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예술의 미학을 발견하다
이름을 쓰면 40초 후에 죽음을 맞이하는 노트가 있다. ‘데스노트’ 이야기다. 베스트셀러의 일본 만화 ‘데스노트’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데스노트’가 세 번째 시즌을 맞았다. 지난 2015년 초연한 작품은 2017년 재연을 거쳐 약 5년 만에 돌아오는 것으로, 오디컴퍼니가 새로이 제작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작품은 우연히 ‘데스노트’를 주워 악인을 처단하는 천재 고교생 라이토와 그에 맞서는 명탐정 엘(L)의 두뇌 싸움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죽음을 만들어낸다는 판타지스러운 소재를 중심으로, 두 주인공의 심리적 대결이 어우러진 이야기는 극적인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 작곡가로 손꼽히는 프랭크 와일드혼의 트렌디하고 록적인 넘버가 더해져 매력을 더한다. 특히 논 레플리카(Non-Replica) 버전으로 선보이는 이번 시즌은 한국 뮤지컬 영상 발전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넘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함을 자랑한다. 그동안 대형 뮤지컬은 물론 중소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에 참여한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는 ‘데스노트’에서 무대, 조명, 영상, 소품 등을 총괄하는 디자인 디렉터로 활약하며 무대 위 모든 시각적인 특별함을 탄생시켰다.
공연은 무대와 객석 전체가 시침과 분침 영상으로 가득 차 째깍거리는 소리로 시작된다. ‘데스노트’에 이름이 적힌 사람은 40초 후에 죽는다는 설정에서 시작된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무대 전체를 관통하게 된다. 여기에 날카로운 직선으로 중심으로 디자인된 그래픽 영상은 음악과 장면의 변화에 맞춰 공간과 시간을 다양하게 구성한다. 특정한 무대 세트 대신 경사진 바닥, 벽면, 천장까지 3면으로 구성된 디스플레이는 순식간에 장면을 완성해내며 마치 애니메이션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오디컴퍼니 측에 따르면 해당 디스플레이는 3mm LED 1,380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초고화질 레이저 프로젝트가 총 3대 설치되어 영상을 투사해 빛과 조명의 명암, 공간을 구성하는 대도구와 상, 하수 총 8톤의 조명타워 오토메이션 전환이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입체적인 무대를 표현하고 공간 제약의 한계를 넘는 동시에 가상 공간과 현실 세계를 아우르는 영상미를 전한다는 것이다. 또 일반 대극장 공연의 약 4배에 이르는 400회 이상의 큐사인도 더해졌다.
라이토와 엘(L)이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두뇌게임을 벌이는 장면이나 테니스 게임을 소재로 심리전을 펼치는 장면, 사신 류크와 렘이 등장하며 데스노트를 인간 세계로 떨어트리는 장면 등은 각 공간의 차별화된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탄생시키며 영상 기술의 놀라움을 느낄 수 있다. 오필영 디자인 디렉터는 “‘데스노트’의 디자인은 인간과 신의 관계에 집중하여 시작되었으며, ‘선(획)’이 가진 정서의 증폭을 통해 초현실성을 표현하고 공간감을 확장했다. 다양한 관점의 혼재와 착시 표현을 활용해 유희적으로 감각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죽음을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작품 전체의 날카로운 초침 소리, 선을 기준으로 명백하게 대립되는 어둠과 빛은 독특한 분위기를 탄생시킨다. 특별한 무대 세트가 없는 대신 영상과 조명으로 채워진 무대와 순식간에 교체되는 소품 등은 마치 애니메이션의 컷과 컷이 이어지는 오묘한 매력을 전한다. 입체적인 캐릭터들의 향연도 큰 인상을 남긴다. 후반부로 갈수록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라이토, 천재적인 능력을 지녔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된 엘(L), 인간을 마치 장난감처럼 지켜보는 사신 류크 등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토리를 완성시키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12권 분량의 만화책을 뮤지컬로 압축하며 원작의 스토리를 간결하게 정리하며 효과적으로 무대화를 선보였지만, 렘의 미사를 향한 애정이나 엘(L)이 라이토를 의심하게 되는 과정 등 생략된 부분은 작품의 유일한 아쉬움이다.
무엇보다 ‘데스노트’는 화려한 캐스팅으로 개막 전부터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데스노트’를 주운 후 자신만의 정의를 찾아 신이 되려하며, 사람들에게 ‘키라’라는 칭호를 받는 야가미 라이토 역에 홍광호와 고은성이 열연한다. 세계 최고의 명탐정이자 ‘키라’와의 싸움에 자신의 모든 걸 거는 엘(L) 역으로 김준수와 김성철이 캐스팅됐다. 미사 곁에 있는 여자 사신 렘 역에 김선영, 장은아가, 라이토 곁에 있는 남자 사신 류크 역에 강홍석, 서경수가 무대에 오른다. 이외에도 케이, 장민제, 서범석 등이 출연한다. 오는 6월 26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 온라인 연예매체 <뉴스컬쳐>에 기고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