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빨치산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해서 너무 무거운 이야기가 아닐까 했는데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가 담긴,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고 있는 소설이었다.
정지아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이 소설은
빨치산으로 활동하고 난 후,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아버지의 이야기를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듣게 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빨치산의 딸 아리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3일간 보고 듣고 느낀 것의 보고인 셈.
우리나라에서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한 남자의 인생
그가 추구했던 사람됨, 그리고 그 실천을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볼 수 있었다.
그가 빨갱이여서,
그의 아버지도 죽고,
동생과도 척을 지고,
조카는 육사에 떨어지고,
훌륭한 사윗감 앞길을 막을 수 없어 놓치고....
너무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그런 그여서,
자신보단 민중이 더 중한 사람이어서
지나가는 객을 거리낌 없이 재워주고,
그가 마늘을 훔쳐가도 오죽하면 그랬겠냐 하고,
불쌍한 사람 보증 서서 평생을 고생했으나 오죽하면 그랬겠냐 하고,
다른 사람 억울한 일 해결 해주느라 자신이 손해 봐도 좋다고 하고,
사는 게 힘겨운 고등학생과 맞담배를 피우며 아이의 미래를 같이 고민해 주고,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친구와 평생을 함께하며 다정하게 지낼 수 있었다.
어릴 땐 아버지가 마냥 좋았던 아리는
아버지의 감옥살이로 아버지랑 어색한 사이가 되고,
이후 빨치산의 딸로 사는 것이 짐이라 아버지로부터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그리고 이렇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마주하게 되는 아버지의 본모습.
딸이 모르던 아버지의 모습들.
그래서 결국 그에게 아버지는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로 남는다.
세상이 손가락질한,
경찰이랑 친구 먹을 정도로 자주 만난,
평생을 감시당하면서 살아온,
빨치산 아버지.
그래서 같은 빨치산 동료들로부터 혹은 그의 자식들로부터
인정도 받고, 추모도 받고, 존경도 받는 아버지.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떠나
그는 그저
아리, 그의 아버지였음을.
아버지는 죽음으로써 비로소 '빨치산'이라는 이름으로부터
그 호와 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신분으로부터
마침내 해방을 맞는다.
인상적이었던 구절
"상욱아, 너 하염없다는 말이 먼 말인 중 아냐?"
아버지는 말문이 막혔고 박 선생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먹은 소주가 죄 눈물이 되어 나오는 것 같았다고,
생전 처음 취했던 아버지가 비틀비틀, 내 몸에 기대 걸으며 해준 말이다. /
자기 손으로 형제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을 안고 사는 이에게 하염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 다만 하염없이 남은 인생을 견디고 있을, 만난 적 없는 아버지 친구의 하염없는 인생이 불쑥불쑥 내 삶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곤 했다.
--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하염없다
1. 형용사 시름에 싸여 멍하니 이렇다 할 만한 아무 생각이 없다.
2. 형용사 어떤 행동이나 심리 상태 따위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되는 상태이다.
'하염없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이런 뜻이었다.
떠올리면 힘들어서, 그저 하염없이 소주를 들이켜는 사람들.
힘겨운 시간들을 통과하고도 아무 일 없었던 듯
하염없이 살고 있는
이 소설 속 인물들을 보면서 문득
살아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갖는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