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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정돌이> 단평 : 성찰 없는 재현과 접근

'기념용 작품'이라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앙상한.

by 성상민 Mar 01. 2025

일단 먼저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김대현 씨에 대해서는 이걸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손병관, 김민웅 등과 함께 박원순의 성폭력 문제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을 운운하며 2차 가해를 하려고 했던 <첫 변론>의 감독을 맡은 사람이었죠. 그 결과 요새의 한국 법원은 웬만해서는 상영 금지 가처분을 잘 안 받아들이는데, 너무나도 상황이 심각했던 덕분에 이 작품은 상영 금지 가처분이 결정되었습니다. 한국 독립영화 1세대 감독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추하고, 부끄러워해야 마땅할 일을 저지르셨죠.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09420.html


그런 사람이 고려대학교 민주동문회와 관련이 깊은 조직 ‘고려민주기념사업회’와 같이 일종의 기념 다큐멘터리를 만든 것이 <정돌이>입니다. <정돌이>는 표면상으로는 1980년대 여러 집안 사정으로 고려대 정경대 건물에서 운동권 대학생들과 함께 살게 되어 ‘정경대’의 이름에서 딴 ‘정돌이’라는 별명이 붙은 사물놀이 미르의 송귀철을 다루는 작품이지만, 송귀철의 이야기보다는 송귀철이 인연을 맺게 된 1980년대 후반 학번으로 민주화운동이나 여러 노동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죠. 어찌보면 ‘정돌이’를 발판삼아, 민주기념사업회가 민주동문회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셈입니다. 김대현 자신도 그 시절 고려대를 다녔던 사람이니까요.


이래저래 김대현의 작품은 이미 신성록이 주연으로 나왔었던 2010년 작품 <살인의 강>부터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상황이긴 했습니다. 그나마 소재가 흥미로워서 <목포의 눈물> 이난영과 그의 자녀 김시스터즈의 이야기를 다룬 <다방의 푸른 꿈>(2015)를 봤지만, 정말 소재가 전부였죠. 이 작품 역시도 감독의 최근 행적이 행적이기에 그리 보고 싶지 않았지만 보도자료에서 언급된 소재도 소재고, 사회운동을 기념하는 사업회에서 만든 영화라 어떻게 나올지 참으로 궁금해서 그 얼기설기로 짜맞춰졌을 모습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봤습니다.


그리고 그 우려는 벗어나지 않습니다. ‘정돌이’의 이야기는 정말로 겉포장 이상이 되지 않고, 실질적으로는 이 영화의 제작자이기도 한 80년대 후반 학번 고려대 운동권이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정부 홍보영화나 가끔씩 KBS나 EBS에서 억지로 만든 것이 티가 나는 정부 홍보 특집 다큐멘터리 같은 톤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정말 딱 정론으로 남은 역사를 인터뷰를 빌려서 반복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래저래 기묘하다면 기묘한 어린 시절을 보낸 정돌이에 대해서, 자신이 보았던 그때의 학생 운동 사회 모습에 대해서 깊게 접근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접근을 해야 할 부분에는 어설픈 재연 연출이 자리를 메울 뿐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작품을 메우는 이야기도 정말 자신들 이외의 독자를 상정하지 않은 ‘기념서적’ 이상을 넘지 못합니다. 고대신문나 학내 방송국 KUBS 등의 아카이브 자료 같이 흔하게 보기 어려운 사료는 흥미롭지만, 이를 정작 써먹는 방식이 ‘우리는 그렇게 힘들게 운동을 했다’ 이상에 머무르며 여기에 붙여지는 이야기 또한 ‘정파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당시 학생운동의 쟁점을 너무나도 쉬이 납작하게 만들거나, ‘586 꼰대라는 호칭이 달갑지 않다’ 같은 잔여물 같은 이야기들은 정제도 없이 스크린에 등장할 따름입니다. 오히려 쉬어가는 목적으로 넣었을, 지금은 사망한 <자주민보> <자주시보>의 편집장이자 한창 때는 ‘홍치산’이라는 필명으로 <바보 과대표> 같은 시로 유명했던 이창기가 본래는 <람보> 같은 미국 문화에 푹 빠져 이를 동경했던 사람이었다- 같은 대목에서 연출의 의도와 달리 당시 사회운동의 맥락을 생각하게 만들 정도입니다.


물론 이 작품이 ‘기념작’이기에 가지는 한계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986년 투쟁 중 분신자살로 사망한 서울대학교 김세진·이재호를 기념하는 사업회에서 만든 김응수의 <과거는 낯선 나라다>(2007, 김세진이세호기념사업회 차원에서 이 작품 풀버젼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7xaAcu1Tp8)나, 노래패 ‘새벽’, 민중가요그룹 ‘노래를찾는사람들’(노찾사)로 연결되는 서울대학교 노래패 ‘메아리’의 4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정일건의 <나의 노래 : 메아리>(2018, 이건 아마도 정일건 감독 개인 유튜브로 보이는 채널에 풀버젼이 공개 중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laWG8i2Jg)는 ‘기념작’으로 기획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단조롭지 않았습니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아예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자체를 탐구하며 김응수의 후기 작품관으로 이어지는 시작과도 같은 작품으로 완성되었고, <나의 노래 : 메아리>는 운동의 한계와 쇠퇴 모두를 응시하면서 당시 민중가요 운동의 한 단면을 짚는 작품이었죠.


하지만 이 작품은 정말 딱 과거에 대한 표면적인 회고 이상은 없습니다. 굳이 ‘정돌이’를 끌고 올 필요도 없었고, 딱 도구적으로만 사용하고, 다른 인터뷰나 아카이브 자료의 활용법도 사정은 같습니다. 다른 인물들은 이름/학번/학과 정도만 언급하는 가운데, (영화의 촬영 시점이 제법 늦었는지, 지금은 찾아보니 주앙골라대사가 되었다고 뜨는) 최광진에 대해서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맥락도 생각하지 않고 ‘주이라크아르빌분관장’ 경력을 붙이는 등 뭔가 맥락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선택이 난무합니다. 그나마 희귀한 고려대 학생운동 자료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을 겨우 찾을 수는 있겠지만, 그냥 차라리 별도 아카이브로 보는게 낫겠죠. 이래저래 딱 근래 결코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적 프로젝트에 참여한 감독이, 과거 성찰이 없는 채로 회고에서만 그치는 사고 방식이 모두 모여, 매우 단편적인 접근으로 등장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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