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도 배웁니다 Apr 16. 2024

Ep 0. 나는 왜 퇴사를 결심했는가

나는 지난 4월 12일 부로 1년을 조금 넘게 다닌 회사에서 퇴사했다.


Product Manager로 살아온 지 어언 10년 차, 특히 이번 회사에서의 1년은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고 뜨겁게 다닌 1년이 아니었나 싶다. 또 그만큼 정신적 고갈도 심했다. 일이 그럭저럭 풀릴 때는 버텨지는가 했더니 외부 상황까지 덩달아 쫓아오자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멘탈의 끈도 끊어지기 시작했다.


보통 이런저런 이유로 퇴사를 결심하게 되면 먼저 이직 자리를 구하고 퇴사를 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에는 소진의 강도가 너무 심하여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어 일단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결심 후 마지막 1개월을 버텨내는 게 힘들었는데 떨어진 에너지를 가까스로 부여잡고 마지막까지 여러 가지 task를 그럭저럭 마무리하고 '다행스럽게' 퇴사를 하게 되었다.


이 글은 '왜 퇴사를 결심하였나'부터 시작하여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담아내고자 한다.



1. 나는 왜 퇴사를 결심하였나


위에서 서술했듯 '정신적 고갈'이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맞다. 다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나는 지난 회사에서 Product Lead 직책을 맡아 업무를 처리하다가 정신적 고갈을 경험하고 난 뒤 Product Lead에서 플랫폼을 담당하는 Product Manager로 배속을 변경하였고 낮아진 업무 강도에 따라 피로감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성취감'이었다. 보직 변경 이후로 근본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지 않고 하루하루 삶을 영위하는 게 의미 없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나는 10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단 한 번도 내가 '직장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일해오지 않았다. 다만 어떤 '업'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 '업'을 하는 수단으로써 직장이라는 매개체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운이 좋게도 나의 뜨거운 열정 기반 위에 새로운 경험과 지혜가 보태져 커리어를 잘 이어오고 있었다. 다만, 보직 변경 후 하는 일에 대해 '직장인'의 마인드로 성장 없이 그저 하루하루 일을 해 나가는 나를 목도하게 되었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인생으로 1년, 2년을 채우게 된다면 내게 남는 것은 오직 연봉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 원래 직장 생활이 다 그런 것 아니겠나

맞는 말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과정 속에서 어떻게 내가 하고 싶은 일만 성취감 있게 즐기면서 할 수 있겠는가. 나도 동감한다. 때로는 하기 싫은 일도 기꺼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이 일을 하는 과정 속에서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지 여부는 내가 삶을 살아내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국가 대표 선수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 선수는 하루하루 지겨울 수 있는 고된 하루를 매일매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 지난한 훈련을 견디고 나서 따스한 물에 샤워를 마치고 밤에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를 '회고'하는 그때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과 희망찬 미래를 그릴 수 있다면 그런 하루하루는 굉장히 성취감 있는 하루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즉, 오늘 하루 얼마든지 'get my hands dirty'를 할 수 있다.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업무, 기꺼이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하루는 결국 내가 바라는 업무적 이상향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맡은 마지막 업무는 그런 '연결감'을 맛볼 수 없었다. 


나는 이미 너무나 소진되어 있었고 새로운 보직을 통해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데 실패했다.


- 요즘 시장 상황이 너무 안 좋던데 조금 더 있어보는 건 어땠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 나도 매우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링크드인에 계정을 개설한 지 어언 몇 년 정도가 흘렀는데 요즘만큼 헤드헌터의 제안이 드문 경우가 처음이다. 물론 커리어가 쌓이고 연차가 늘어나면서 소위 말하는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연차'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도 맞다.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들려오는 여러 스타트업 회사의 구조 조정, 혹은 폐업 소식들, 그에 따라 연결되는 구직자의 폭증, 수요와 공급의 비대칭 등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인생은 짧다'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게 남지 않았다. 내가 올해로 만 37세인데 앞으로 얼마나 더 '건강하게' 업을 이어 나갈 수 있을까? 아마 30년? 40년?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1년, 1년은 매우 소중하다. 


나의 gut feeling이 주는 목소리를 좀 더 듣고 내가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현재 상황에 머무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 결심을 굳히는 데 있어 스티브 잡스의 '조언'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특히 마지막 문장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너는 이미 헐벗고 있는데 두려울 게 무엇이고 마음의 목소리를 좇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냐는 말. 심금을 울렸다. 그래서 나는 회피가 아닌 도전을 하기 위해 '능동적인 퇴사'를 결심했다.


- 그래도 두렵지 않은가?

글쎄. 별로 두렵지는 않은 것 같다. 오히려 퇴사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두려움이라는 요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것 같고 퇴사를 '실행'한 지금은 두려움이 마음속에서 자리 잡고 있지 않다. 애초에 퇴사를 결심할 때 여러 이유로 다시 Product Manager를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까지도 고려하여 의사 결정을 한 것이고 설령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지난 결정에 후회를 할 것 같지는 않다. 


지난 10년 동안 커리어를 이어 나가면서 여러 의견을 듣고, 리서치를 하고, 생각들을 정리하고, 구조화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설득하고, 구현하고, 성과를 내는 경험을 반복해 왔다. 이런 경험이 비단 PM에게만 필요한 경험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나는 위의 과정들을 반복하면서 스스로 숙련되어 왔고 발전해 왔다. 지금과 같이 차분한 어조로 글을 정돈하여 쓸 수 있는 것도 다 위의 경험이 매우 큰 도움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걸어온 발자취에 대한 나름대로의 자부심이 있기에 앞으로 내가 내딛는 발걸음도 지금까지 경험을 완전한 마침표로 하고 새로운 선택을 한다기보다는 '쉼표 후 새로운 연결'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그런 의미에서 (대책 없는 믿음이 아닌 자신감에 기반한) '어떻게든 잘 될 것이다'라는 믿음은 유효하다. 


방금 전에 '인생은 짧다'라고 했지만 한편으로 인생은 길기도 하다. 즉, 내가 30년, 40년의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초반의 10년은 아직 밑거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30년, 40년 동안 PM이라는 직무를 이어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성취감'을 위해서 산다. 어떤 업을 하든 어떤 일을 하든 '내 안의 성취감'이 가장 중요하며 그런 마음의 길을 좇다 보면 멋진 한 폭의 풍경화가 그려져 있을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 직장 생활에서의 후회는 없는가

있다. 지난 1년 동안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돌이켜보면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선택을 했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떳떳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었을 것 같다. 잠깐, 이 글을 쓰고 있었을 거라고? 맞다. 사실 그런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선택과 결과로 결국은 귀결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할 수 있는 한 날개를 최대한 펼쳤으며 나름의 성과를 얻었지만 그 과정 속에서 한계도 보였다. 그리고 나는 안다. 그런 한계점을 단시일 내에 극복하기는 어려웠으리라는 것을. 사람은 실패로부터 배운다. 나 또한 그 과정 속에서 느꼈던 것들을 또 다른 자양분으로 삼아 '인간'으로서 한번 더 성장할 것이다.


그래서 '전술적 판단'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전쟁의 결과'에 대한 아쉬움은 특별히 없다. 그냥 내가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것들을 내가 볼 수 있는 시야 내에서 했고, 어떤 부분은 좋았고 어떤 부분은 아쉬운 결과를 낳았다. 그뿐이다.



2. 앞으로의 계획 (인생 계획)


서두에 거창하게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라고 써 두었는데 사실 어떠한 뚜렷한 계획이 세워진 것은 아니다. 기본 전제는 '어떤 일을 하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인데 본격적인 실행을 하기에 앞서 일단은 지난 10년 간의 커리어에 대한 회고를 제대로 하고 싶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어디로? 전국 투어. 


4월 중에 훌쩍 떠날 예정인데 짧게는 30일, 길게는 50여 일 정도를 다녀올 생각이다. 과거에 국내 여행을 하며 방문했던 지역들 말고 내가 평소에 방문하지 않을 법한 도시들을 주로 돌아다니며 새로운 경험을 해 보고자 한다. 10~15 곳 정도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봄 정취도 제대로 느끼고 낯선 가운데서 새로운 바람과 생각을 느껴보고 싶다. 이를 위해 오랫동안 살까 말까 고민했던 자동차도 구매하였다. 아직 초보 운전이라 서툴지만 한 달 이상 임팩트 있게 운전을 해 보면 나름 익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그렇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정리된 생각에 기반한 실행들을 하게 될 것이다.


- 어떤 실행을 생각하고 있나?

창업, 취업, 프리랜서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 이 커리어를 시작했던 때야말로 '언젠간 창업해야지'하는 열망이 가득했었는데 지금은 그 열망이 다소 사그라든 모양새고 아직 본격적으로 취업에 대한 욕심도 없다. 지금은 창업, 취업이 아닌 '강의'를 생각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PM으로서 특히 초반에는 사수 없이 시작을 하면서 많은 한계를 느꼈던 경험이 있다. 지난 10년의 경험을 강의로 녹여 PM 입문자를 위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수렴혐 인간'이다. 즉, 수많은 정보로부터 이를 '구조화하고 정리하여 전달하는 데' 강점이 있다. 나보다 더 긴 시간 훌륭한 커리어를 쌓은 분들도 물론 많이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정리와 설명'에 있어 나는 개인적인 자부심이 크고 PM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께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있다. 강의 자료를 약 한 달 정도에 걸쳐 만들어 볼 생각이고 이를 오프라인 강의를 통해 실현해 보려고 한다. 


잘 안되면? 아쉽지만 할 수 없다. 그러면 이 자료를 잘 보관하고 창업 혹은 취업을 할 때 주니어를 위한 교육 자료로 사용하겠다.


- 여행을 하면서 또 성취하고 싶은 게 있는지?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독서'를 많이 해 보고 싶다. 책을 좋아해서 몇 년 동안 독서 토론 운영자도 했던 나인데 최근 몇 년 동안은 바쁘다는 핑계로 힘들다는 핑계로 독서를 영 게을리했었다. 생각의 자양분으로써 독서의 유용함을 매우 잘 알고 있는 나인데 그래서 그런지 그런 부분에서 성장이 정체된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많이 있기 때문에 다시금 '활자 중독'에 빠져서 좋은 풍경과 더불어 많은 생각을 해보고 싶다. 


생각이 더 나아간 지점이 있는데 지금이 아니면 '평생 잘 안 읽을 것 같은' 책들도 도전해 보고 싶다. 점찍어 둔 책이 2권 있는데 하나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이고 또 하나는 찰스 테일러의 '자아의 원천들'이다. '총, 균, 쇠'의 경우 워낙에 유명한 책이고 주제도 흥미로워서 여러 번 시도했던 책인데 초반 서두 부분을 넘기는 데 계속해서 실패하여 아직도 미완 독서로 남아있던 참인데 이 무한에 가까운 시간을 활용하여 한번 제대로 완독해 보고자 한다. '자아의 원천들'은 추천을 받아 구매했던 책인데 책의 두께(1064쪽)가 어마어마하고 주제가 '철학'인지라 쉽게 접근이 어려워 계속 책장에 머물러 있던 책이다. 이 참에 제대로 흡수해 보고 싶다.


글도 많이 쓰려고 한다. 내 브런치 독자라면 알겠지만 지난 2016년 이래로 수많은 글을 써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은 가뭄에 콩 나듯 글을 써왔다. 글쓰기에 대한 흥미를 잃기도 했고 그만큼 쓸 글이 많지 않기도 했다. 이번에는 '퇴사 후 회고' 과정을 낱낱이 세밀하게 작성해 보고 독자들과 생각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나 또한 이런 회고 글쓰기를 통해 몇 년 뒤에 과거의 생각을 새로이 추억해 보고 싶기도 하다.


사람들도 만나 보고 싶다. 알아보니 전국에 게하가 참 많더라. 주로 호텔 혹은 모텔에 머물겠지만 가끔 한 번씩은 게하에 방문해서 '젊은 친구'들과 대화를 많이 해보고 싶다. 서두에 밝혔듯 나의 나이가 올해 만 37세인데 슬슬 기성세대로 넘어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젊어 보이는 얼굴과는 별개로. (농담이다.) 20대~30대에 걸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고 그들의 고민은 무엇인지, 요즘 희로애락의 주제는 무엇인지 소통해 보고 느껴보고 싶다. 라떼는 식의 마인드가 아닌 '그들의 생각을 경청하고, 생각을 흡수하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래본다.


- 그런 회고를 꼭 여행을 통해서 해야 하나? 집에서 할 수도 있지 않나?

인위적인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관성에 젖어 좀처럼 새로운 생각을 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지금 이 글도 집에서 쓰고 있는데 원래 갖고 있던 생각을 잘 정리하고 전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혹은 또 다른 epiphany(깨달음)를 만들어 내는 정도의 생각은 어려운 것 같다. 어쩌면 여행을 통해서도 그런 생각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으나 그런 생각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도 나름의 수확일 것이라 생각한다.






캠핑용 의자를 구매하였다. 차를 타고 유유자적 돌아다니다가 풍경이 예쁜 장소를 만나면 차를 잠시 세우고 트렁크에 둔 캠핑용 의자를 꺼내어 멍 때리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고요하고 노을이 지는 하늘이면 더 좋겠다. 그렇게 잉여롭지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잘 돌아오겠다. 중간중간에 브런치를 통해 방문한 장소의 정취와 상념들을 최대한 자주 상세하게 전달해 볼 생각이다. 아무쪼록 이 글이 나뿐만 아니라 이 땅의 '퇴사와 직업'에 대해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영감을 제공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pisode 0.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