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 간호사 출신 독일 레즈비언 부부의 일상에서 일상의 근간을 생각하다
2022년에 독일에서 어떤 한국 출신 레즈비언 커플이 결혼을 했습니다. 모두 70세를 넘긴 상태였죠. 두 사람 모두 박정희 시기 정부에서 집중적으로 추진했던 독일 근로자 파견 사업을 계기로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게 된 분들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동거 자체는 1990년부터 시작했지만, 2017년 독일에서 법적으로 동성 간 혼인이 허용된 이후 절차를 밟아 몇 년 전에서야 정식으로 결혼하게 된 겁니다. 바로 김인선-이수현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주로 여러 독립영화나 단편영화의 조연출로 활용하던 반박지은 감독은 2016년부터 독일로 건너간 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알게 되어 첫 장편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2-2023년에 걸쳐 부산국제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디아스포라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의 상영을 마친 후 2025년 2월이 되어서야 영화관에 개봉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여러 뉴스나 방송용 교양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등에서 ‘파독 광부/간호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정말 이들이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은 접근은 없었습니다. 끽해봤자 영화 <국제시장>에 나오는 그 정도, 외화를 벌기 위해 해외에서 고생한 ‘우리의 소중한 아들딸들’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그나마 이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던 작품은 한국계 독일인 감독인 조성형의 2012년 다큐멘터리 <그리움의 종착역> 정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건 독일 사람과 결혼한 파독 노동자들 중 한국에 이주와서 살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건설된 경상남도 남해 독일마을을 다룬 작품이었죠. 이 다큐멘터리는 파독 간호사 아내와 독일인 남편으로 구성된 세 부부를 그리면서, 독일에서의 노동과 결혼, 그리고 한국과 독일을 넘나드는 과정에서 조금씩 자신들이 ‘경계인’과 같은 존재로 자리 잡고 있음을 짚는 작품이었습니다. 여기에 그나마 더 추가하면, 2017년 ‘파독 간호사’를 주제로 한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 정도가 꽤나 깊게 다룬 이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두 사람>은 이전까지 파독 간호사를 다뤘던 모습에서 더 나아가서, 김인선과 이수현이 어떻게 독일에 가서 어떻게 서로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이후 노년이 되어 주로 독일에서(그리고 2019년 한창 서울퀴어문화축젝 열리던 한국에서) 삶을 보내고 있는지를 짚고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이나 짧은 편이지만, 작품은 그 짧은 언급을 통해 그간 파독 노동자에게 부여되던 ‘가정과 국가를 위해 외화를 벌며 헌신하는 노동자’의 이미지를 완벽해서 벗겨냅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정부가 의도한 목적이었고, 결과였을 뿐 실제 노동자들에게도 과연 그랬을까요. 작품은 이에 대한 언급을 과감히 지워내고 김인선과 이수현에게 독일로 간 것이 한국에서는 계속 ‘벽장’ 속에 숨어야 했던 자신들이 비로소 벽장을 부수고 나와 자유를 찾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음을 언급합니다. 심지어 김인선은 30대 중후반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으며, 전에 결혼했던 남편과 이혼하며 진정한 자신의 사랑 이수현을 만나게 된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영화는 그 지난했던 과거에 대한 회고를 넘어서, 이들의 현재 모습(주로 2019년의 모습)을 중심으로 어떻게 서로를 존중하고 주체적인 일상을 살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일상적으로 음식을 함께 준비하여 식사를 하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부당하다 생각하는 모습에는 문제 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위를 하고, 그러다 때가 되면 가끔씩 자신의 고향인 한국에 방문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와 밤에 서로를 마주하며 춤을 추는, 그런 일상의 단면들을 계속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단면들은 김인선-이수현이 보내는 삶의 정체성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보이는 시퀀스기도 합니다. 이미 여러 인터뷰로 나왔듯, 김인선은 파독 노동자를 비롯해 동아시아에서 온 이주민의 임종을 위한 호스피스 봉사 단체 ‘동반자’를 만든 사람이었죠. 김인선의 공부와 연구도 퀴어적인 측면에서 기독교를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김인선의 일과 공부는 김인선이 조금 늦게서야 인식했던 정체성과 결코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2019년 한국에서도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던 독일 ‘호른바흐’ 사의 성별과 인종 차별 광고에 대한 시위에도 참여하고, 한국에 와서는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발언하고 이와 연계되어 대화도 나누는 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정체성은 삶의 구석구석 여러 군데에 묻어납니다.
반박지은 감독은 다큐멘터리의 상당수를 이렇게 현재의 장면에 대한 포착하며, 그 사이사이에 몇몇 사진자료나 과거의 이야기를 삽입하면서 어떠한 과거의 우연이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고, 그 지점에서 다시 어떠한 삶이 뻗어져 나왔는지를 관객으로 하여금 지켜보게 만듭니다. 그저 독일 사회가 최고다는 이야기로 그치는 건 아닙니다. 김인선이 참여한 차별 반대 시위나 김인선-이수현 부부가 이래저래 퀴어를 보는 시선 때문에 밖에서는 손을 잘 잡지 못하게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독일 사회도 일정한 한계가 많은 사회입니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퀴어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 이 둘은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인식하게 되고, 다시 그로부터 한국에 거주할 시절이나 독일에 처음 왔을 때는 상상하지 못했을 여러 모습들을 만들어내게 된 것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그 일상은 결코 가벼이 구성되는 것이 아님을 영화는 담담하면서도 일상의 순간을 또렷이 바라보는 연출로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한국은 기본적인 차별금지법조차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거대 양당 모두 차별금지법에 호의적인 자세가 아니며, ‘나중에’는 물론 근래 거의 확정적인 조기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소수자의 권리나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보여주는 모습은 보수적인 사람들이나 보수적 기독교 신자의 이탈을 두려워하고 있음이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해외 국가들이 이미 상황이 완벽하여 아무런 문제도, 투쟁도 벌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권리도 제대로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얼마나 한국의 퀴어 시민은 더 오랫동안 벽장 안에 숨어야 하고, 벽장 안을 나오면 유무형으로 얻어맞을 것을 각오해야 하는 것일까요. <두 사람>은 그렇게 일상적으로 보이지만, 그 일상이 구축되었을 구조를 은연 중에 인식하게 만들면서 이 일상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여로를 생각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이 모습이 한국의 굴레를 벗어난 이 두 사람뿐만 아니라, 한국에 정주하는 모든 이들의 ‘당연한 일상’이 되기를 바라는 함의를 담아내는 것입니다.
덤. 이래저래 여러 독립적인 영화나 다큐멘터리 작품이 그렇듯이 무수한 제작지원제도에 응모해 지원금을 수령받은 흔적이 영화의 초반부의 크레딧이나 후반부의 스탭롤에 나옵니다. 영화진흥위원회를 비롯해 여러 영화제의 프로그램을 통한 제작지원을 받았음을 언급하면서, 흥미롭게도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 관리하는 ‘이반시티퀴어문화기금’과 독일 베를린의 ‘프리드리히스하인-크로이츠베르크구’(Friedrichshain-Kreuzberg)의 ‘민주주의를 위한 파트너십’(Partnerschaften für Demokratie) 기금을 받았다는 사실도 언급되네요.
전자는 기금의 이름대로 게이 커뮤니티 ‘이반시티’의 회원들이 모금한 돈을 바탕으로 퀴어 문화예술 사업을, 후자는 좀 더 찾아보니 독일 웬만한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민주주의와 관련된 여러 종류의 이니셔티브 캠페인이나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인 것으로 보입니다. 계속 비주류적인, 독립적인 예술이 제작비를 모으는 것이 쉽지 않은 가운데, 모든 종류의 작업들이 각각의 특성을 인정받지 못하며 소수의 지원 사업이나 피칭에서 경쟁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어떠한 펀딩 프로그램이나 기금 사업이 필요한지를 보이는 모습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