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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흐 Oct 03. 2017

1003 오늘의 문장

다음 날 아침, 에투알은 웬일인지 밖에 나갈 시간인데도 침상에서 꾸물거리고 있었습니다. 쥐를 잡는 상상을 해도 그다지 흥이 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무겁고 우울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오늘도 쥐를 많이 잡아 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을 것입니다. 에투알은 그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지만 오늘도 스물두 마리를 잡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는 우연히 컨디션이 좋았을 뿐이었습니다.

‘온종일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쥐를 쫓았는데도 스물한 마리밖에 못 잡으면 어떡하지? 계속 실패해서 쥐를 한 마리도 못 잡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자 에투알은 다리가 떨려서 일어설 힘조차 없었습니다.


“너 혹시 어디 아프냐?”

할아버지가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아니요. 아프지 않아요.”

“그런데 왜 쥐 잡으러 안 나가는 거냐?”

에투알은 잠깐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만약 제가 어제만큼 쥐를 못 잡으면, 할아버지는 기대에 어긋났다고 생각하시겠죠? 저는 그게 두려워서 쥐를 잡으러 갈 용기가 안 나요.”

“아니,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었던 거냐?”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혹시 오늘 한 마리도 못 잡는다 하더라도 내일 더 노력하면 되지.”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도 에투알의 마음은 홀가분해지지 않았습니다.

“내일도 열심히 했는데 한 마리도 못 잡으면 어떻게 해요? 열심히 쫓아다녀도 전부 도망가 버릴지도 모르잖아요.”

에투알은 상상만 해도 울고 싶었습니다.

“쥐를 못 잡으면 제가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쓸모없어지면 할아버지는 저를 버릴 거잖아요.”


할아버지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잠시 후, 할아버지는 의자에 앉더니 허벅지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습니다.

“이리 올라오거라.”

에투알은 할아버지의 무릎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너랑 나는 한 지붕 아래에서 잠을 자고, 똑같은 밥을 나눠 먹는 사이다. 그동안 애정도 생겼고 말이야. 그런데 이제 와서 내가 너를 버릴 리가 있겠느냐?”

할아버지가 에투알의 등을 다정하게 쓰다듬었습니다.


“그럼 제가 게으름 피우면서 쥐를 한 마리도 안 잡아도 저를 버리지 않을 거란 말씀이세요?”

“그렇고말고. 네가 쥐를 잡으러 가지 않아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않을 거다. 게으르고 쓸모없는 고양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귀여워하겠지.”

“쥐를 많이 잡든 한 마리도 못 잡든 똑같이 사랑받는다면 애써서 쥐를 많이 잡을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요?”

순간, 할아버지 얼굴에 그늘이 생겼습니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쥐는 안 잡아도 된다.”   


<오늘 넌 최고의 고양이>, 후지노 메구미 글, 아이노아 유키 그림, 김지연 옮김, 책속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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