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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거리가 쌓여 있는 느낌이 싫어서

[편집기자의 온] 불편한 마음

by 은경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검토하는 영역(사는이야기, 문화, 책동네, 여행)은 한 명의 시민기자가 하루에 두 개 이상의 기사를 넣어도 보통 한 개의 기사만 처리한다(시의성 있는 기사는 예외다).


보통은 하루 한 개 송고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시민기자 활동을 처음 하시거나(연재 기사를 한꺼번에 여러 개 넣음), 갑자기 기사로 쓸 내용이 많은 경우(여행기를 한꺼번에 여러 개 넣음), 개인 사정으로 미리 기사를 보내두는 경우 등엔 두 개 이상 보낼 때도 있다. 이전 기사가 아직 기사로 채택되지 않고 검토중인데 새로 넣은 기사들은 시간을 두고 나중에 검토하기도 한다.


기사 검토가 아주 늦어질 때는 따로 양해를 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하루 이틀 내에 처리하기 때문에 연락을 따로 드리지는 않는데 이번에는 쪽지를 보냈다. 기사가 검토중인 상태로 계속 밀리고(배치에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와중에 새 기사를 계속 넣으셔서 안내가 필요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미검토 기사가 남아 있는 게 몹시 신경 쓰였다. 하루 이틀은 참았는데 다음날도 그러면 보고 있기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연락을 드렸다.


"(구구절절 내용은 생략) 기사는 하루 한 편 넣어주세요. 그 이상 넣더라도 한 개씩만 처리합니다. 참고해 주시고요. 감사합니다."


역시나... 요즘 많이 쓰고 있어서 그랬다는 답신. 그러면서 "많이 보내도 알아서 하루 한 건 처리하시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닌가 봅니다. 이렇게 쪽지를 주신 거 보니요" 한다. 아닌데 그게 맞는데 혹시라도 다른 오해를 하실까 봐 다시 쪽지를 보냈다.


"(여처저차 내용 생략) 기사가 쌓여 있으면 저희도 보기가 힘들더라고요. 직업병 같은 것..."


이질직고 해버렸다. 그렇게 상황 종료인 줄 알았는데 금세 답쪽지가 왔다.


"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급 미안해집니다. 이 더위에 쌓여 있는 일거리들 상상만 해도 더우니까요. 무더위는 이기되 여름은 뜨겁고 즐겁게 보내세요."


후훗. 미소가 지어졌다. '일거리가 쌓여 있는 그 느낌', 아주 정확한 표현이었다. 내일 검토해도 되는 기사지만, 알면서도 미검토 상태로 남아 있는 걸 계속 보게 되는 건 어쩐지 불편하다. 다른 이유에서 미검토 상태인 기사도 그렇다. 기사 수정이 필요한 경우 회수해서 직접 수정하실 수 있도록 미검토 상태로 돌려놓기도 하는데, 한나절이 지나도록 회수하지 않는 걸 보는 것도 힘든 건 매한가지. 제발 빨리 회수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편집기자들 중에서 이런 사람들이 몇 된다. 소위 일이 남아 있는 꼴을 못 보는 사람들. 그날 들어온 기사를 모두 검토하고 간다는 목표 아래 퇴근 시간까지 전력을 다하는 이들.


개인의 성향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훈련받은 탓도 클 거다. 한때 있었던 오후 출근 야간 당직자는 오후 8시까지 들어오는 기사는 다 검토하고 퇴근해야 했다. 오후 7시 반부터 들어오는 기사가 그날의 퇴근 시간을 결정했다. 기사가 안 들어오는 날은 칼퇴가 보장되지만, 7시 59분에 기사가 들어오면 그걸 검토하고 퇴근해야 하니까 퇴근 시간은 늦어진다. 어렵고 까다로운 내용이면 검토 시간이 길어지고 퇴근은 더 늦어진다. 다행히 지금은 야간 근무가 없다.


라플에서 일하면서 업무에 유연성이 필요했다. 팀원이 한 명뿐이니까! 쉽게 지치지 않도록 일을 잘 분배해야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보고 끝내자라고 미리 선 그어줄 때도 있고, 후배에게는 2페이지부터 시간 순서대로 기사 검토할 것을 요청하고 나는 1페이지에서 급한 거부터 처리하겠다는, 투 트랙 전략을 써야할 때도 있었다. 어떤 날은 기사 검토는 내가 할 테니, 해야 할 다른 업무를 하라고 하기도 했고. 2명이 일하는 팀에서 유연성만큼이나 중요한 게 효율성이었으니까.


시아버지 장례 후 경조휴가 중이다. 두 명인 팀에서 한 명이 빠졌으니 아마 매일 그날 다 처리하지 못한 얼마간의 기사들이 쌓여 있었을 거다(내가 있어도 기사가 쌓이는 날은 있다). 다른 팀에서 십시일반 함께 봤다고 해도 각자의 업무가 또 있을 테니까, 후배 혼자 고군분투하는 시간이 많았겠지.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한 기사들 때문에 퇴근할 땐 뭔가 개운치 않고, 출근하면 쌓여 있는 기사들로 '아, 퇴근하고 싶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복귀하면 고생했을 후배와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


- 끝으로 위로의 말씀 전해주신 작가님들에게 감사 인사 드립니다. 겨우 마감을 지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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