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응, <정자나무>+장철문, <나무 안으러 갔다>
권태응
동네 복판에
아람드리 느티나무.
언제나 가면 땀 들이는
사람이 있다.
소나기가 와도 새지 않는다.
그 옛날 누가 심었는지
아모도 모르는 정자나무.
먼 들판에서도
젤 잘 보인다.
까치집도 세 개나 있다.
*땀 들이는: 땀을 식히는.
⟪권태응 전집⟫(창비 2018)
저는 ‘정자나무’가 정자(경치가 좋은 곳에 놀거나 쉬기 위하여 지은 집. 벽이 없이 기둥과 지붕만 있다.) 근처에 있어서 정자나무인 줄 알았어요. ‘정자나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집 근처나 길가에 있는 큰 나무.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하여 그 그늘 밑에서 사람들이 모여 놀거나 쉰다.’라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정자나무는 단순히 정자 근처에 있어서 정자나무가 아니라 사람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함께 사는 큰 나무였습니다. 정자나무는 100년도 채 못 사는 사람보다 오래 사니, 그 마을 사람들이 나고 죽고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늘 그곳에 서 있었겠습니다.ᅠ제가 사는 충주 호암지에도 오래된 정자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무도 느티나무인데요, 저는 그 나무를 ‘내나무’라고 제 맘대로 정해버렸어요. (성이 ‘내’고 이름이 ‘나무’라고 우겨봅니다.) '내나무'는 내 나무, 하지만 이름이 '내나무'라서, 내나무를 부르는 모든 사람의 '내 나무'가 되지요. 늦가을이 되면 내나무 근방은 내나무가 떨어뜨린 낙엽들로 가득합니다. 그제서야 내나무 속에 숨어 있던 까치집도 드러나고요. 내나무에도 까지집이 세 개나 있습니다.
올해(2018년)는 권태응 선생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를 기념해서 제2회 전국동시인대회도 열렸었지요. “그 옛날 누가 심었는지/ 아모도 모르는 정자나무”가 권태응 선생님 생가 근처에 있었는데요, 올해 무식한 사람들이 베어 버렸습니다. 그 나무를 제1회 전국 동시인 대회(2015년) 때 장철문 시인과 백우선 시인과 김금래 시인과 김올 시인이 안아주었었는데요, 넷이서 안아도 다 못 안을 만큼 품이 넓은 아름드리 나무였어요. 장철문 시인은 그날을 <나무 안으러 갔다>에 담았습니다. 그날의 시는 지금도 남아 있는데, 더이상 그 나무는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베어버리지 않았다면, 정자나무는 우리가 죽고도 한참을 더 살았을 겁니다.
나무 안으러 갔다
장철문
금래랑 우선이랑 올이랑
나무 안으러 갔다
콩밭 두렁으로 내려가서
배추밭 질러
나무 안으러 갔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도
그만 했고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도
그만 했다는
동구나무 안으러 갔다
올이랑 우선이랑 금래랑
넷이서 안아도
다 못 안고 왔다
*동구나무: 집 근처나 길가에 있는 크고 오래된 나무.
⟪전봇대는 혼자다⟫(사계절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