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아빠들처럼 내 아버지도 딸들을 무척 사랑했다. 무능했지만 다정했고, 어리숙했지만 섬세했다.
아빠와 함께한 기억 중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다.
아빠는 IMF때 다니던 은행에서 퇴사하고 2년 여간 주식투자를 하고 지냈다. 그게 내가 중3~고2 정도의 시기다. 엄마는 보험회사에서 무척 잘 나가 승승장구 하고 있었기 때문에 늘 바빴다. 그 사이 아빠가 주식으로 많은 돈을 잃었다고 한다. 엄마 말에 따르면 '퇴직금 전체를 날렸다'는데 그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는 팩트 체크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큰 실패를 맛본 아빠는 엄마에게 크게 혼나고(완화한 표현이다) 다른 살 궁리를 찾기 시작했는게 그게 공인중개사 시험이었다.
아빠는 매일 아침 차로 나를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혼자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앞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학교가 끝나면 고3인 나를 데리고 오라는 엄마의 '어명' 때문에 그 좋아하는 술도 마시지 못하고 강제로 집에 와야 했고 나름 규칙적이고 건실한 나날을 이어갔다. 시험은 고3~대학교 1학년까지 2년 정도 준비했는데 대학교 때는 일요일에 아빠와 함께 동네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아빠는 종종 도서관 책상에 엎드려 자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무척 귀여웠다. 가끔은 화장실 갔다 자리에 돌아왔을 때 자리에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삼각형 팩에 담긴 커피 우유가 놓여져 있곤 했다. 그러면 어떤 남학생이 나에게 커피우유를 준 건 아닐까 두리번 거릴법도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커피우유는 고등학교 때부터 아빠가 나에게 매일 아침 사 주던 '최애 간식'이었으니까. (아빠는 내가 차에서 내릴 때마다 2천원을 주며 커피우유를 사 먹으라고 말했다. 그 돈은 사실 다 엄마건데. ㅎㅎ)
그렇게 아빠는 2년 만에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했다. 작년에 '나도 공인중개사 자격증이나 따 볼까' 하며 서점에서 책을 펼쳐봤다가 깜짝 놀랐다.
이거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시험이잖아? 이걸 아빠는 마흔 중반에 합격했다니? 생각보다 우리 아빠가 무척 똑똑했는걸?
아빠가 무척 똑똑한 사람이라는 건 엄마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아빠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졸업한 '부산상고' 출신인데 부산 사람들은 부산상고를 '가난한 사람들이 다니는 최고의 명문고'라고 말한다. 아빠는 이 학교에서도 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고 아빠 친구 분들께서도 종종 말씀하신다. 아빠는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한일은행(현 우리은행)에 다니면서 엄마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했는데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이게 무척 잘 한 '자식 농사'였다고 한다. 요즘 엄마들은 '공부도 재능'이라고 말하는데 공부를 해 좋은 성적을 내는 건 아빠가 가장 잘 하는 일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