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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베르 May 28. 2020

여행으로 삶이 바뀐 작곡가

19세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헝가리 지배에 반기를 들었다가 혁명에 실패한 이들이 헝가리를 떠나 항구도시인 북독일 함부르크로 몰려들었다. 그래서 함부르크에서는 헝가리 출신 예술가들의 무대를 만날 기회가 많았다. 망명자로 떠돌던 헝가리계 바이올리니스트 에두아르드 레메니(Eduard Remenyi, 1828-1898)의 연주회가 1852년 함부르크에서 열렸고 관객석에는 열아홉 살의 수줍은 미소년, 요하네스 브람스가 앉아있었다. 그는 당시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생계를 위해 이곳저곳에서 피아노를 치며 바흐와 베토벤의 음악을 독학으로 연구하고 있었다. 우연히 레메니의 연주를 보러 갔던 브람스는 그의 매혹적인 선율에 매료되었고 그다음 해 봄부터 그와 함께 연주 여행을 떠나는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잡는다. 내성적이고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리던 그가 이 여행을 통해 인생의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먼저 하노버에서 앞으로 음악적 교감을 나누는 친구가 될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Joseph Joachim, 1831-1907)을 만난다. 또한, 요아힘을 통해 바이마르에서 리스트를 만나고 뒤셀도르프에서 슈만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이렇게 브람스의 연주 여행은 사뭇 계획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슈만의 집 문턱에 들어서는 순간, 브람스는 직감했을까? 그의 인생에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브람스가 슈만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브람스 삶에만 새로운 빛이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슈만의 집은 그의 정신병이 심해지면서 침울한 기운이 감돌았을 때였다. 스무 살 브람스는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1악장을 슈만 앞에서 연주했고 슈만은 그의 연주를 급히 멈추게 한 뒤 서둘러 클라라를 불러왔다. 슈만 부부는 브람스의 음악에 빠져서 한 곡이 끝나면 바로 그다음 곡을 재촉하며 그의 음악이 이어질수록 더욱 큰 감탄을 쏟아냈다. 슈만은 ‘내가 기다리고 찾던 바로 그 사람이다.’라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고 브람스는 그의 극찬에 큰 힘을 얻는다.

브람스 효과는 절필을 선언하지 10년이나 된 슈만의 정신을 또렷하게 만들고 놓았던 펜을 다시 들어 글을 쓰게 했다. <음악신보>에는 ‘새로운 길’이라는 제목으로 브람스에 대한 대서특필이 실리고 브람스의 이름이 유럽 곳곳에 알려졌다. 브람스에 대한 글을 쓰고 나서 곧 다시 병세가 짙어진 슈만은 병원에서 입원하며 지내다 3년 뒤 생을 마감했고 이후 생계를 위해 연주 활동으로 바쁜 클라라를 돕기 위해 브람스는 그녀의 일곱 아이를 돌봤다. 브람스는 클라라의 음악적 견해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작품의 초안을 먼저 클라라에게 보여줬고 그녀의 의견을 듣고 나서 초연을 하고 출판을 했다. 이렇게 서로 의지하는 관계인 둘은 클라라가 브람스와의 친분을 친구로 선을 그었기에 그 이상으로 발전하지는 않았고 평생 음악과 삶을 나누며 우정을 쌓는 관계로 남았다.      


슈만의 집에서 여러 동료 음악가들을 만나는 경험과 클라라의 조언을 통해 음악적 성숙을 이뤄가던 브람스는 1860년부터 빈으로 이주해 작곡가로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바로크와 고전 시대의 음악적 뿌리를 강조했던 그는 자유로운 표현을 위해 형식을 파괴해가는 낭만 시대의 음악적 흐름에도 불구하고 더욱 견고한 고전주의적 형식미를 추구했다. 대위법과 변주를 통한 그의 작곡 기법은 잘 쌓아 올린 다각적인 건축물처럼 촘촘한 음악적인 틀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고전적인 형식미 안에 헤미올라(3박 계통의 곡에서 나타나는 2박의 폴리 리듬), 싱코페이션, 교차 리듬과 같은 독특한 리듬의 움직임과 이명동음(도#=레b)을 통한 화성의 변화와 잦은 전조를 통해 명확하면서도 베일에 싸인 것 같은 음악을 창조했다. 그의 음악은 밀도 높은 진지함과 부드러운 온화함이 공존하며 입체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브람스의 음악은 장엄하고 경건한 독일 레퀴엠에서부터 자유롭고 이국적인 헝가리 집시 음악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져 있다. 독일적인 음악을 잘 담아내면서도 이국적인 선율과 리듬을 사랑한 작곡가였다. 자기비판이 강해서 많은 작품을 출판 전에 찢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다작의 대명사인 슈베르트와 버금가게 많은 작품을 남겼다.

4개의 교향곡과 독일 레퀴엠과 같은 큰 규모의 진지한 대작도 그를 유명하게 했지만, 대중적인 친밀감과 온화한 서정성을 보이는 가곡과 실내악 영역에서 브람스의 진가가 드러난다. 특히 두 장르의 작품은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탄생한 곡이 많았다. 예를 들면 그의 가곡 <내 사랑은 초록빛(Meine Liebe ist grün)>은 클라라의 일곱 번째 아들인 펠릭스 슈만(Felix Schumann)의 건강을 응원하며 펠릭스가 쓴 시를 사용해 만들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자장가(Wiegenlied)>는 그가 고향 함부르크에서 합창 지휘자로 있을 때 합창단원 베르타 파버((Bertha Faber)의 출산을 축하하며 만든 곡이다. 또한, 요하임의 가족을 위해 지은 알토와 비올라, 피아노를 위한 두 개의 노래가 있다. <포용적인 갈망(Gestillte Sehnsucht)>과 <종교적인 자장가(Geistliches Wiegenlied)>는 성악가인 요아힘의 아내 아말리에(Amalie Joachim)와 요아힘이 함께 연주할 수 있게 작곡한 곡이다. 친밀한 관계를 통해 작곡된 음악은 다양한 편성의 가곡을 남겼다.

친밀한 관계에서 이런 곡들이 나왔다면, 그의 클라리넷 실내악 작품들은 처음 듣는 이의 연주로 인해 탄생했다. 브람스가 57세 때 가까운 이들이 세상을 떠나고 창작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것을 느끼며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 그때 우연히 방문했던 마이닝겐 궁정관현악단의 연주회에서 클라리네티스트 리하르트 뮐펠트(Richart Muhlfeld, 1856-1907)의 연주를 듣고 사라졌던 작곡 열망이 되살아난다. 브람스가 슈만의 정신을 깨웠듯, 뮐펠트의 클라리넷 소리는 브람스의 정신을 깨우고 그의 말년에 주옥같은 클라리넷 오중주, 클라리넷 삼중주, 그리고 1894년 최후의 실내악 작품인 두 곡의 클라리넷 소나타를 작곡한다. 모차르트처럼 클라리넷 소리를 사랑했던 브람스는 클라리넷을 ‘클라리넷 아가씨(Fraulein Klarinette)’라고 애칭 하며 악기 특유의 슬픔이 배어있으면서도 온화한 음색을 그의 음악에 녹여냈다.           


슈만의 음악이 다양한 이야기들이 주는 호기심과 뉘앙스를 담은 음악이라면 브람스는 특정한 묘사나 이야기를 배제하고 ‘음악은 그저 음악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는 절대음악을 강조했다. 그래서 오페라나 교향시는 전혀 쓰지 않았고 가곡에서도 슈베르트나 슈만이 가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시와 음악의 결합을 통해 예술성을 이루려 했던 것에 반해 선율의 아름다움, 민속적인 분위기와 리듬, 내면적 감정의 전달을 중시했다. 신기한 것은 그런 그의 절대음악이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아 다양한 이야기를 낳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브람스와 클라라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의 음악 자체가 양파와 같이 알면 알수록 독특한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제목에서 사용된 말 줄임표처럼 그의 음악은 말 줄임표 속의 수많은 단어와 그 단어 속 복잡 미묘한 심중을 숨겨놓은 음악이라 할 수 있다. 고전적인 형식미와 아름다운 선율의 뼈대 안에 중후함, 진함, 고뇌, 고독, 경외, 따뜻함, 부드러움, 행복 등의 다양한 정서가 깊게 깔려있다. 그의 음악 안에 있는 깊은 감정이 사람들에게 사색의 걸음을 이끌고 공감과 위로의 손짓을 보낸다. 그래서 계절 중에 ‘가을’ 하면 브람스가 떠오르게 되는 것 같다. 뉘엿뉘엿 쓸쓸해져 가는 가을에 여문 단풍을 보며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듯 그의 음악은 투박해 보이지만 촉감이 부드러운 이불이 되어 마음을 여밀 수 있게 한다. 또한, 서둘러 빨리 가라고 재촉하지 않으면서 우리들의 걸음을 동행해 준다. 마치 잔디와 낙엽을 밟으며 걸어가는 것처럼.


브람스의 인생의 걸음이 예상치 못한 여행으로 시작하여 인생의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고 마음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밀도 있게 담아낸 것 같이 그의 음악이 이끄는 사색의 걸음이 우리의 삶을 사랑의 마음이 있는 곳으로 향하게 할 것이다. 클라라와 사랑의 관계가 이루어질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브람스처럼 우리 마음대로만 흘러가는 인생은 아니지만, 삶 그 자체로 우리는 노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의 음악의 양면성처럼 무뚝뚝하고 냉소적으로 보이는 세상의 이면에는 온화한 바람이 오늘도 살랑이며 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https://youtu.be/1Fwk6yXrr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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