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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경 Oct 06. 2024

글을 열심히 만지자

[독자에게 물었어] 한겨레신문 고경태 기자가 본 <이런 제목 어때요?>

안녕.

오랜만이야. 특별기획이 끝났다고 생각할까 잊히기 전에 돌아왔어.

'뜨거운' 가을에 시작한 글인데 지금은 '서늘한' 가을.

다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

나는 매일 아침마다 폭풍 재채기가 시작되었어. 환절기 통과의례라고나 할까.


또 <흑백요리사>를 재밌게 보고 있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최고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요리로 싸우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게 많아. 특히 에드워드 리의 말은 한마디 한 마디가 어록이더라. 볼 때마다 저분을 좀 더 깊이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겨.


이 기분 나도 알 것 같아. 

안성재 심사위원도 흥미롭더라. 그리고 우연히 사진이 담긴 영상을 보게 되었어. 모수(안성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가 미슐랭 3 스타 받던 날의 모습이래. 흥분하는 모습이나 호들갑 이런 건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그간의 시간을 담담히 돌아보는 것 같은 표정이었어. 나는 안성재 심사위원 같은 성격은 전혀 아니지만, 최근 이날의 기분을 너무나 알 것 같은 사건이 하나 있었어. 그 이야길 들려줄게.


<이런 제목 어때요?> 1부 제목의 안, 첫 번째 이야기가 뭔지 알아? 퀴즈 내고 커. 피. 상. 품. 권. 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너무 아쉬워. '잘 심은 제목'이야. 그동안 내가 제목을 뽑기만 했다면 앞으로는 고경태 선배처럼 제목을 잘 심을 날도 있을 거라고 다짐하는 이야기가 나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고경태는 회사 밖에서 만난 선배야. 2005년 나는 그를 회사 밖, 한겨레문화센터 편집기자 실무학교에서 강사와 수강생으로 만났어(내년이면 알고 지낸 20년이네). 그때 고경태 선배는 한겨레 21 편집장이었어. 후로 아래의 프로필을 쌓아오셨고.


현 한겨레신문 사회부 기자
한겨레신문 이노베이션랩 실장
2021.3~2021.8  한겨레신문 신문총괄
2018.3      22세기미디어 대표
2018.3      한겨레신문 새매체사업단장
2017.3      한겨레신문 출판국장
2016.3      한겨레신문 편집국 신문부문장
2011.11      한겨레신문 토요판 에디터
2011.3      한겨레신문 문화스포츠 에디터
2010.4    한겨레신문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2008.10   씨네21 편집장
2007.4      한겨레신문 Esc팀 팀장
2005.4      한겨레21 편집장
2004.9      한겨레교육문화센터 강사
1994.2     한겨레21 기자



한겨레에 계신 지 30년(헉!). 편집기자 교육을 마치고도 나는 종종 가끔씩 고경태 선배를 만났어. 회사 안에서는 못 듣는 이야기를 하는 재미가 있었거든. 아직도 기억나는 질문 몇 가지가 있는데... 가령 이런 거야.


"최은경씨는 언제 부장 달아요?"

"제가 부장은 무슨... 위로 선배들도 많고 저는 아직 멀었어요. 그런데 부장 되면 뭐... 좋나요? 선배들은 힘들다고 하는데..."

"당연히 힘들지. 그런데... 내가 해보고 싶은 거 해볼 수 있잖아."


"최은경씨는 책 안 내요?"

"제가 무슨 책을 내요..."

"왜 못 내요... 한 분야에서 오래 일했고 연차가 그 정도 되면 낼 수 있지. 한번 고민해 봐요."


이런 이야기, 회사 안에서는 못 들어봤어. 나한테 업무적으로, 비업무적으로 이런 질문을 해주는 사람은 고경태 선배가 유일했어. 선배는 질문만 하지 않았지. 선배는 편집기자 출신이지만 나에게 편집기자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롤을 보여준 사람이야. 프로필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선배가 이전에 낸 책 두 권을 다시 보았는데(틈틈이 보지만) 나는 이런 글 못 쓸 것 같아. 한 마디로 너무 잘 쓰셔. 내가 흉내라도 낼 수 있으면 다행이겠어. 흑흑. 나랑 비슷한 일을 하고 있거나 편집(에디터)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어. 선배가 나랑 비슷한 연차에 쓴 책(<유혹하는 에디터>는 절판이야, 복간하라고 요청하고 싶어. 중고책이라도 꼭 구해서 읽어보아)인데 지금 읽어도 전혀 안 후져. 고급지고 심지어 재밌어. 


이 외에도 편집기자 아빠의 장점을 살려서 낸 책 <글쓰기 홈스쿨>도 너무 너무 재밌다고. 자녀들 글쓰기(성인도 상관 없음)에 관심 있는 부모들은 꼭 한번 읽길 바라. 편집기자 엄마의 장점을 살려서 나도 쓰고 싶었는데 우리 아이들은 글쓰기에 관심이 없어서 패스하게 되었어.

  

선배 책과 나란히. 선배는 해외판권 합해서 10권의 책을 냈다고 하네요..........


2021년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을 내고 한번 보고, 그다음에 한번 보고, 또 이번에 책을 내게 되어서 연락을 드렸지. 남대문에서 평양냉면을 먹고 선배가 좋아한다는 투썸에 가서 커피를 마셨어. 선배는 후배가 메뉴 고민 안 하게 해서 좋아. 늘 정해주시거든. 근데 그게 언제나 맘에 쏙 들어. 이날은 내가 몸이 안 좋아서 녹두전에 막걸리 한 잔 못 마신 게 너무 아쉽더라. 담에 다 나아지면 술 한 잔 하기로 하고 헤어졌어.


남대문 시장 안에 있는 부원면옥. 처음 가봤어. 
30년 차 기자가 낸 책 <본 헌터> 22년 차 기자가 낸 <이런 제목 어때요?>


그리고 며칠 후 내가 질문지를 보냈지. 보내준 답변을 보면서 미슐랭 3 스타 받던 날의 안성재가 생각났어. 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기분... 너무 좋았어. 그 이야기 한번 같이 볼래?


―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 꼭 듣고 싶은 이야기고. 한 문장으로 어떤 책이라고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글을 열심히 만지자. 이 책은 글 중에서 아주 짧은 글, 압축적인 글을 어떻게 만져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지.”


―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 어디인지 대놓고 물어봐도 돼?

다 좋았어. 지은이의 한결같은 마음이 느껴졌거든. 209쪽을 보니 이런 대목이 나오네. “그랬다. 때는 2015년, 편집부 몇몇 선후배들이 머리를 맞댔다. '더 좋은 제목을 짓고 말겠어'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스터디였다.” 잘하려는 마음, 아름다운 불꽃으로 남을 거야. 나는 말이야,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결과를 가르는 건 너의 마음 나의 마음이야. 그 마음을 계속 간직해 줘. 뭐 또 ’더 좋은 책을 쓰고 말겠어’, ‘더 좋은 인생을 살고 말겠어’라는 마음도 좋고. 당근 그 마음 따위 허망할 때가 있겠지만.”


― 어떤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인지 이야기해 줄래?

“자기 생각, 또는 자기가 쓴 글이 잘 요약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볼 만하겠지. 내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무슨 글을 쓰려는지 스스로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어. 그러면 ‘한마디로 뭐냐’를 되뇌어봐. 그 한마디가 잘 요약되지 않는 사람들이 보면 뭐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 브런치 연재할 때 타이틀이 '제목 레시피'였어.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먹고 싶은 음식을 떠올린다면 뭘까? 이유는?

“캐슈너트. 맥주 안주로 하나 두 개 집어 들어 먹게 되면 한없이 먹게 되거든. 한번 페이지를 넘기면 캐슈너트를 집어들듯 계속 넘기게 되네. 어때. 좋아?”


― 바쁜데, 이런 질문에 응답해 줘서 고마워. 혹시 마지막으로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질문이든 뭐든.

다음 책은 모야? 다음 마음은 모야?


"다 좋았다"는 말에 3 스타가 안 부럽더라. 낄낄 웃음도 나고. "다음 책은 모야? 다음 마음은 모야?"라고 묻는데, 내 마음이 약간 순두부처럼 몽글몽글해지고. 선배의 답을 듣고 '내 다음 마음은 뭐지?' 자꾸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야. 뭔가 감사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싶은데, 어렵더라고. 고민 끝에 이렇게 보냈어.


"역시 재미재미재미. 이런 말 좀 그렇지만, 선배 재미 아직 살아 있네요. 다음 책은... 정해지면 술 약속 잡을게요. 감사합니다. 진심으로요."


내가 왜 재미, 재미, 재미... 이런 말을 했는지 알아? 예전에 회사 선배가 고경태 선배를 인터뷰한 적이 있어. 그때 제목이 "재미, 재미, 재미... 재밌는 고급잡지 만들겠다"였어. 그게 생각났거든. 2005년 4월 20일 자 신문 제목인데, 그걸 아직도 기억하다니... 순발력에 나도 놀랍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0062294?sid=102


선배는 지금 사회부에서 기사를 써. 경찰서 출입기자야. 정년퇴임이 1년 반 남았대. 작년 초인가, 재작년인가... 만났을 때... 그동안 회사에서 안 해본 일이 뭔가 생각했는데 현장 기자였대. 그래서 사회부 기자가 되었어. 대단하지 않아? 늘 재미를 추구하고 도전하는 회사 밖 선배가 있어서 든든해.


대단한 건 또 있어. 선배는 1999년부터 편집기자, 편집장으로 일하던 시절에 늘 베트남 전쟁에 관심을 갖고 기획하고 글을 써 왔어(2000년 11월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관한 미군 비밀문서를 최초 보도했다). 그런 선배가 2024년 사회부 현장기자가 되면서 "사회부에서 가장 사회부스럽지 않은 기사를 쓰겠다"라고 했는데 운 좋게 이야깃거리를 빨리 찾았대. 바로 한국전쟁이야. 그 일부가 지난 2월에 출간한 <본 헌터>고.


"지금도 한국군이 작전했던 중부 5개 성의 이름을 다 외우고, 학살이 벌어졌던 퐁니, 하미, 뚜이호아, 고노이, 빈안, 주이선 같은 지명을 쉽게 읊을 수 있다. 줄기차게 베트남에 가면서 '왜 집착하느냐'는 소리도 들었다. 이런 내가 한국전쟁을 주제로 책을 낼 줄은 몰랐다."


내가 대단하다고 하는 건 절대 과장이 아니야.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잘 써. 그러니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한번 읽어주길 바라. 선배가 "나는 말이야,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결과를 가르는 건 너의 마음 나의 마음이야. 그 마음을 계속 간직해 줘." 하는 말이 계속 메아리치듯 들려. 내 마음이 뭔지, 다시 잘 들어봐야겠어. 정해지면 술 마시자고 해야지. 고마워요. 선배.


2024년에 나온 두 권의 책 투샷. 기분이 너무 좋다.


http://aladin.kr/p/Oq6fw

http://aladin.kr/p/rQb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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