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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선미 Nov 23. 2018

네 개의 뾰

유강희, <봄>

유강희



뾰뾰뾰 뾰뾰뾰뾰 

뾰뾰뾰 뾰뾰뾰뾰 

뾰뾰뾰, 뾰뾰뾰뾰뾰 


⟪손바닥 동시⟫(창비 2018)ᅠ



“뾰”라는 글자는 ‘봄’이라는 글자를 닮았습니다. “뾰”는 ‘봄’이 땅속에서 쏘옥 고개를 내미는 글자입니다. 마치 새싹처럼요. 그래서 ‘보’까지는 보이지만 ‘ㅁ’은 땅속에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 저기 온통 봄들이 빠꼼빠꼼 고개를 내밀고 있어서 ‘보보보’ 봄은 ‘뾰뾰뾰, 뾰뾰뾰뾰’ 뿀뿀뿀뿀 봄봄봄봄의 모습입니다. 봄 뾰 봄 뾰. 


그리고 우리는 온 세상을 점령한 봄을 (시 덕분에) 시각적으로 봅니다. 온 세상을 점령한 연두 광복군 봄님들을 봄. “뾰”라는 글자는 부드러운 뾰족의 새싹을 닮았습니다. 온몸으로 겨울을 건너온 검은 나목들은 병아리 혓바닥만한 연하디 연한 연두 새싹들을 제 가지 가득 네롱 네롱 밀어 올립니다.


그리고 또 “뾰”는, 노랑 병아리들 소리를 닮았습니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뾰뾰뾰뾰 울어대는 노랑 병아리들. 그래서 “뾰” 소리에는 울고 있는 노랑 병아리, 그 주둥이를 닮은 노란 개나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뾰는 제가 사는 충주 호암지 아기 오리들을 소리를 닮았습니다. 그런데 뾰_뾰뾰뾰뾰뾰뾰 울고 있던 아기 오리 식구들은 여름이 되자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어른 오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많던 오리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뾰뾰뾰 울며 내 꿈속까지 찾아왔던 아기 오리들. 부디 어른 오리가 되어 지금 이 시간 어디라도 좋으니 부디 생존+성장하여 계시기를 빌어 봅니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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