘어,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른 K리그 구단 서포터즈의 인터뷰는 이러한 열정이 특정 팀에서만 발현하는 모습이 아니라 K리그라는 하나의 축구 리그 전반에 존재하는 모습임을 넌지시 드러내고 있습니다. ‘K리그의 서포터즈’ 전반에 헌정하는 다큐멘터리라는 자기 선언은 결코 틀린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그런 ‘헌정’이 조금은 생각해 볼 부분을 낳긴 합니다. 초중반부에 K리그가 KBO 리그와 더불어 전두환 정권이 국민의 이목을 돌리기 위해서 만든 한계가 있음에도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K리그에 열광하는지를 짚는 질문이 있는 것처럼, 안양 LG 치타스가 서울로 가게 되는 과정에서 팬들의 분노와 실망감과 함께 현실적인 상황들을 함께 짚는 것처럼 좀 더 질문을 던져도 좋았을 지점들이 몇 군데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안양의 새로운 축구팀을 만드는 데 있어 안양시의 지원을 받고자 하고, 다시 이를 위해 안양시의회의 관련 조례 통과에 사활을 거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다른 한국의 시민구단이 그렇듯, 지자체 내에서 축구팀을 운영할 수 있는 자금을 서포터즈 같은 팬들의 모금이나 이에 동조하는 지역 기업의 후원을 모으기 무척 쉽지 않고, 결국 지자체의 지원을 받거나 지자체의 ‘권유’로서 기업의 후원을 받아오는 것이 쉬운 길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조례 통과를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부분은 다큐멘터리에 있어 하나의 극적인 장치가 되기도 하죠. 하지만 전반부에서 질문을 던졌던 만큼, 좀 더 이 상황에 대한 질문을 던져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외에도 구단-운영주체-서포터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등, 뭔가 더 깊게 접근해도 좋았을 지점을 좋게 넘어가는 지점이 후반부로 갈수록 자주 등장합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수카바티>는 K리그 서포터즈의 활동과 삶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작품이라는 의의가 있습니다. 더 의미를 넓힌다면, 20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어떤 이들이 왜 무언가에 이토록 열광하고 빠져드는지를 다루는 작품의 연장선에 놓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오세연의 장편 다큐멘터리 <성덕>이나, 박윤진의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이래저래 <수카바티>가 흥미로웠다면, 넷플릭스에서 <죽어도 선덜랜드> 같은 비슷한 소재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도 좋겠지만, 이들 작품을 보면서 ‘무언가를 깊이, 열광적으로 좋아한다는 것’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한편으로는 이 작품이 계기가 되어 <수카바티>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지점이나 시각으로 K리그, 그리고 서포터즈를 바라보는 작품이 나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