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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입주하고 싶은 마을

[편집기자의 오프] 투고는 선택하는 일이기도

by 은경

이 마을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김신지 작가의 책 <기록하기로 했습니다>(2021년 2월 출간)를 읽으면서다. 이 책은 '자기만의방'이라는, 휴머니스트 임프린트(출판사에서 추가로 출판브랜드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에서 나왔다. '자기만의방'이라니. 작명이 근사했다. 초등학교 시절, 직접 손글씨를 써서 만들었던 학급 신문을 떠올리게 하는 부록에는 작은 마을 자기만의방에 대한 소개가 자세히 실려 있었다.



1관 생활관 나를 돌보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합니다.

2관 여행관 오늘이 행복해지는 여행을 소개해요

3관 취미예술관 아티스트처럼 즐길 수 있는 취미예술을 찾아봐요.

4관 심신수련관 몸과 마음을 돌보는 방법을 배웁니다.

5관 문학관 삶의 태도를 제안합니다.

6관 교양관 나의 성장을 돕는 지식과 지혜를 담습니다.

7관 일관 현명하게 일하고 균형 있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습니다.


내가 작은 마을에 입주한다면 어느 관으로 가야 할까. 생각만으로 설렜다. 나와의 교집합을 찾자면 생활관, 여행관, 심신수련관, 여행관, 일관이 맞을 것 같았다. 벼르던 마음을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2022년 3월 투고(가제 : 혼자 쓰는 법)를 하기도 했다. 큰 기대와 달리 원고에 대한 별 다른 답변은 듣지 못했지만.


그 후 2023년 우연히 터틀넥프레스에서 나온 신간을 받아보면서 보도자료와 명함을 발견했다. 신생 출판사인데 로고가 귀여워서 어떤 곳인지 궁금한 마음에 김보희 편집자를 검색해 봤는데, 허허. 이 편집자가 '자기만의방' 편집자 출신이 아닌가. 운명인가(나는 운명론자). 나는 크게 고민하지도 않고 그때 쓰고 있던 원고 <제목의 이해>를 투고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거절. 그래도 거절 메일은 보관해 뒀다.


보내주신 원고도 소중히 잘 읽었습니다. 제목 짓는 일은 저에게도 늘 어려운 관문이어서 노하우들을 많이 얻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지만, 터틀넥프레스에서 출간하기에는 어려울 듯해요. 이름처럼 저 혼자 엉금엉금 만들어가고 있는 출판사이고(그래서 만들 수 있는 책의 숫자도 몇 권 되지 않아요ㅠ) 아직 뚜렷하게 브랜드가 그리고자 하는 방향을 설명드리기를 어렵지만 준비하고 있는 책들과도 방향이 조금 달라서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을 담아 고민 끝에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자기만의방에서부터, 터틀넥프레스까지 이어지는 인연, 감사합니다. 큰 응원을 받은 듯해요. ㅜㅜ


아쉬웠지만 크게 좌절하지는 않았다. 나의 투고가 작은 출판사를 시작하는 데 응원이 되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인 것 같고(정신 승리). 다행히 곧 내 글을 좋아하주시는 편집자님을 만났으니 괜찮았다. 이때 배운 게 있다. 투고에서 원하는 바를 얻으려면 내가 쓴 원고가 출판사의 방향과 결이 비슷한가도 염두에 둬야겠구나. 작은 출판사일수록 더 그렇겠구나.


그 이후로 터틀넥프레스에서 나온 책들을 지켜보니 이 출판사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가 보였다. 내 글이 어느 지점에서 선택받을 수 없었는지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내놓는 책을 보면서, 내가 편집자를 보는 눈이 나쁘지 않았음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럼에도 언젠가 인연이 닿기를 바란다. 이런 마음이 묘하게 글 쓰는데 동기부여가 된다(계속 좋은 책을 내주시길).


오늘도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 어제보다 한 칸 더 / 한수희 (지은이)

에디토리얼 씽킹 - 모든 것이 다 있는 시대의 창조적 사고법 / 최혜진 (지은이)

인터뷰하는 법 - 당신이라는 이야기 속으로 / 장은교 (지은이)

터틀넥프레스 사업일기 : BEGINS - 모든 것이 처음인 날들 ㅣ 터틀넥프레스 사업일기 1 / 김보희 (지은이)

터틀넥프레스 사업일기 2 : WALKS - 함께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ㅣ 터틀넥프레스 사업일기 2 / 김보희 (지은이)

거북목편지 /김보희 (지은이) | 터틀넥프레스


투고를 할 때 보통 작가는 선택받는 입장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출판사를 선택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시도는 해볼 수 있다. 결과에 상관없이. 생각지 못한,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도 투고다.


시어머니와의 이야기를 담은 첫 책 <연애>를 내신 서민선 작가님을 만난 적 있다. 그때 작가님이 다음 책 출간을 고민하셨을 때 적극 투고를 권했다. 되든 안 되든은 나중 문제라고. 일단은 해보시라고. 마침 이야기가 오가던 출판사가 있었는데 출간한 책들을 보니 작가님 원고와 결이 비슷해 보여 잘 되실 것 같다고도 했다. 이 이야기는 최근 서민선 작가님이 쓴 글 가운데, '투고에 성공했다'는 글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다.



나는 <노년을 읽습니다>를 시아버지가 입원 중이실 때 읽었는데 '나이듦에 대한 인식이 시작되는 순간'이라는 부제와 내 상황이 그렇게 꼭 맞을 수가 없었다. 시아버지를 보내고 건강검진 결과지를 들고 병원 투어를 하는 요즘 특히 더 그렇다.


고백하면 새로운 글을 쓰고 있다. 글쓰기 소설을 시도해 봤다가(2편까지 썼는데 글모임이 끝나고 나니 도저히 발전이 안 되더라) 과감히 접고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있다. 바로 '퇴고하는 마음'에 대한 글이다. 편집기자는 퇴고하는 사람. 그 과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니 또 내가 쓸 수 있는 글들이 보여 목차를 짜봤다.


열 편 이상 잡히는 걸 보고 마음을 굳혔다. 써야겠다고. 이렇게 보니 내 글은 뭔가를 쪼개 나가는 과정인가 싶기도 하다. 편집기자로서의 첫 책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이라는 큰 덩어리를 쏟아내고 나니 제목이 보였고, 제목을 털어내고 나니 글을 고치는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이런 제목 어때요?> 책을 내고 출간 전후 이야기를 담은 글에서, 고경태 선배 이야기를 글로 쓴 적 있다. 그때 마음에 유독 남았던 말들이 있었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https://brunch.co.kr/@dadane/567


―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 어디인지 대놓고 물어봐도 돼?

“다 좋았어. 지은이의 한결같은 마음이 느껴졌거든. 209쪽을 보니 이런 대목이 나오네. “그랬다. 때는 2015년, 편집부 몇몇 선후배들이 머리를 맞댔다. '더 좋은 제목을 짓고 말겠어'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스터디였다.” 잘하려는 마음, 아름다운 불꽃으로 남을 거야. 나는 말이야,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결과를 가르는 건 너의 마음 나의 마음이야. 그 마음을 계속 간직해 줘. 뭐 또 ’더 좋은 책을 쓰고 말겠어’, ‘더 좋은 인생을 살고 말겠어’라는 마음도 좋고. 당근 그 마음 따위 허망할 때가 있겠지만.”

...

― 바쁜데, 이런 질문에 응답해 줘서 고마워. 혹시 마지막으로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질문이든 뭐든.

“다음 책은 모야? 다음 마음은 모야?”


나의 다음 마음은 퇴고하는 마음. 마음이 정해졌으니 선배를 만나야겠네. 후훗. 이 글로 '작은 마을 자기만의방 입주를 축하한다'는 말을 듣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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