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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국 Jan 19. 2024

희망고문

날적이단상

조용한 사무실에서 자꾸 머리를 맴도는 말들을 곱씹어본다. 


1. 40대로 접어든 2023년에 대한 실망감이 채 가시기도 전, 연초부터 악재가 이어졌다. 


- 2년여 안정적으로 둘째를 돌봐주시던 이모님이 낙상 사고로 결별을 통보했다. 급하게 맘시터, 시터넷, 당근알바에 공고를 올려 주말내내 6명 면접을 보고 새로운 이모님을 결정, 새로운 분이 출근한지 2주 정도가 지났다. 아이는 아직 적응중이지만 예전 이모할머니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아직도 아이가 '이것좀 여줘(넣어줘)' 라는 이모할머니의 사투리 말투로 얘기할 때마다 괜시리 마음이 쓸쓸해진다. 


- 별 것 아닐거라 생각했던 귀밑 멍울은 양성종양으로 판정되어 제거 수술일정을 잡아야 했다. 3~4년쯤 귀밑에 자리한 1센치 정도의 멍울인데, 연말 감기로 이비인후과에 간김에 물어보니 큰 병원에 가보라며 소견서를 써줌... 예약잡아 2번의 채혈검사. 비급여라 비싼 CT(MRI)검사. 두경부 세침검사(긴 바늘을 쿡쿡 꼽는 느낌이 끔찍했다)를 거쳐 새해에서야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교수도 수술일정 잡아주는 간호사도 모두 아 이거 별거 아니에요 그냥 떼내면 됩니다 라고 해서... 정말 그런줄 알고 추석으로 일정을 잡았었는데. 집에 와 검색해보니 무시무시한 기분이 되어서 수술일정을 앞당기로 하고. 수술하는김에 병가도 쓰기로 마음 먹었다. 


- 작년 11월 정도부터 신축으로 이사를 가려고 알아봤는데. 원래 가려던 단지는 충분히 완성이 되지 않아 이사가 꺼려져 집에서 가까운 단지로 타겟을 바꿨다. 예상과 달리 새로운 타겟 단지의 전세가가 치솟고 거래는 씨가 마르며 이사가 요원해졌다. 전세로 내놓은 현재 집은 많은 이들이 보고 가는 와중에도 거래가 안되고 있다. 남편은 작년 여름에 좀더 서두르지 않았음을 계속 불평불만하며 왜 자꾸 타이밍이 늦어지는지에 대해 한숨만 쉰다. 구축아파트는 겨울이 몹시 힘들다.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면 빨래를 할 수 없어서 빨래방으로 가야 하는 남편의 스트레스지수가 상승한다. 춥지만 중앙난방이라 어떤 날은 너무 더워 온습도 적응을 못한 아이들이 감기에 쉽게 걸리기도 한다. 10년을 이렇게 살아서 익숙하긴한데, 작년엔 아랫층 누수로 몇달간 누수원인탐지와 바닥공사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이사를 가기로 마음을 굳혔었다. 그러나 이사를 가려해도 생각할게 한두가지가 아니라 머리가 아프다. 


- 친정부모님과 가려던 미국 여행에 남편이 태클을 걸었다. 이유는 위에서 열거한 나의 수술과 이사. 플러스 시부모님의 칠순이 올해라는 이유. 모든 것을 다 하기에는 돈이 부족하고, 시간도 부족하다며... 일정을 거의 확정했던 나에게 제동을 건 것이다. 나는 몹시 기분이 상했지만 원래 가려던 5월은 회사 상황으로도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9월로 일정을 옮기기로 했다. 


이런 일들이 이어져서인지 연일 악몽을 꾸며 새벽마다 잠이 깨곤 한다. 커피를 끊으면서 잠은 늘 개운하게 잘 자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새벽 2, 3시에 어떤 이유로든 깬다. 같이 자는 아이의 칭얼거림 때문일 때가 많고, 늦게 잠자리에 드는 남편의 기척 때문이기도 한데. 그렇게 한번 깨고나면 다시 잠들기가 어려워 한참을 뒤척인다. 해결되지 않은 일들과, 미래에 대한 불안, 잊어버려선 안되는 내일의 일상들이 잠을 방해해서 결국 출근 전까지 뜬눈으로 지새기도 한다. 


2. 이 회사를 다닌지 만 5년이 되었다. 가끔은 좀 적응이 되었나 싶을 때도 있지만 여전히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시간들이 자주 있다. 어쩔때는 그 느낌이 심각해 이직 공고를 뒤적거리는 날들도 있다. 그러나 입사할 때부터의 희망고문으로 인해 '그래도 지금까지 버틴게 아까우니 조금만 더...'라며 버틴다. 힘들어도 버티다보면 언젠가 해외 주재를 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때문에 놓지 못한다. 그 희망은 아이의 교육 문제, 남편의 염원 등이 같이 담겨 있어서 어깨를 무겁게 하는 부담이기도 하다. 언제쯤 해외발령 지망을 할지, 쉼없이 머릿속에서 시나리오를 그리고, 폐기하고, 포기했다가, 그래도...라며 일으켜 세운다. 


40대가 되었기 때문인지, 이직한 이 곳이 나와 맞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다. 속이 개운하고 명쾌하게 일했던 과거의 기억은 과거라서 포장되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애써 위안해 보지만. 최근의, 여기서의 나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컨텐츠를 만드는 실무자로서도, 업무의 관리자로서도 실수가 많고 어설프다. 특히 사장의 자료를 만들 때마다 많이 위축된다. 사장의 성향 때문일수도 있고, 나의 능력이 퇴화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에게서 좋은 피드백을 듣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 보고를 할 때마다 그의 표정은 우울과 짜증으로 가득차 있어서 나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새로운 사장이 오면, 나의 글과 가치를 인정받고 나를 대하는 처우가 달라질까? 그 또한 희망고문일지 모르겠다. 이번 사장이 아니면. 다음 사장도 아니면... 그때 가서는 정말 포기해야 할텐데. 그럼 지금 버티는 이유가 뭘지? 이미 성공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좋은 곳으로 해외발령을 다녀온 나의 전임자와 스스로를 비교하게 된다. 그처럼 영악하고 용의주도하게 이곳에서의 내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 버티기도 바쁜데.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것은 내 삶의 일부다. 그렇기에 매일 여러 글을 읽고, 이곳에 맞는 좋은 글과 콘텐츠에 대해 고민한다. 공공기관의 콘텐츠는 어떠해야 할까? 나의 진심과는 달리. 모두들 공공기관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라는 식의 프레임을 벗어나기 힘들어 한다. 어느새 나 또한. 신입사원이 가져오는 아이디어에 대해 부정적인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작년에 무슨 책을 읽다가 '작가가 쓰기 싫어한 글은 아무도 읽고 싶어하지 않는다'라는 부분을 읽고 크게 공감했다. 공공기관으로 이직한 뒤 썼던 많은 기고문과 콘텐츠, 영상들... 내가 쓴 것인데도 다시 보고싶고 읽고 싶어지는 것이 거의 없다. 만들면서도 '이런 걸 왜 만들지'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꾸역 꾸역 채워야 했으므로, 거기에는 싫음이 잔뜩 묻어있었을 것이다. 그런 콘텐츠가 히트를 칠리 없다. 그걸 알면서도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공공기관으로 이직한뒤 오히려 아나키스트가 되었어'라던 동기언니의 말처럼. 끝없이 기관의 존재가치를, 국가가 필요한 이유를 부정하게 된다. 여기서 나는 여전히 '예전에는.. 밖에서는..'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이방인으로 여겨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리더십에 대한 강의를 듣다보니 '우리'로 포지셔닝하는게 중요하다고 한다. 우리니까, 이렇게 해 나가야죠. 잘 안되도 그런 쪽으로 말투를 바꾸려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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