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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함 Apr 14. 2020

자존감 게임

4월 13일 월요일 일기


요즘 나는 자존감 게임을 하고 있다. 게임 상대는 나 자신이다. 나와 나가 한 판 붙는 것이다. 게임의 승자는? 없다. 승자와 패자가 없는 싸움을 하면서 나는 고갈된다. 봄바람이 불어도 남의 이야기, 벚꽃이 피어서 예뻐도 사진을 찍고 말 뿐, 그에 대한 감상은 시시하기 그지없다. 예쁘고 귀여운 걸 봐도 그 때 뿐, 집에 머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늘어나면서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시간이 늘어났다. 반짝이는 감정과 무엇이든 부드럽게 받아들일 줄 알았던 감각이 사라지면서 내게 남은 건 자괴감 뿐이다.


내 자존감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생겼다. 그것을 모르던 철 없는 시절에는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자각없이, 서슴치 않고 내뱉었다. 화내는 방법도, 인간관계 유지하는 방법도 잘 모르면서 쟤와 비교했을 때 내가 괜찮아 보이니까 상관없어, 하고 넘겼던 것 같다. 29살이 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된 내 눈에는 그 시절이 마냥 '철 없어서' 그런 것 같지가 않다. 진심으로 내 자신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제발 '타인과 비교하지 말라'고 하지만, 29살이 되면서 더욱 타인과 비교하게 되었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들려오는 또래의 소식을 들으면서 더 그렇게 되었다. 나와 동갑인데 스타트업을 창업해 성공한 CEO의 이야기, 전공과 무관하게 호기심으로 배운 코딩으로 발명에 성공해 정부 지원을 억 단위로 받았다는 소식, 나보다 몇 년 전에 글로 성공해 이곳저곳에서 인터뷰하고, 세 번째 책을 냈다는 동기 등. 


대학을 졸업하면서 서른이 되기 전에는 분명히 무언가는 손에 쥐고 있겠지, 싶은 생각이 지금은 무너져 버렸다. 20살부터 29살까지 매년을 전투하듯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내 손에 남은 건 무엇일까? 지금은 한 분야에 자리잡고 전문직으로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또래를 볼 때마다 내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 내 그릇이 타인보다 커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뿐이야, 나중에 더 잘 될거야, 라고 스스로를 타일러봐도 소용이 없다. 미래가 뭐가 중요해. 지금이 중요한거지, 라는 속삭임이 뱃속을 치고 올라오기 때문이다. 대학교 4학년 때, 교수님과 진로 상담을 더 진지하게 할 걸 그랬나? 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 고민으로 간호사로 일하는 친구와 카톡을 했다. 인터넷에서 미래가 보장되는 직군으로 '보건'을 본 참이었다. 4년제 대학 졸업 후, 전공과 관련없는 분야로 학사편입을 고민하게 될 줄 몰랐다. 친구는 자신과 같은 진로를 추천했다. 고등학교 동창이 올해 초, 간호학과로 편입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편입에 성공한 친구는 인서울 4년제 국문과를 나왔다.


그 소식을 듣고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뉴스에서 보고, 친구에게 직접 들은 간호사라는 조직은 나와 너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건 계열에는 다양한 직종이 있으므로, 그에 대해 친구와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소득은 없었다. 밥을 먹으며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는 넌 무슨 일을 하든 다 안 맞는다고 할 테니 지금 하는 일이나 꾸준히 잘 하라는 말을 들었다.


확신이 없다. 지금 하는 일이 잘 될거라는. 전문직은 지금이라도 매달리면 졸업을 하고, 자격을 취득할 수 있을진 모르겠으나 그 일을 내가 끝까지 잡고갈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잘 될 거다'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어서 오늘의 나는 힘들었다. 아마 내일도 힘들겠지. 한 달 뒤에도, 일 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똑같을 거다. 죽기 전까지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각종 취업사이트에 들어가보면,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이 문제는 나만이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취업을 위해 매년 무시못할 금액의 세금을 쏟아 붓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을 누구에게도 주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신종 코로나로 경기가 어려워진 지금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만이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공무원이고, 단기적으로 봐도 공무원이 되는 길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년에는 공무원 시험에 역대 사상급으로 응시자가 몰릴 것 같다. 국가가 망하지 전까지 공무원이 해고될 일은 없을테니까. 그럼에도 공무원이 절대적으로 체질에 맞지 않는 나는, 어쩌면 좋담. 

 

Editor by 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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