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도 배웁니다 Apr 19. 2024

쉼표를 위한 쉼표

여행을 앞두고

차주 월요일에 여행을 떠난다. 뭐랄까. 지금 보내는 이 시간은 쉼표를 위한 또 다른 쉼표랄까. 어찌 됐든 퇴사 후 본격적인 여행을 떠나기 앞서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자연스레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하게 된다. 커피, 독서, 운동. 이른 아침에 일어나 유튜브를 통해 잔잔한 '아침' 음악을 들으며 독서로 하루를 시작한다.


문득문득 이렇게 '평온'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하지만 뭐, 어쩌겠나. 지금 나는 이런 시간을 필요로 하고 또 이 시간을 통해 무언의 회고가 되고 있음을 느껴가고 있다.


거실에 책장이 있다. 이 집에 이사 오면서 거실은 '독서하는 공간'이라는 테마를 염두에 두고 책장을 두었는데 그동안 일이 바쁘다, 피곤하다 등의 핑계로 늘 독서는 뒷전에 머물러 있었다.


책장에서 그동안 읽었던 책, 그리고 읽으려고 샀던 책들을 둘러본다. 한 권씩 꺼내어 읽어본다. 책장의 책 목록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이는 것 같다. 책 속의 생각이 그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곧 세계관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삶이 어떤 책들로 이루어졌는가가 그 사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규정한다. 


프롤로그에서 그토록 어려운 책을 읽어내겠거니 하는 말을 했지만 정말 여행 속에서 그 어려운 책들을 손에 집어 들지 확신은 없다. 오히려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인생' 그 자체를 담아낸 책들에 좀 더 집중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도 한국인인지라 긴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또 무언가 '얻어가야만 한다'는 집착에 빠져있었나 보다. 덜어내려고 가는 여행인데 그 와중에 또 채워냄이라니. 그렇게 멋있지는 않은 것 같다.


하루하루 평범하면서도 평온한 하루를 지내다 보니 그간 쌓여왔던 많은 부정적인 감정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왜 그리고 번민하고 힘겨워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또다시 회사에 돌아가면 그런 정신 상태로 돌아갈 것 같아 자못 두렵기도 하다. 직장 생활을 10년 하였고, 꽤 다양한 회사를 다녀보았지만 이러한 고난 혹은 번민은 늘 쫓아다녔던 것 같다. 아, 나는 직장 생활이 맞지 않는 건가. 그렇다면 앞으로의 인생은 무엇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할까. 고민이 깊어진다.


날씨가 참 좋다. 따사로운 오후에 여유롭게 글도 쓰고 좋아하는 커피도 마시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한한 공허감 속에 자못 두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것이 인생의 본질이 아닐까. 우리는 0도 아니고 1도 아닌 그 어느 지점에서 살고 있다. 100프로 깨끗한 상황도 100프로 더러운 상황도 없으며 우리는 어떤 우리만의 중간 지점에서 최적의 타협점을 찾아 오늘도 지속적인 실행을 해 나가고 있다. 어쩌면 이번 여행은 그 새삼스러운 진리를 다시금 되새기는 여행이 될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Ep 0. 나는 왜 퇴사를 결심했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