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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사이 Nov 30. 2017

절망은 덜고 희망을 더하다

    

'이제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큰소리로 외치면
흐릿하게 눈물 너머 이제야 잡힐 듯 다가오는
희망을 느끼지'
                                         - 故 신해철의 노래 <Hope> 中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자책과 죄책감에 몸부림 치며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고 공포와 불안감에 휩싸여 지내던.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다..어떻게든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이런 생각에만 묶여 나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다. 극단적인 생각도 해보고 쌓인 분노를 아무렇게나 분출해댔다. 원망스러운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얼굴은 점점 잿빛이 되어갔다.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 다시는 일어설 수 없으리라 생각했을 때, 내 손을 잡아준 친구가 있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꾹꾹 눌러 담아 곪을 대로 곪은 상처를, 눈물로 얼룩진 내 마음을 곁에 있는 한 친구에게 체념하듯 내보였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었고, 못나고 부정적인 말들만 내뱉은 나에게 동정이 아닌, 애정과 믿음이 담긴 위로와 걱정의 말로 헤진 내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몰랐어. 근데 그건 네 잘못이 아닌 걸.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지 마. 많이 힘들었겠다. 내 친구. 네가 생각한 나쁜 결과는 일어나지 않을 거야. 정말 그렇게 되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자. 지금은 어떻게든 잘 버텨내고 이겨내는 것만 생각해. 알았지?'


그녀의 경청과 든든한 위로의 한 마디가 그 당시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래, 지금보다 더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미리 겁먹을 거 뭐 있어! 언제 어떻게 되든 지금 이 순간은 씩씩하게 살아보자.'


더이상 잃을 것도 바랄 것도 없다고 생각했을 때 희망의 기회도 함께 찾아온다. 하지만 절망에 빠져 있을 때는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보지도 못하고 잡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절망의 순간에 내뱉는 '죽고싶다'라는 말은 어쩌면 '살고싶다'의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간절한 외침을 누군가가 들어주었으면 하는.

맞닥뜨리게 되는 불의의 사건들이 너무 가혹해서 도무지 버텨낼 수 없게 만들기도 하지만 실낱같은 희망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후회는 하더라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다시 살아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포기의 순간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삶에 조금 더 용기 내볼 수 있지 않을까.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털고 일어나야겠다는 의지만큼은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인생에서만큼은 어느 누구도 아닌 내 자신이 '주인공'이니까. 충분히 빛을 향해 나아갈 만한 존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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