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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 아빠 Sep 10. 2023

모든 존재의 이유 ; 사랑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주적 존재

* 사진: UnsplashCasey Horner


 만약 무지개가 정말 빨주노초파남보의 7가지 색깔이었으면 어땠을까? 만화같이 경계선이 분명하게 구분된 일곱 가지 색깔의 반달 모양 빛 번짐이 하늘 위에 떠 있다면 오히려 괴기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의외로 그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음에 있다. 자연의 모호함은 분류하고 구분해 내길 좋아하고 정답을 찾으려는 인간의 습성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산업혁명 이후를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라고 표현하며 옛 지구의 생태계와 구분하고 있지만 어쩌면 45억 년 지구의 느린 시간 반복되는 그 어디쯤 또 왔을 텐데 인지 능력이 있는 우리의 호들갑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지구의 주인이 인간이라는 오만함 때문에 지금 인류에게 피해를 끼치는 기후의 변화를 기후 위기라고 표현하지만 가끔은 그냥 지구는 늘 그렇듯 온도를 높이기도 낮추기 위해 비를 내리기도 태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을 뿐인데 도대체 얘들은 왜 자기 기준으로 문제라고 생각할까?라고 혼잣말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진도, 화산 폭발도, 대형 산불도 마찬가지다. 지구는 옛날부터 이렇게 해왔는데. 마치 우리가 감기에 걸리면 바이러스를 죽이기 위해 몸에 스스로 열을 내는 것처럼 지구도 때론 열을 내기도, 때론 식히기도 하는 것인데. 생각이 이쯤 되니 우리가 지구한테 되레 바이러스 같은 존재인 걸까 하는 생각에 숙연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어떤 존재는 남녀(혹은 수컷, 암컷)라고 하는 생물학적 성의 차이가 존재하고 그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끊임없이 재생산을 해내는 경이로운 생물학적 무한성을 지녔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예를 들어 미국 유타주의 '판도' 숲에 있는 사시나무는 모든 개체가 단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 무게가 자그마치 6천 톤이나 하는 이 생명체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생명체로도 알려졌다. 수 세대에 걸쳐 재생산을 이루어낸 이 경이로운 생명체를 보고 있을 때면 과연 탄생과 죽음이라는 것이 과연 시작과 끝이라는 표현으로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우주 속에 티끌보다도 작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유한한 시간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지구에 우연히 떨어진 별에서 시작된 최초의 생명체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수많은 생명체들이 함께 쌓아 올린 수억 년의 역사를 지님으로서 우리 역시 우주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주적 존재로, 별의 자식들로 살아가던 인간이 지식이 쌓이면서 되레 자연 그대로의 날 것에서 벗어나 티끌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인간 스스로는 더욱 지혜로운 존재로 진화한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자연의 시선으로 마주한다면 되레 퇴화하는 존재라고, 멀어지고 있다고 느끼지 않을까? 특히나 사랑에 있어서 그렇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한국어 단어 중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도 그렇지만 모양새와 소리까지 완벽에 가깝다. 이렇게 아름다운 단어는 사실 인간을 우주적 존재로 만드는 대단한 힘을 가지기까지 했다. 마치 모든 물체에 질량을 부여해 우주를 탄생시켰다는 힉스 입자와 같다. 힉스 입자가 혹시 사랑은 아닐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우주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발휘되는 사랑의 힘이 그저 허무맹랑한 상상력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우주적 단어인 사랑마저도 인간은 분류하고 답을 내려고 한다는데 있다. 사랑을 정의하고자 하고 그것을 소비 자본주의와 어떻게 엮을지 생각하고 그것이 국가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출산율에 어떻게 기여할지 연구한다.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부부를 보고 있으면 비결이 무엇인지 묻고 따지고 답하길 좋아한다. 이렇게 정답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사랑은 주관식 빈칸에 다 담을 수 없는 것이라 저마다의 정의도 다르고 방법도 다르고 형태도 다르지만 누구는 그것을 맞았다 혹은 틀렸다고 한다. 대학교 때 들었던 커뮤니케이션론 수업에서 이 사랑에 대한 정의를 쓰는 시험이 있었는데 내 점수는 B+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내 삶에서 사랑을 점수로 굳이 매기자면 S 등급을 받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사랑받고 사랑하고 있다고 자신한다. 그리고 그때 내가 적었던 답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랑을 하고 있다. 시간이 부족해서 다 쓰지 못했지만 커다란 B4 용지 3장을 족히 적었던 것 같다.(게다가 당시 교수님은 내 답을 비웃었다. 그분은 지금 사랑하며 잘 살고 계실까?) 그 안에 다 담을 수 없던 내 사랑 이론은 그 자체로 우주의 시작과 끝, 알파요 오메가였다.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 모든 곳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우주를 지탱하고 있다. 우주는 끝없이 팽창하며 넓어지고 있어 그 끝을 감히 가늠할 수 조차 없다. 사랑은 그렇게 우주 끝까지도 퍼져나가고 있다. 아니 오히려 사랑이 있어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은 지구. 푸르고 창백한 행성 위에 옹기종기 콩나물시루처럼 서로 부대껴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사랑을 자꾸 한없이 작은 존재로 정의하려고 한다. 사전 안에 아무리 억지로 구겨 넣어 집어넣는다고 한들 그 우주적 단어의 영향력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임에도 어리석은 인간들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고 스스로 퇴화하며 우주에서 가장 지적인 존재라고 자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랑하라고 말하면 사랑이 무어냐고 묻는 것이 보통의 반응이다. 시작하기도 전에 이 멋지고 오묘하고 아름다운 우주적 단어를 무자비하게 가위질, 칼질로 재단해 버린다. 더 나아가 기업들은 공산품처럼 만들어 소비 자본주의와 엮으려는 행위로 곧 사랑을 그 존재의 이유이자 목적인 것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리고 만다. 그렇게 재단된 사랑은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다. 정의하길 원치 않지만 적어도 답지에서 먼저 오답이라고 체크해야 할 것이 있다면 수단으로 전도된 사랑일 것이다. 1, 2차 세계대전과 같은 범지구적 전쟁이 없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장 평화롭고 가장 부유한 시대. 과학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어서 편리함을 넘어 방탕함이 허용되는 시대. 그래서 사랑이 잊히고 있는 시대. 과연 인류는 진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의 시간으로는 영원한 것 같은 별도 우주적 관점에서는 생을 살아가고 있다. 우주를 떠도는 온갖 물질들(가스, 별의 조각 등)이 합쳐져 별이 되었다가 점점 팽창하여 적색 거성이 되고, 폭발해서 백색 왜성이 되기도, 블랙홀이 되기도 혹은 다른 별의 시작이 되어주기도 한다. 인간의 시선으로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길고 긴 시간의 흐름에서 또 다른 생명체가 탄생한다면 그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반드시 사랑이 있게 될 것이다. 마치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며 사랑으로 모든 것을 지은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먼 미래에 혹여나 외계의 존재를 우리가 마주하게 된다면 적어도 '사랑'이라는 우주 공통의 단어는 통하지 않을까?


그러니 더욱 사랑하라고 외치고 싶다. 재단되고 정의된 사랑이 아니라 우주적 사랑을 하라고 하고 싶다. 도대체 그게 무어냐고 묻고 싶어 목구멍이 근질거리고 머리가 빙빙 돌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그만두어야만 한다. 사전 안에 인쇄된 볼릭체의 두꺼운 두 글자 '사랑'을 꺼내서 밤하늘의 별빛과 같은 선상 어딘가로 올려 보내야 한다. 자유롭게 훨훨 날고 우주 끝까지 날아가 그 우주를 또 팽창시키도록 둬야 한다. 그렇게 도저히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 내 안에서 빛나는 것이 느낄 때, 내가 별이 된 것처럼 느낄 때 이것이 무엇인지 말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사랑하자. 그렇게 존재하자. 그렇게 우리 자신이 우주적 존재로 그 자체가 목적으로 살아가자. 무지개의 색깔을 일곱 가지로 말하지 않고 표현할 수 없듯이 우리의 사랑을 일곱 가지로 정의해서 괴기스러운 만화 같은 무지개로 만들지 말고 그저 그것을 바라보며 경탄하고 경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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