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함 Mar 23. 2020

호텔에 팬티를 두고 왔다

3월 23일 월요일 일기


호텔에 팬티를 두고 왔다. 맙소사!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 사실을 집에서 깨닫고 나서 내가 한 행동은,


1번. 호텔에 전화해 내 팬티의 안부를 묻는다.

2번. 호텔에 전화해 내 팬티를 불태워달라고 한다.

3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3번이었다. 세 가지 선택지 중에서 3번이 가장 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호텔 측에서는 내가 체크아웃을 하면서 바로 청소를 시작했을 것이고, 내가 집에 도착해 팬티를 두고 왔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청소를 마친 상황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 어떠한 연락도 없었다는 건 내 팬티를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버렸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다만 한 가지 짜증나는 점은 내가 전날 그 팬티를 빨아서 말렸다는 사실이다. 하루 이상 외박을 하면 숙소에서 속옷을 빠는 습관이 있어서 해왔던 대로 한 것인데, 지금 생각해보니 두고 올 거 뭐 하러 빨래까지 했나 싶다.


어딘가에 물건을 두고 오는 일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1년에 한 두 번 정도 그랬던 것 같다. 운이 좋으면 찾고, 운이 나빠서 물건을 못 찾으면 값비싼 것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잊었다. 다만 팬티를 두고 온 건 처음이라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그걸 두고 올 수 있지?’ 다음으로 한 생각은 ‘내 팬티를 본 청소원은 뭐라고 생각할까?’였다. 지나치게 은밀한 신체의 일부를 떼어놓고 왔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부디, 정신머리 없는 여자 정도로만 생각해주면 감사하겠다.


Editor by 오피아

매거진의 이전글 부모님은 결코 제 앞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