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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작가 Oct 16. 2020

#17. 없던 길을 만드는 사람들은

나의 마음이 머물러 있다면, 만나는 모든 곳은 좋은 길이 된다.

아이슬란드 요쿨살론, 2016

  없던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위를 걷는다. 길을 걷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길을 만드는 것은 더욱 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던 길을 걷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하면, 길이 없는 곳을 걸어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다.


  정해진 길을 걸어오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정해진 것과 조금 다르면 철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세상 물정을 몰라서,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산다며 비아냥 거리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친구들이 놀 시간이 어딨냐, 학원에서 하나라도 더 공부해야지, 여행 같은 거 갈 시간 없다, 게임 같은 것 하지마라, 취미생활에 빠지면 인생 골로간다 등 부정적인 말들을 수없이 들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좋아하는 것에 미쳐있던 사람들이 세상을 이끄는 시대가 됐다. 게임을 잘하던 사람들은 게임으로 인생을 말한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축구로 인생을 말하며,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진으로 인생을 말한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묘하게 공감이 된다. 각자가 걸어가는 길이 조금씩은 다르지만, 결국 '인생' 이라는 함께 공유하고 있는 가치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 요쿨살론을 여행하고 있을 때 이야기다. 요쿨살론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트랙킹을 하고 있는 듯한 남성이 내 앞을 지나갔다. 아무 것도 없어보이는 곳을 향해 걸어가는 것 같길래, 그를 잡고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설산과 황무지 뿐이었다. 길을 알고 가는 것이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냥, 제 마음이 이끄는대로요


  그가 걸어가는 방향을 보며 잠깐이지만 많은 생각에 잠겼다. 그가 더 멀리 떠나가기 전에, 그의 뒷모습을 조심스레 담았다. 그 순간에 느꼈던 감정을 오랜시간 기억하고 싶어서.




  

  그를 보며, 내가 보였다. 생각해보니, 나라고 길이 보여서 세계여행을 떠나온 것이 아니었다. 넉넉한 예산은 커녕, 하루 하루 버티는 마음으로 살았던 시간이라, 계획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저 여행을 떠나기 전, 다짐했던 그 마음, 사진을 정말 좋아하는지 내 자신을 테스트해보고 싶었던 그 마음만큼은 잃지 않는 여행이 되길 바랬을 뿐이다.


   이탈리아에서 3개월간의 머무는 여행을 마치고, 떠나온 곳이 아이슬란드였다. 그 때는 민박스탭으로 벌어둔 약간의 여비도 있었고, 3개월동안 피렌체에서 많은 분들과 사진을 나누면서, 마음을 나눠주신 분들의 작은 여비 또한 있었다. 물가가 높기로 악명높은 북유럽에서 14일간 여행을 하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돈이었지만, 상황에 맞게 여행지를 선택했던 때와 달리, 처음으로 내가 가보고 싶었던 곳을 선택한 여행이었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기 전, 크루를 구했다. 운전도 내가 하고, 사진도 담아드릴 예정이니, 함께할 6명을 모집했다. 지금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더욱 더 적극적으로 누군가에게 사진을 선물하고 싶었다. 순식간에 6명이 모였고, 그 분들과 함께 14일간 여행하면서, 사진을 나눴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마쳤을 때는, 사진을 정말 좋아하는지 내 자신을 테스트해보고자 떠난 여행이 딱 1년이 되었던 때였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마치고 터키로 다시 돌아가는 비행기 안, 1년간 이 여행을 해냈다는 마음에 정말 가슴이 벅찼고, 창문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정말 많은 생각에 잠겼다.



  

  뒤돌아보니, 동남아시아, 인도, 터키, 그리스, 이집트, 이탈리아를 거쳐 아이슬란드까지 오게 되었지만, 그 어떤 순간도 내가 계획해서 온 여정이 없었다. 그저, 마음을 다해 사진을 담으면서 걸어온 길이었다. 그 길 위에 숨많은 분들이 함께 걸어주셨고, 결국 그 분들이 나와 함께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만들어주셨다.


  누군가는 계획없는 인생은 시간낭비라고 하지만, 여정을 위한 계획을 할 수 없어서 계획이 없었을 뿐, 여행을 나온 본래의 목적을 잃고 여행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깨달았던 것은, 엄청난 여행계획보다 중요한 것은, 여행을 하며 내내 기억하고 지켜야할 내 마음의 중심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정해진 길을 걸어오는 것에 익숙했다. 더욱 더 확실한 미래를 위해서, 치열하게 계획하고 실천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 때가 많았다. 그것은 나의 마음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었다. 그 때까지는 마음이 이끄는 곳을 걷기보다는, 돈이 되고 남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좋아했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마음이 공허했던 이유였던 것 같다.


  없던 길을 만드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다. 길 위에 자신의 마음이 찐하게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부탁하지 않아도 돕고 싶고, 안되면 되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만나야 되서 만나는 사람을 향해서는 그가 최대한 부탁을 안했으면 좋겠고,  일이 잘 안되면, 이때다 싶어 기뻐하며 피하기 마련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방법을 찾고,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들은 핑계거리를 찾는다고 한다. 이것만 봐도 누가 길을 만드는 사람인지 자명하다.


  예전에는 안보이는 길을 걷는 것이 정말 싫었는데, 이제는 안보이는 길에서 더 깊은 재미와 보람을 느낀다. 물론 내가 정말 마음을 온전히 쏟을 수 있는 길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했다. 마음이 머물러 있지 못한 곳이라면, 좋은 길 조차도 나에게 전혀 유익이 되지 못했다. 마음이 머물러 있는 곳이라면, 좋은 길 뿐만 아니라, 좋지 못한 길도 내게 유익한 길이 되어주었다.


  마음이 이끄는 곳을 선택하는 연습을 하자. 그것이 모두가 하나같이 똑같아지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으면서, 자신의 가치 또한 지키고 전할 수 있는 길이니까.


사진 / 글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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