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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선미 Nov 23. 2018

송현섭을 따라가면

송현섭, <개미 떼를 따라가면>

개미 떼를 따라가면

송현섭



개미 떼를 따라가면

죽어가는 풍뎅이가 나와요.


개미 떼를 따라가면

비틀비틀 취한 나비가 나와요.


개미 떼를 따라가면

쫀득쫀득 말라 버린 지렁이가 나와요.


개미 떼를 따라가면

입이 더러운 병이, 병 속에서 우는 파리들이 나와요.


개미 떼를 따라가면

눈도 없고 날개도 없는 까만 새가 나와요.


개미 떼를 따라가면

개미 떼를 따라가면, 세상은 깨진 유리창 같아요.


⟪착한 마녀의 일기⟫(문학동네 2018)



죽어가는 풍뎅이, 비틀비틀 취한 나비, 쫀득쫀득 말라 버린 지렁이, 입이 더러운 병, 병 속에서 우는 파리, 눈도 날개도 없는 까만 새. 송현섭을 따라가면 깨진 유리창이, 죽음이, 죽음이 드리우는 그늘진 곳이 보입니다. 이가 두 개만 남은 외할아버지가 “아, 그놈들 할아버지가 ●●●●단다”라고 말할 때, 암탉이 “머리와 깃털을 장난감으로 써도 돼.”라고 말할 때, 우리는 잠시 고민에 빠집니다. 송현섭의 시를 내 작은 아이들에게 줄 수 있을까요. 분명히 송현섭의 시는 불편합니다. 그러나 말을 바꾸어 생각해 봅니다. 송현섭의 시는 어른인 나에겐 어떠한가. 송현섭의 시는 매력적입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주인공의 승리로 끝나는 만화영화들과 명작동화들이 불만스러웠습니다. 이건 너무 뻔하지 않나. 보나마나 이길텐데 뭐. 나를 떨리게 하는 이야기는 4차원의 세계나 푸른 수염의 아내, 라푼첼의 무서운 긴 머리, 헨젤과 그레텔을 삶으려는 마녀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주는’ 시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시라면 송현섭의 시는 어떤 시일까요. 나의 몫은 나의 몫으로, 아이들의 몫은 아이들의 몫은 아이들의 몫으로 남기는 것은 어떨까요. 송현섭의 시는 분명 매력적입니다. 불편하므로, 우리를 골몰하게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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