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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경 May 10. 2024

각본이 짜인 것 같은 하루

안식월 후 처음 간 사무실에서 벌어진 일

오전 6시 13분에 집을 나섰다. 마을버스가 13분 후에나 온단다. 걸어야겠군. 횡단보도를 건너 다른 버스를 탄다. 세 정거장. 지하철 역이다. 앉아서 갔다.


신길에서 내릴까 시청에서 내릴까. 코카콜라 맛있어 같은 게임은 하지 않았다. 반팔에 카디건만 입었더니 너무 추워서 신길에서 내려 5호선을 탔다. 지하로 가자. 광화문 하차. 지상으로 올라오는 죽음의 계단을 올라오며 생각한다. 어라? 숨이 안 차네?


안식월을 전후로 달여 동안 PT 했다(15회, 5회 남았다). 효과를 모르겠다가 일주일 전부터 뭔가 차오른 것 같은 기분. 근육이 막 생기진 않았겠지만 뭔가 딴딴은 아니더라도 단단해진 것 같달까. 올해는 꾸준히 근육 운동을 해 볼 생각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근육 '유지'가 간절하다. 더 빠지면 안 돼. 절대 지켜야지. 내 근육(자세한 이야긴 밀린 나의 안식월 이야기에서).


7시 35분 회사 도착. 오전 9시 반 미팅이 있어서 출근길 커피는 거름. 후딱 일을 하고 미팅. 복귀 축하 한다며 내미신 꽃. 어제의 서글픔이 '싹' 가신다. 오다 주운 카네이션 이야기 하며 한바탕 웃고. 기획 이야기 마무리. 기대된다. 쓰기만 하면 되는데 잘 해내시겠지?


11시 반. 내가 쉬는 한 달 동안 고생한 유일한 팀 후배와 삼계탕 먹으러 토속촌으로. 꽤 유명한 곳이다. 타이밍이 좋아서 줄을 서지는 않았다. 가격 20000원. 컥. 그래도 손님은 만석. 삼계탕 좋아한다는 후배는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먹더라는. 그렇게 맛있었니?

날씨는 너무 좋은데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씨라 산책하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지. 캐나다는 못 봤지만 한국에 상륙했다는 팀홀튼 에서 커피를 사서 광화문 광장 보며 후배랑 멍 때리는 시간도 갖고.

5시 퇴근하자마자 출판사 루아크 대표님을 만나 출간계약서 주고받았다. 나는 전자계약서보다 종이계약서가 더 좋더라. 친필 사인이 어쩐지 인간적이야.


세상이 정말 좁다고 다시 느끼는 것이 공저로 출간한 성교육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자 심에스더와 대학 선후배 사이라고. 소름.


출간 계획 러프 하게 듣고 헤어져 심에스더와 오랜만에 통화. 대표님 이야기를 했더니,


"언니! 언니 정말 대단해.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쓸 수 있어. 축하해 언니. 그 오빠(대표님이자 편집자) 내가 잘 아는데 정말 좋은 사람이고 잘 될 거야ㅡ 좋은 책 나오겠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고마워. 에스더... 근데 더 놀라운 게 뭔지 알아?"

"뭔데?"

"본인을 밝히지 않고 너에게 출간 제안했었대. 성교육책. 그런데 이미 출간 계약을 했다고 거절 메일 받았었대ㅡ 너는 전혀 몰랐을 거라면서. 괜히 서로 어색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안 밝혔대."


곧 만나기로 하고 통화 종료.


이게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12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다. 헉헉. 복기하니 각본이 짜인 것 같은 하루다. 뭐 하나 아쉬운 일이 하나도 없네.


퇴근길 지하철. 앉아서 꿀잠을 자고 일어나니 도착. 피로가 풀린 기분. 그래서 오늘 못 쓸 것 같은 글을 또 하나 마무리 해 본다. 요즘 왜 이렇게 열심히 쓰는지 나도 이유가 궁금한데... 이 문장 때문인 것 같다.


"에세이스트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일상에서 독자가 읽을 만한 재료를 꾸준히 찾으며 산다는 뜻이다."


"삶에 대한 거시적인 해답은 현자들이 많이 주었겠지만 당장 하루치 일상에 대한 힌트는 나와 비슷한 환경에 처한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다."


"일과 상관없더라도 고유한 스타일을 담아 드러낼 수 있는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 내는 것. 대체불가능한 나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은 지속적인 일감을 보장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박초롱 지음

<우리 업은 미래형이라서요> 중에서.


그러니까...

나 이런 글도 써요, 라고 말하고 싶어서랄까.

서평을 쓸 때는 처음 한 번 읽고, 두 번째 적으면서 읽고, 세 번째 글 쓰면서 내용 다시 확인하며 읽었다. 서평은 제대로 읽는 게 제일 중요해서 여러 번 읽는다. 그래서 힘들다.

안식월 하면서 대대적인 집정리를 했다. 여기저기 써둔 메모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책을 읽으면서 마인드맵처럼 정리한 걸 다시 읽는 즐거움이 컸다. 그 이야긴 밀린 '나의 안식월 이야기'에서 다시 하련다. 모두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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