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다 May 29. 2016

쓸모있는 존재

 한 동안 글을 쓰지 않은건 생활이 많이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일을 한다. 돈을 번다. 정신없이 바쁘다. 생각할 시간이 없다보니 내 속으로 깊게 파고드는 일도 많이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글을 쓰는 이유는 내 구독자가 한 명 늘었기 때문이지. 글을 쓰려고 종종 생각을 하지만 자주 귀찮다. 앨범 리뷰를 해볼까, 디자인 이야기를 해볼까 아니면 자주보는 미드 이야기라도 끄적거려볼까 하지만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쓰이기는 나에 대한 글쓰기이다. 아무도 보지 않겠지만 뭐 어때. 나를 위한 글쓰기는 자기위안적인 측면이 크다. 어디 구석에서라도 큰 소리로 내가 힘들다! 소리치고 나면 아무도 반응하지 않아도 마음이 낫다.


 사는 건 참 모를일이다. 나는 요즘 스타트업에서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린다. 야근이 많지만 일을 안하는 것보다는 좋다. 내가 쓸모있는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월급날이 되면 더 기분이 좋겠지. 일단 아이패드 프로를 살 것이다. 그런데 돈을 버니까 돈 때문에 싸우는 일이 생긴다. 얼마 전에는 펑펑 울었다. 내가 돈을 그렇게 힘들게 벌었는데 엄마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비를 요구했다. 50만원만 주겠다고 말하는 내가 너무나도 한심스러우면서도 또 힘들게 번 돈을 저축 한푼 못하고 내놔야하는 현실이 억울했다. 나는 근 3주 동안 쉬지를 못했다. 야근하고 집에 들어와 10시부터 또 부업을 하고 2시에나 잠들었다. 주말도 없었다. 몸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을 정도가 되어서야 마감날이 되었다. 돈을 얼마를 보태도 난 불효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날은 이불에 얼굴을 묻고 울고 또 울었다. 아 모르겠다. 또 생각해보면 난 독촉전화가 올 때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빚을 메꿨다. 그런데 그깟 몇십만원이 뭐라고 이렇게 아까워 하는 걸까.  도대체 그 따위 돈이 뭐길래 내가 이렇게까지 비참해져야 하는 걸까. 내가 혐오스러웠다가도 불쌍했다가도 또 죽어 없어지고 싶기도 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이 거지같은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이 쥐꼬리만한 스타트업 월급으로는 요원하다. 다시 또 우울한 글을 쓰고 있네. 그만해야겠다.


 생산적인 삶을 한동안 살았다. 그게 3주가 넘어가니 다시 무기력해진다. 줄 끊어진 인형마냥 어제는 잠만 계속 잤다. 해야할 일이 산더미인데 계속 도피하고만 있다. 이제는 다시 삶으로 돌아가야지. 쓸모있는 사람이 다시 되어야지. 난 그래서 출근이 차라리 좋다. 이런 거지같은 생각을 안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내일이 되면 다시 피곤과 짜증에 취해 몽롱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또 살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자기연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