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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상민 Feb 28. 2025

봉준호 <미키 17> 단평 : 안정적인 '봉준호개론'

봉준호의 첫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작품, 어떤 의미로든 안정적인 맛.

<미키 17>은 어떤 의미로도 ‘안정적’인 영화입니다. 이 문장 뒤에 여러 말을 더 덧붙이긴 하겠지만, 어찌되었든 크게 모나는 부분 없이 연출, 촬영, 배우의 연기, 편집, CG 및 후반작업, SF의 세계관의 활용 등등 모든 부분이 안정적으로 굴러갑니다.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조금씩 갈리겠지만, 이 작품이 질적인 측면에서 엉망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달리 말하면, ‘제법 볼만하다’ 이상이라고 말하기엔 또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작품은 봉준호 작품 중에서는 가장 많은 돈을 들여 제작되었고, 봉준호 최초로 우주를 무대로 전개되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이래저래 작품의 모습을 보다 보면 봉준호의 이전 작품들에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나게 되죠. 로버트 패틴슨이 맡은 작품의 주인공이자 수도 없이 복제를 당하는 ‘미키 반즈’의 칙칙한 인생과 역정은 뭔가 봉준호의 작품에서 나오던 주인공의 모습 같죠. 음악까지 정재일이 맡아서 그런지, 뭔가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에서 문득 송강호의 테이스트가 묻어나는 것만 같기도 합니다.



지구가 대충 망한 뒤에 벌어지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SF라는 점에서는 (이 세계관 자체는 원작에 있다지만) <설국열차>가, 생명체를 놓고 벌이는 여러 소동이라는 점에서는 데뷔 장편 <플란다스의 개>와 <옥자>가, 특히 겉보기에는 어딘가 기과하지만 그에 상관없이 이런 생명체를 놓고 꽤나 중요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옥자>와 <괴물>이 떠오르기도 하죠. ‘먹거리’가 중요한 플롯으로 작동하는 장면에서는 <기생충>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성적인 시퀀스가 관계성을 말하는 중요한 장치로 쓰이는 부분은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으로 한동안 잘 사용하지 않다, <기생충>에서 다시 활용하는 대목이 떠오르기도 하죠. 이미 <옥자>로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해외 투자작을 만들었고, <기생충>의 여러 성과로 더 해외에 알려졌지만, 이번 작품은 더욱 본격적으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투자를 받는 만큼 해외 관객들을 위한 ‘봉준호개론 101’ 수업을 받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오히려 어떤 점에서는 왜 이렇게 봉준호가 큰 도전 없이 안정을 택했을까를 들여다보는게 흥미로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할리우드가 미국 바깥 지역의 무수한 감독들을 매년 수도 없이 끌어당기고, 이들의 기력을 소진한 채 커리어를 끝내는 일도 부지기수하게 발생하지만, 봉준호는 그렇게 소모되기에는 이미 확실하게 자신만의 발판을 다져놓았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준호가 놓인 위치는 할리우드를 기준으로는 완전히 주류에 올라섰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건 미국을 벗어나고, 유럽마저도 벗어난 아시아나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지역 출신 영화인에게 비일비재하게 당하는 취급이기도 하죠. 그래서 그런지 봉준호도 이 작품에서 큰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는 느낌입니다. 대신 감독 자신이 그간 유려하게 펼쳐 왔던 연출과 구성을 할리우드가 좋아할 만큼 매끈하게 구성하는 감각이 강해집니다.


그래도 더욱 밋밋했던 원작보다는 분명 낫습니다. (사실 소설이 출간되기 전부터 판권을 샀다고 하니, 봉준호의 안정적인 연출 수행을 위한 그럭저럭한 기반을 찾은 느낌이 강하기도 했죠.) 로버트 패틴슨은 이제 더 이상 과거 <트와일라잇> 사가를 운운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원숙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음을 다시 드러내고 있고요. 나오미 애키, 토니 콜렛, 스티븐 연, 그리고 특별 출연으로 이름을 올린 마크 러팔로까지 모두 자신의 롤에 맞는 연기를 잘 펼치고 있습니다. 정재일은 할리우드에 와서도 관현악을 사용한 자신 고유의 멜로디 구성를 이번 작품에서도 자신이 해왔던 경향대로 해내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쉽게 인간 복제가 되어 인간의 가치가 떨어진 비인간적인 상황과 겉으로 보기엔 뭔가 흉측하지만, 생명을 생각하는 마음은 오히려 작중의 인간들보다 더 뛰어나다는 아이러니한 조합도 (이 또한 근간은 원작이더라도) 봉준호는 적절한 스릴과 긴장, 드라마를 담아서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작품이 취하는 강한 ‘안정 추구’는 이 작품의 메인 투자이자 배급을 맡은 워너브러더스가 이 작품을 대하는 방식과도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공표된 제작비는 약 1억 달러라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뭔가 작품에서 주요한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은 꽤나 협소한 분위기에서 전개됩니다. 분명 우주를 무대로 전개되지만, 대다수의 사건은 우주선 안에서 벌어지고, 우주선 밖의 모습은 크레바스와 동굴 정도를 제외하면 굳이 크게 디테일을 살릴 필요가 없는 광활히 눈이 가득 쌓인 행성 표면의 모습입니다. 어딘가 제한된 무대의 연극을 보고 있다는 감각이 강하게 느껴진달까요.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워너가 이 작품의 개봉을 계속 엿가락처럼 미뤘다 당겼다 한 것도 그렇고 (그 과정에서 원래는 2022년에 나온 원작 소설과 비슷하게 개봉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작품의 텀이 좀 길어지게 되었습니다.), 한국을 제외하고 전통적인 비수기 시즌인 3월을 개봉 일정으로 잡은 걸 보면 이 작품에 대한 어떤 반신반의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안정적으로 봉준호가 할리우드에 안착하기 위한 방향으로 프로덕션이 이뤄졌지만, 동시에 메인 텐트폴로 밀기에는 여전히 애매해 판단을 계속 저울질을 한 것이 개봉 전의 모습에서 너무 여지없이 드러났죠. 최종적으로 확정된 개봉 일정과 이후의 프로모션도, 감독의 고국인 한국에서 일단 확실한 흥행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에서 어필해보자는 감각이 강해집니다.


이래저래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로 온 순간, 마틴 스코세이지 같은 소위 ‘거장급’ 감독이라도 자본의 영향에서는 자유롭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할리우드 진출이 그저 겉으로 보기엔 아름다워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감독에게 주는 자유권이 높은 편인 미국 외 감독들은 여러 시련과 고민에 마주칠 수 밖에는 없는 것 역시도 할리우드 진출 시도이죠. 그런 여러 역학 관게에서 여러 우여곡절 끝에 <미키 17>은 나왔습니다. 그러기에 어찌보면 이 작품에 너무 큰 한 방을 기대했다면 첫술에 배부르길 바란게 아닐까 싶기도 하죠. 할리우드의 신인 감독으로 시작하는 봉준호가 어떻게 할리우드의 코드를 자기 식대로, 자기가 써왔던 방식을 응용하며 다루고 있는지에 주목하면 의외의 흥미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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