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풀잎 May 19. 2023

책을 버리느냐 책장을 사느냐

내겐 물건들이 너무 많다

옷을 버리느냐 옷장을 사느냐

물건을 버리느냐 수납장을 사느냐


지난달 브라질에서 이삿짐이 온 후

내 머릿속을 떠다니는 질문이다.



브라질의 집들은 대체로 넓고, 수납장이 워낙 많아서 모든 물건을 보이지 않게 가려놓고 사는 게 가능했다.


그래서 몰랐다.

그간 내 짐이 이렇게나 많이 늘어난 것을.



브라질에서 이삿짐을 기 전 나는 진짜 열심히 물건들을 버리고 팔고 나눠주었다. 특히 우리나라에 오면 버려지고 말 옷과 이불, 그릇, 낡은 가전 같은 것들을 브라질 도우미 아주머니께 드리면 기뻐하며 가져가시기 때문에... 이사 6개월 전부터 미리미리 열심히 비워서 아주머니께 드렸다. 그러고도 이삿날 아주머니가 가져가신 커다란 쇼핑백이 10개가 넘었다.


그런데..

이삿날 끊임없이 들어오는 박스들의 행렬에 우리 부부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이삿짐 아저씨들이 거실에 꽉 차게 물건들을 늘어놓고 가셨다.

아무 데도 넣을 곳이 없다고...

책들은 책장 앞에 산더미,

옷은 침대 위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가셨다.




그날 잠은 자야겠어서 결국 침대 위 옷들을 다른 곳에 고스란히 내려놓고 잤다는...


정리를 하다 보니 먼저 잔짐이 마음에 걸렸다.

잔짐...

당장 필요하지 않으나 언제 필요할지 모르는 물건들.

혹은 다시 펼쳐볼지 안 볼지 모르는 추억의 물건들.


나는 어릴 때부터 무언갈 모으는 걸 좋아하고 도무지 버릴 줄을 몰랐다.

나이를 먹을수록 버리는 건 없으면서 사는 건 많다 보니 결국이지경이다.

그간 차마 버리지 못했던 것들을 이번엔 버릴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때 열심히 썼던 일기장들을 버렸고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버렸다.

내 글이 실린 학교 문집들을 버리고,

영화를 좋아해서 매번 영화 볼 때마다 스크랩했던 영화 포스터와 티켓을 버렸다.

(그런 것을 아직 갖고 있었냐고 제발 말하지 말아 주세요)


물건을 버릴 때 이것을 다시 볼 가능성이 있는가? 생각하고 버릴지 말지 결정하라던데

다시 볼 가능성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차마 버릴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여행 다니면서 모은 티켓들과 팸플릿은 아직 못 버렸다.

부부의 초중고대 졸업앨범도 다시 넣었다.

고이 박스에 넣어 다시 침대 밑으로 들어간 나의 잔짐들이여.

다음 기회엔 버릴 수 있을까.


잔짐은 그렇다 치고 진짜 문제는 책들이었다.

브라질 갈 때 책장을 하나 버렸었는데 그 때문인지 책을 꽂을 곳이 현저히 부족했다.

그간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은 언젠가 읽을 거라서 못 버렸는데, 이제 그런 것을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우리 세 식구 중 누구도 읽을 가능성도 없고, 읽을 의사도 없는 책들을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았다. 그나마도 거기서 받아주면 다행이었다. 불가능한 책들도 많았다. 받아준다는 책을 고이고이 싸서 20권씩 3박스를 보냈다. 그중 몇 권은 버려지고, 결국 한 6만 원 정도를 받았다.

그래도 책이 버려지지 않고 누군가 다시 읽어준다니 다행이랄까.


책장에 책을 겹쳐 꽂거나 책 위에 책을 또 얹지 않아도 되게 꽂으려면....


책을 버려야 하는 것일까.
책장을 사야 하는 것일까.


옷장도 마찬가지다.

옷이 꺼내 입기 힘들 정도로 빽빽이 꽂혀있다.

이나마도 한국에 와서 또 한바탕 옷을 버린 결과다.

브라질에서 버릴까 말까 고민했던 옷들을 오자마자 다 버렸다.

버리고 올걸. 이렇게 사람이 구석까지 몰려봐야 행동하게 된다.

그런데도 옷장이 꽉 차서 열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한국은 왜 사계절이 있어가지고...

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에 사계절이 있음이 우리의 자부심이었던 것 같은데 ㅋㅋㅋㅋ


계절별 옷을 옷장에 넣었다 뺐다 정리하는 거 너무 힘들고 귀찮다.

브라질에선 여름옷만 걸어놓고 가끔 추운 날 입을 도톰한 옷 몇 벌이면 다 해결이어서 편했는데.



이삿짐 오기 전이 딱 좋았다.

컵 6개와 밥그릇 국그릇 각 3개, 접시 3개로 살던 시절.

설거지도 많지 않아 좋았고,

공간이 남아돌아 좋았다.


쌓여있는 짐들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 물건들의 가짓수를 세면 과연 몇 개일까.

나는 왜 필요치 않는 이 많은 물건들을 이고 지고 사는 것일까.

옷장에 꽉 끼어 잘 빠지지도 않는 옷들은 심지어 잘 입지도 않는다.

이민가방에 당장 입을 옷들 가져온 걸로 돌려 입으니 충분해서 말이다.


숨 막히게 많은 물건들과 작별하고 싶다. 미니멀리스트를 실천하는 분들이 정말 존경스럽다.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는 맥시멀리스트.

언젠가 나도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딸 너는 누구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