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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현 Feb 12. 2017

[여행에세이] 졸린데 자긴싫고

다시 생각해봐, 누굴 위한 이별이었는지 (man ver.)





널 사랑한 많은 날들 중에 가장 설레던 날은 아이 같지만, 네가 내 생일파티를 해준 날이었어.
약속시간보다 많이 늦었는데도, 다 왔다는 나의 전화해 당황하며 허둥거리던 너의 목소리
아는 것과 다른 것 같은 케이크, 평소에 먹어본 것과 다른 맛인 것 같은 너의 음식과
너와 똑같은 고깔모자를 씌워주고는 우렁차게 불러주던 너의 축하 노래
이젠 생일 같은 건 무의미하다 생각했는데, 모두 갖고 싶던 선물세트를 받은 듯 설레고 기뻤어.
그렇게 다시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네 손을 잡고 촛불을 끄던 그 밤이 나는 가장 기뻤어.

널 사랑한 많은 날들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날은 너와 같이 청소를 한 날이었어.
혼자 산지 오래되어. 늘 바쁘다는 핑계로 널어두었던 물건들, 음식들, 빨래들
주말에 그 장면을 본 너는, 어디서 난지 모를 앞치마를 두르고, 손수건을 머리에 메고는 이것저것 정리하기 시작했어. 어쩔 수 없이 너의 손에 끌려 일어났지만, 이곳저곳이 정돈되며 우리가 같이 맥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생기고 이제 조금 아침을 챙겨 먹을 것 같은 반찬들이 생기고, 출근길이 상쾌해질 것 같은 양말과 와이셔츠가 생겼어.
늘 혼자인 게 익숙했던 내가, 어느덧 혼자보단 둘에 더 익숙해진 것 같은 기분에 묘하게 떨렸어.
그렇게 새로 생긴 테이블에서 너와 함께 마주 앉아 맥주 한 잔을 하던 그날이 이상하게 더 행복했어.


널 그리워한 많은 밤들 중에 가장 서글펐던 날은 내가 핸드폰을 바꾼 날이었어.
하루가 너무 무거워 새로운 무언가로, 새로운 공기를 맞고 싶던 그날
핸드폰을 바꾸며, 그 안에 필요한 어플들을 깔기 시작하는데 
그곳에 설정해 두었던 비밀번호, 어쩜 이리 다 너의 생일인지
나의 노력들이 무색해지며, 모든 것들을 다시 내려놓은 채.
 또다시 네가 지나가길 기다렸어.

널 그리워한 많은 밤들 중에 가장 마음이 서걱거렸던 날은 앞이 잘 보이지 않던 눈 내리는 밤이었어.
집으로 가려면, 너의 집을 지나쳐야 했던 우리 집
늘 피해 돌아가던 그 길에 눈이 많이 내려, 신호등도 잘 보이지 않았어.
의식적이었는지 무의식적이었는지 너의 집 앞에 도착했고 불이 꺼져있길 바라며, 
우연히 네가 그 시간에 돌아오길 바라며 그렇게 널 한 번_ 우연히 다시 만나길 바라며
그날은 추운 공기 때문이었는지, 그곳에 있는 동안 마음이 계속해 서걱거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어.



그만하자. 이 한 단어에
기뻤던 기억은 서글픈 추억이 되었고
즐거웠던 공간은 피해 가야 할 공간으로 변해버렸고
행복했던 일들은 서걱거리는 감정으로 뒤덮여 버렸다.
     
누굴 위해 했던 이별이었는지
그래서 지금, 
초연해진 사람은 누구인지 
     
평생 행복하자 했던 우린 
지금 서로 없이도 정말 행복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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